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우울한 엄마들에게...
꿈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아 혈연단신으로 일본까지 건너갔던 사람이다.
결혼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전업주부가 되었다.
아이 넷 낳고 나라는 사람이 없어지는 듯했다.
나도 내가 넷을 낳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매일 똑같은 삶의 반복,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 일상이 지루했다.
기저귀 갈고, 안아주고, 이유식 만들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달래고..
목 늘어난 티와 아이들 콧물이 묻은 옷을 입고 머리는 며칠 째 떡이 진채로 그야말로 ‘집 있는 거지꼴’을 하고 살았다.
코로나와 함께 남편과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생이별을 해야 했다.
나 홀로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집에 갇혀 4명의 아이들과 복작복작 거리며 매일을 버텨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늘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자가격리를 몇 번이나 하고 돌아가면서 코로나를 몇 번씩 걸렸다.
사람 만나길 좋아하는 사람이 끝없이 고립되다 보니 내 마음도 썩은 우물처럼 변질되고 말았다.
살아내야 했다. 나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네 명이나 있는데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었다.
마음을 다시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집에 얌전히 있다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19개월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엄마도 숨을 쉬고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집을 보니 온갖 잡동사니 소굴이 되어 있었다.
책육아에 관심이 많아 책을 많이 깔아놓으라는 말을 듣고 만삭 때도 전집 몇 질을 나눔 받아왔다.
벽이란 벽을 책으로 도배를 했다.
아이들 옷은 여기저기에서 물려받아 안방 장롱에 꽉 차서 문도 잘 안 닫혔다.
작은 방 붙박이장도 가득 채웠다.
옷이 미어터질 듯이 많아 붙박이장 지지대가 휘어질 정도였다.
베란다에는 트램펄린이며, 책장, 온갖 잡동사니, 아이들 장난감 등 발 디딜 틈 없었다.
책을 읽고 정리해 주면 좋으련만 정리는 늘 나의 몫이었다.
장난감도 네 아이가 놀고 정리하지 않아 늘 마음 한 구석이 갑갑했다.
19평 작은 집이 포화상태였다.
집에 있으면 숨을 쉬기 힘들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며 공황장애가 아니었나 싶다.
더 이상 이대로 살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내 마음도 쉴 곳이 필요해요>라는 책에서 산후우울증을 마음의 감기와 같이 생각하라는 문장이 와닿았다.
감기 걸리면 병원을 찾아 약 처방을 받는 것처럼 정신과 문턱의 허들을 낮게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용기를 내어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누가 볼까 봐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도 하고 갔다.
몇 가지 설문지에 답을 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과 대면했다.
첫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잠은 잘 주무세요?, ‘밥은 잘 챙겨드세요?”
‘그럴 리가..’
아이들이 밤마다 나를 찾아온다.
돌아가면서 깨서 엄마를 불러 옆에 가서 자면 그렇게 발길질을 해 댔다.
밥은 늘 콧구멍으로 먹는지 귓구멍으로 먹는지?
모르는 상태로 살기 위해 욱여넣었다.
살겠다고 많이 먹어 넷째 출산 후에는 다이어트도 성공하지 못했다.
남편 쉬는 날은 단 하루, 늘 늦게 들어오고 새벽녘에 나갔다.
주말에 제일 바쁜 직업이라 주말에도 혼자 네 아이들을 건사해야 했다.
그렇게 10년을 지냈다.
내가 정상인게 이상한 일이었다.
처방받은 약을 2주일 동안 먹었다. 먹으면 기분 탓인지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괜한 오기가 생겼다.
약 없이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러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종교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아픔을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코로나 때도 한 달에 두세 번은 만나는 친한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했다.
가족들에겐 걱정거리가 될 것 같아 말하지 못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믿고 있는 신이 욕먹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남편에게만 조심스럽게 전했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이 내게 허락된 것을 시간을 버티고 이겨내면 나중에 큰 자랑거리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일단 집에 있으면 마음이 무거우니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는 일본에 살 때부터 알고 있었다.
2011년 3월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인들이 더 많이 실천하고 있다.
나 또한 실천에 옮기기 위해 하루에 작은 한 구역씩 불필요한 물건들을 비워내고 정리했다.
