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 남미 탐험 — 에콰도르
"Coke, please." 꿈처럼 몽롱하게만 느껴지던 순간이 현실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는 건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영어 발음을 굴리면 놀림거리가 되었던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를 써도 이상하지 않은 곳'에서 지내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마음 놓고 영어를 뱉을 수 있는 그 감각을 느끼는 건 유학 같은 특수한 상황이어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음료를 무엇으로 하겠냐는 승무원에게 옆자리 남성이 대답하던 저 한마디가 지금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 웅얼거리던 소리가 선명해지는, 혹은 만화 속 풍선이 터지는 연출처럼 갑자기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나 정말로 아시아를 떠난 게 맞는 거구나. 나 정말로 미대륙을 밟으러 가는 중이구나!' 하면서 신났던 그때가 생각난다. 모든 여행을 통틀어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순간 중 하나로 손에 꼽을 만큼 강렬한 기억이다.
인천에서 출발해 도쿄, 댈러스를 거쳐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도착한 뒤, 키토에서 과야킬까지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과야킬에서 23시간의 경유 시간을 거친 다음 다시 과야킬에서 산 크리스토발 섬으로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는 아주 긴 여정이었다. 시차 때문에 자꾸만 길어지던 2월 2일이 마침내 끝나던 3일 자정에 발 디딘 키토 공항에서 나의 두 번째 공항노숙이 시작됐다(첫 노숙은 언젠가 소개하겠다). 환승객들이 모인 듯한 곳의 S자 형태의 벤치에 자리를 잡고, 근처 카페에서 chocolate caliente(핫초코)를 주문한 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받았다. 일단 자리는 잡았지만 도난 방지 스트랩도 없어 핸드폰에 매달아 놓은 고리 줄에 손가락 하나를 끼운 채 휴대폰을 꽉 붙잡고, 유일한 짐인 가방 하나를 소중히 끌어안고서 연신 주변을 경계했다. 그 모습이 더 눈에 띈다는 걸 그땐 몰랐다. 출국 전까지 소매치기에 대한 글을 여러 개 읽은 탓에 주변에 있는 모두가 내 돈을 노리는 사람처럼만 보였다. 내 옆에 자리 잡은 서양인 여성은 아주 커다란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벤치에 몸을 맞춰 누워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그땐 그 모습이 나보다 몇 수는 뛰어난 선배 배낭여행자 같아서 마냥 대단해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무방비하게 쿨쿨 잘 수 있지. 새벽 내내 숙면을 취한 그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배낭을 둘러메고 비행기를 타러 떠났다.
카운터가 열리자마자 이번엔 백팩 자체를 수화물로 부쳐버린 뒤 콘센트가 있는 바닥에 누워 핸드폰을 충전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근처에 서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제법 우스운 자세로 있었으니 웃음이 날 법도 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꼿꼿하게 굳어서 가방을 끌어안고 있던 내가 어느새 노숙에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하면서 앞으로 여행하면서 얼마나 변할지 기대하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과야킬 공항에 도착해서도 잠깐의 시간을 보낸 뒤 시내에 예약해 둔 호스텔로 향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직원에게 근처에 마트가 있냐고 물었더니 프린트된 지도를 꺼내 표시까지 해주며 설명해 줬다. 괜한 표적이 될 수 있으니까 밖에서 핸드폰은 안 쓰고 싶었다. 길치가 아닌데도 긴장해서인지 마트로 걸음을 떼기도 전에 지도상 내 위치를 잡는 것도 힘들었다.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어떤 여성이 다가와 길을 잃었냐고 물었다. 마트에 가고 싶다고 하자 본인이 데려다주겠다고 하면서, "여긴 여자애 혼자 다니기엔 너무 위험한 곳이야. 절대 혼자 다니지 마."라고 했다. 현지인마저 이렇게 말하는 이 동네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지역이길래 마트까지 걷는 그 짧은 거리조차 혼자 다니기 위험한 걸까. 도움을 받아 도착한 마트 입구에는 장총으로 무장한 가드가 서있었다. 한국에서 절대 볼 일 없는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그때만 해도 사소한 거 하나하나 찍는 습관이 없기도 했지만 표적이 될까 봐 핸드폰을 꺼내는 것 자체가 무서워서 사진 찍는 건 포기했었다.
처음 남미에 간다고 했을 때에도,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미 여행을 했다는 걸 알면 모두가 빠짐없이 거긴 위험하지 않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답한다. 당연히 총기 소지가 합법인 나라는 한국보다 위험하다. 소매치기나 강도 범죄가 흔한 나라에서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지 않은 건 그 나라가 안전해서라기보다 내가 운이 좋은 거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남미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외국인의 핸드폰을 노리는 소매치기범이 있지만 "핸드폰 낚아챌 수도 있으니까 창문 근처에서 핸드폰 보지 마."하고 말해주는 택시 기사가 있다. 길 걷는 사람을 노리는 강도가 있지만 그 길을 함께 걸어주려는 현지인도 있다. 길 찾는 나를 위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버스 타려는 나를 위해 버스를 대신 세워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의 걱정과 호의 속에 안전하게 여행했다.
낯선 도시에 대한 경계 때문에 잔뜩 움츠린 어깨, 불안함에 데굴데굴 굴리던 눈알은 이때 이후로는 쉽게 겪기 힘들었다.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고 미숙해서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던 나의 첫 남미. 내가 나의 모든 "처음"에 집착하는 건 그 순간의 짜릿함은 두 번은 없기 때문이다. 마트 출입문을 지키는 무장 경비도, 조금 낡은 차들이 많고 정신없던 도로도, 공항 의자에 누워 숙면을 취하는 여행자도, 공용 주방에 돌아다니던 커다란 벌레도, 스페인어의 알파벳조차 모르던 내 귀에 외계어처럼 들리는 스페인어도, 이후에 5주간 이어진 모든 일들이 다 충격이었다. 마트에서 산 빵과 과일로 배를 채우고, 하루동안 쓴 돈을 계산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 느꼈다. 무섭고 배고프지만 이건 내가 막연하게 그렸던 여행이 맞는 것 같다. 이런 세상도 있다니. 이렇게나 다른 삶 속에 내가 발 디디고 있다니. 이 막막함이 딱 내가 그린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