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배우다
카페를 하는 데 커피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커피와 곁들일 디저트가 필요하다. 나는 수많은 디저트 중 초콜릿을 맨 처음 생각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잡지에서 초콜릿을 봤던 것일까? 아니면 그 당시 초콜릿이 먹고 싶었어서 였을까? 여하튼 초콜릿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쳐 올랐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뭔가 배우려고 할 때 항상 최고의 전문가들을 먼저 찾아보는 사람이다. 초콜릿 하면 어디가 유명한가? 바로 프랑스 와 벨기에다. 내가 느끼는 두 초콜릿 강국의 차이점은 프랑스는 작고 화려한 초콜릿이 많다면 벨기에는 투박하지만 크고 자극적이지 않은 단맛을 가진 초콜릿들이 많다는 점이다.
두 나라의 초콜릿 중 고민 끝에 내가 배우기로 한 초콜릿은 프랑스 초콜릿이었다. 사실 큰 이유는 없고 인터넷에서 여러 초콜릿 클래스 커리큘럼을 찾아봤을 때 다양한 초콜릿을 만들어 볼 수 있는 끌리는 클래스를 찾게 되었고 이 클래스를 여는 선생님께서 만드시는 것이 프랑스 초콜릿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셨는데 초콜릿을 시작한 계기가 재미있었다.
선생님이 대학을 다녔을 당시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 일이 있었다. 프랑스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관광을 즐기다가 큰길가에서 많이 떨어진 좁은 골목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 한 가게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초콜릿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고 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초콜릿을 배우고 만들기 시작해 지금은 호텔에도 초콜릿을 납품하는 젊은 장인이 되었다. 노인이 돼서까지 할 수 있는 매력이 넘치는 일을 그 때 발견하게 되신 게 아닐까?
초콜릿을 만드는 데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일은 템퍼링작업이다. 일반적으로 마트에서 파는 가공 초콜릿은 비싼 카카오버터 대신에 싸면서 광택이 잘 나고 굳기도 잘 굳는 식물성 유지를 이용해서 만든다. 하지만 카카오버터를 사용하는 진짜 초콜릿은 카카오버터를 안정적으로 굳히는 템퍼링이라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불안정한 결정들이 생겨 초콜릿이 쉽게 녹기도 하고 광택이 나지 않으며 보기 싫은 얼룩들이 초콜릿에 생기게 되기도 한다.
싸면서도 사용하기 용이한 식물성 유지를 쓰면 되는 데 굳이 다루기도 어렵고 손도 많이 가는 카카오버터를 왜 써야하냐고 묻는다면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녹는점에 있다. 지금 마트에 가서 가공초콜릿을 사 녹여 먹는다면 몽글몽글 덩어리가 남아 마지막에 꿀떡 넘어갈 것이다. 식물성 유지는 녹는점이 카카오버터에 비해 높기 때문에 끝에 입안에서 덩어리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카카오버터는 녹는점이 낮아 샤르르 기분 좋게 녹아 사라진다.
템퍼링 작업은 초콜릿 커버춰를 중탕으로 녹여 50도 정도(다크초콜릿 기준)가 되도록 녹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녹인 초콜릿을 찬물로 중탕해 27도 정도로 낮춘다. 그리고 다시 온도를 31도정도로 높여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어 주는 걸로 끝이 난다. 각 온도를 정해진 순서에 맞게 하지 않으면 안정화에 실패하게 된다. 그냥 녹이고 굳히면 되지 꼭 온도를 맞춰줘야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참 예민한 물질이다.
초콜릿 수업으로 내가 알지 못했던 내 취향의 맛을 찾기도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다크 초콜릿을 좋아한다. 다크 초콜릿은 카카오매스와 카카오버터가 조화를 이루는 말 그대로 초콜릿 그 자체다. 초콜릿에서 맛과 향을 결정하는 카카오매스가 빠진 화이트초콜릿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내가 화이트초콜릿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일이 있었다.
쿠바의 수도 ‘하바나’의 야자수를 닮았다고 해서 ‘하바나’라고 불리는 봉봉 오 쇼콜라를 배우는 날이었다. 설탕과 아몬드를 반죽해 만들어진 마지팬을 얇게 깔고 그 위에 생크림과 초콜릿을 섞어서 만든 가나슈를 쭉 짜올린다. 그리고 나서 오븐에 구운 호두를 위에 올린 다음 화이트 초콜릿에 푹 빠뜨려 디핑으로 마무리 한다. 그렇게 하얀 야자수가 탄생한다.
수업을 들으며 만든 ‘하바나’ 초콜릿을 선생님이 내어주신 차와 함께 휴식시간에 맛을 보게 되었다. 이게 웬걸? 고소한 호두와 부드럽게 퍼지는 가나슈가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데 그 시작과 끝을 화이트 초콜릿이 달콤하게 감싸며 한층 더 맛을 업그레이드 해줬다. 그렇게 나의 화이트초콜릿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그 이후 집에서도 ‘하바나’ 초콜릿을 많이 만들어 먹고 선물 주기도 하면서 한동안 홍보대사를 자처 했었다. 지금도 화이트초콜릿을 보면 문뜩 문뜩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