라떼아트와 차고장
바리스타의 꽃이 뭘까? 나는 라떼아트라고 생각한다. 황금색 에스프레소에 크리미하게 퍼지며 바리스타만의 색깔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찰나의 예술인 라떼아트는 손님들에게 직접적으로 그 바리스타의 실력도 잘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그럼 내 라떼아트 실력은 어떤가? 엉망이다. 바리스타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가장 못하는 건 우유 거품을 내는 스티밍이었다. 커피머신에 기다랗게 달린 쇠봉에서 여러 갈래 나오는 스팀은 우유를 담은 피쳐에 너무 깊게 담그면 요상한 소리가 나며 힘없이 우유가 돌아가고 너무 안 담그면 게거품만 보글보글 생긴다. 그 중간 깊이로 잘 담가 흰 우유가 빠르게 돌아가야 거품이 잘 쪼개져 부드러운 우유거품이 완성된다. 나는 그 중간 깊이를 찾는 게 항상 어려웠다. 잘 만들어진 우유거품이 있어야 라떼아트도 제대로 될 터였다.
카페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대로 라떼도 제대로 못 만드는 바리스타는 될 수 없었다. 그렇게 인터넷을 뒤적이던 중 라떼아트 챔피언이 여는 라떼아트 클래스를 찾게 되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클래스지만 경기도민은 1~2시간 걸리는 서울행은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보일 듯 말 듯 눈 내리는 겨울 저녁 어둠이 빠르게 찾아왔고 나는 여유 있게 준비한다고 한 게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 라떼아트 클래스가 열리는 장소는 낮은 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건물 앞 주차가 쉽지 않았고 두리번거리며 주차장을 찾다가 근처에 있는 기계식 주차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주차를 마치고도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첫 수업에 너무 일찍 가기 그래서 주차장 앞에 있던 파리바게트를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켜 눈 내리는 풍경을 멍하니 구경하며 시간을 죽였다.
얼추 시작 시간에 맞춰 도착한 클래스에서는 프로필 사진에서 본 것 보다 더 어려보이는 바리스타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클래스는 마치 카페처럼 꾸며진 곳에서 진행되었는데 옆에 큰 로스팅기계가 원두 한 포대를 다 볶고 있는 것을 봤을 때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양의 에스프레소를 만들고 라떼아트를 연습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바리스타 챔피언의 라떼아트 시연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커피학원에서는 하트 그리는 것만 봐왔는데 여기 챔피언의 커피 잔 안에는 화려한 학과 함께 나뭇잎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책에서 볼만한 아트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다니 너무 기대됐다.
하지만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다고 했던가. 수업 중 수많은 우유팩을 비우며 스티밍을 하고 라떼아트 코치를 받았지만 내가 배워 얻은 건 이제야 제대로 된 스티밍을 할 수 있게 되는 정도였다. 내가 간과한 건 나 같은 초보에게 라떼아트 챔피언이 아무리 고급스킬을 알려줘도 습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초보자에게는 초보자에게 맞는 단계의 수업이 있을 텐데 나는 욕심에 바로 높은 단계의 화려한 라떼아트를 탐냈고, 결국 비싼 돈 주고 수강한 수업에서 그 만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수업이 끝이 났다.
그렇게 아쉬움을 가지고 터덜터덜 찬 공기를 가르며 주차장에 도착했다. 삐걱삐걱 기계식 주차장의 마찰음이 끝나갈 때쯤 내 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슬슬 스마트폰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미리 준비하고 차디찬 차에 몸을 실었다.
불행은 한 번에 연속적으로 찾아온다고 했던가. 차가 평소랑 달랐다. 엑셀을 밟아도 속도가 나지 않았고 본 적 없는 경고등이 떠있었다. 처음 보는 경고등에 비상등을 켜고 길 가에 주차 후 인터넷을 뒤져 이게 엔진경고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멀고 먼 서울 한복판에서 차고장이라니! 눈앞이 캄캄해져갔다.
일단 진정하고 매뉴얼대로 서비스 센터에 긴급 전화를 했다. 연락이 되었고 통화 결론은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서행해서 집 주차장까지 가면 내일 견인해서 간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집에는 갈 수 있겠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지만 그래도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기계식 주차의 문제인지 추운 날씨 탓인지 차 자체의 문제인지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정신바짝차리고 집중해서 집까지 가다보니 웃기게도 라떼아트의 아쉬움은 이미 날아가 버렸다. 생존의 걱정을 하다 보니 그런 자그마한 아쉬움은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