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 간의 남미 탐험: 여는 이야기

내 인생 첫 번째 남미를 만나기까지.

by 달해영

시작은 단순했다. 4년 만에 <꽃보다 청춘> 페루, 라오스 편을 다시 보다가 '떠나야겠다' 생각이 문득 든 것. 내가 연예인이 될 리 없으니 저 사람들처럼 갑자기 여권 하나만 들고 비행기를 타는 경험은 내게 영영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고등학생 시절이 있었다. '내가 나를 납치한다'는 콘셉트로 고등학생 문선영의 낭만을 지키기로 했다. 그 타이밍에 우연히 내 눈에 띄었던 갈라파고스 여행 글 덕분에, 갈라파고스에서 시작해 볼리비아까지 다녀오는 5주 여행의 비행기 티켓을 샀다. 엄마에겐 그저 "엄마. 나 남미 갔다 오려고" 한마디로 통보했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내 결정 이후로 엄마와 아빠는 내가 하겠다고 하는 건 그게 뭐가 됐든 묵묵히 응원해 왔다. 그래서 나의 첫 남미여행도 누구의 반대에도 부딪히지 않았다. 아무런 정보 없이 떠나는 게 가장 핵심이니까 아무것도 검색하지 않았다. 여권만 들고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떠나서 갈라파고스 거북이를 보고, 페루에서 마추픽추를 보고,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 다녀오는 것. 이것이 내 여행의 컨셉이었다.


2018년 2월 2일, 나는 백팩 하나만 메고 공항에 갔다. 황열병 예방 주사를 꼭 맞아야 한다기에 시간을 쪼개 병원도 아닌 국립인천공항검역소에서 백신을 맞았다. 출국 전까지 항체가 생기려면 1월 중에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도저히 예약 가능한 병원이 없었다. 출국 전날엔 서울에 있는 볼리비아 대사관에 갔다가 비자 발급을 거절당했고, 더 이상의 여유가 없던 나는 텅 빈 여권을 들고 털레털레 귀가했었다. 아빠가 공항까지 태워주기로 했었는데 출발 직전에 짐을 쌌다. 출근할 때 쓰던 칼하트 백팩 하나라서 미루고 미룬 거다. 백팩에는 다이어리와 스티커, 속옷, 충전기, 우비, 경량패딩, 고추장과 볶음김치만 챙겼다. 정말로 여권 하나만 들고 가고 싶었는데 현실을 고려해 약간의 타협을 했다.


고3 때 수업 대신 자습실에서 공부할 수 있게 배려해 준 대상이었던 나는, 자습실에서 다른 친구들이 다 공부할 때 몰래 책을 읽거나 <꽃보다 청춘>을 봤다. 그 프로그램이 처음 나왔던 열여덟부터 고등학교 내내 다짐했었다. 나도 꼭 여권만 들고 페루에 다녀오겠다고. 같은 프로그램에서 연이어 라오스와 페루를 다녀왔는데 왜 라오스보다 페루에 더 끌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페루여야만 했다. 졸업 후에 1년은 재수를, 1년은 알바를 하느라 잊혔던 그 꿈이 다시 불탔다. 우유니 사막이 우기에 성수기라서 2월에 여행을 계획한 게 아니라 묻어두었던 꿈이 다시 한번 떠올랐을 때 떠나고 싶었다. 월급도 들어오기 전에 퇴사한 거라 내 손에 쥔 건 겨우 95만 원 남짓한 미화 900$. 처음엔 <꽃보다 청춘>처럼 열흘 정도 다녀오려던 게 5주로 늘어남에 따라 정말로 여권'만' 챙겨 떠나는 무모한 짓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마추픽추를 오를 예정이지만 등산화 대신 에어포스를 신고, 한 달을 지내다 올 예정이지만 수건 한 장 챙기지 않은 백팩을 멨다. 이 여행의 출국 직전 다녀왔던 내 인생 첫 해외여행인 일본 여행에도 챙겨갔던 여분 옷을 챙기지 않은 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였고 나는 그 근거 없는 여유로움에서 우러나온 일상을 즐기다 돌아올 계획이었다. 출국 직전 몰려있던 근무 스케줄에 치이면서도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이어졌다. 저 멀리 지구 반대편 남미로 가면서 제대로 된 정보도 동행도 없이 혼자 간다는 데 대한 두려움보다, 설레는 마음이 내게 주는 떨림이 날 흥분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마주할 남아메리카 대륙이, 나의 뜨거운 청춘이, 엉망진창 얼렁뚱땅 여행길이 기대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의 유일한 목표는 우주의 모든 별들을 친구 삼아 반짝이기"라는 말을 일기에 적었었다. 5주 간의 남미 탐험이 드디어 시작되는 거다. 드디어!



게이트로 들어가기 직전 엄마가 찍어준 사진. 이때는 연예인들이 공항에서 마스크 쓰는 게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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