점점 물건이 비워지자 여백과 공간이 생겨났다.
제일 먼저 내 공간을 만들었다.
집에서 가장 많이 있는 사람은 나인데 요리보고 조리 보아도 내가 쉴 공간이 없었다.
모든 공간에 아이들 물건이 가득했다.
작은 방 하나에 책상과 의자, 피아노, 책장을 놓아두었다.
그곳에서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새벽에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고, 독서와 운동을 했다.
무기력증을 동반했기에 꾸준히 혼자 하기 힘들 것 같아 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가둬 두었다.
SNS를 시작했고 온라인 모임과 챌린지에 참여했다.
인생 첫 줌 독서모임도 시작하고 운동챌린지에도 참여해 매일 10분 운동하는 것을 인증했다.
정리 챌린지에도 참여하며 점점 변화되어 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건을 비워갔을 뿐인데 삶의 전반적인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6인가족 5톤 이사도 도전해 보았다.
정리를 너무 못해서 아이들 재우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정리수납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정리 챌린지를 만들어 23기까지 이어 오고 있다.
몇 개월 전에는 혼자 비우고 정리하기 어려워하는 엄마들에게 직접 찾아가 함께 정리하고 공감해 주는 일로 부수입을 만들기도 했다.
코로나 시절에 울며 공감하며 보던 tvN <신박한 정리>의 이지영 대표님이 운영하시는 40만 유튜브
<정리왕>에도 출연했다.
좋아하는 짠테크 고수 인플루언서 안선우 님의 7만 유튜브 <아바라 tv>에도 출연했다.
영상편집도 배워 인스타에 매일 하나씩 릴스를 올리고 5개월 만에 3천 팔로워를 만날 수 있었다.
MKYU 김미경 학장님께서 온라인 건물주가 되라고 하셔서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4남매와 미니멀라이프 하는 소소한 일상을 담아 매주 한 편의 영상을 올리고 수익화도 되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전업주부가 되고 10원도 못 벌던 나였는데 달러를 조금이라도 벌 수 있음에 감사했다.
미니멀라이프 하며 몸미니멀과 건강에도 더욱 관심이 생겼다.
운동, 식단 챌린지도 만들어 먹덫에 걸려 어렵던 2kg감량을 성공했고, 고구마 공동구매도 진행해 봤다.
운동챌린지를 꾸준히 해서 체력이 많이 회복되었다. 횡단보도도 달리기 어렵던 내가 작년부터 기부 마라톤에도 도전해보고 있는 중이다.
독서모임에서 브런치 작가되기 스터디 모임을 진행해 주셔서 6수 끝에 브런치 작가도 되었다.
미니멀라이프를 하며 지내는 일상들을 글로 풀어 담아내고 있다.
같은 주제로 꾸준히 글을 발행해서인지, 4남매와 미니멀라이프를 하고 있는 게 신박해서인지 브런치스토리와 다음 홈&쿠킹 메인에 42개의 글이 게시되었다.
조회수가 50만 이상이라니.. 나의 부족한 글이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있는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스무 살까지 책을 10권도 안 읽어 얕은 글, 말도 안 되는 글을 쓰고 있는데 <요즘 뜨는 브런치북>에도 나의 브런치북이 올라가기도 했다.
놀랍고 부끄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내 마음의 감기는 자연적으로 치유되었다.
우울할 틈이 없다. 하루에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바쁘다.
어느새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믿어주기 시작했다.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 나는 없어지고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다가 내 삶이 끝나는가 싶었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감사하지 못하고 살다가 마음의 병도 얻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의 감기가 나아 면역력이 생겨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이들과 함께 나도 성장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부끄럽고 밝히기 싫은 아픔을 이겨내려 부단히 애썼다.
견디고 딛고 이겨내어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되어감에 감사하다.
혹시 지금 나와 같이 전업주부로 살며 자신을 잃어 아파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아이들과 함께 자라나도록 조금씩 노력해 보시길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매일의 일상을 감사한 마음 담아 기록해 봄으로 ‘기록의 기적’을 맛보길 바란다.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고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업 주부여도 눈에 띄는 성장이 아니라 해도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우리도 같이 자라나 보자. 오늘도 힘내시길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