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한 것이 많을수록 몸은 고되다.
작은 마당이 있는 29평 1층 노후주택에서 4남매와 함께 살고 있다.
이사 오기 전에 17평 리모델링된 아파트로 정할지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갈지 SNS에 설문 이벤트를 진행했다.
전업주부인 나만 생각한다면 작은 평수에서 지내는 게 편하고 좋을 것 같았지만 선배 엄마들의 조언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많은 온라인 친구분들이 아이들이 많아 층간소음 문제도 생길 것이고 작은 집에서 지내면 아이들과 엄마 모두 답답해할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몇 년 전 중국에 살 때 3층에서 9층으로 이사 갔다.
3층 집에서는 다행히 층간소음 문제가 전혀 없었다.
이사 간 집은 이삿짐을 옮길 때부터 아랫집에서 올라오셨다. 중국 할머님이 아이가 셋인 걸 보시고는 놀라시며 내려가셨다.
이후로는 코로나가 시작되어 직접 오시지는 않고 조용히 하라는 듯 천장을 ‘쿵쿵’ 치셨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층간소음 문제로 어려움 당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한 달도 못 살고 급히 귀국하게 되어 그 집에서 살 수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당 로망도 이뤄보고 싶고 집이 낡아도 층간소음 걱정 없는 1층 집이 좋을 거라는 결정을 했다.
‘마당 있는 1층 집’
아이 키우는 엄마라면 한 번씩 꿈꾸는 로망이 아닐까?
코로나 때 작은 집에 살며 답답함을 느꼈기에 더 꿈꾸게 되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어놀고 텃밭 작물들에 물 주고 때 되면 수확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여름에는 물놀이, 겨울에는 눈썰매 타기도 하고 싶었다.
2년 동안 마당 있는 1층 집의 로망을 다 이뤘다.
즐거운 일들도 많았고, 힘든 일도 없지 않았다.
로망은 로망일 뿐,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봄에는 황사먼지와 송진가루를 닦아내느라 바빴고, 여름에는 산모기, 뱀을 피해 다녀야 했다.
가을에는 집 앞 낙엽을 쓸어야 했고, 겨울에는 눈이 올 때마다 눈놀이하고 눈을 쓰느라 나중에는 눈 예보가 싫어질 정도였다. 작년에 유독 눈이 많이 왔던 것 같다. 기분 탓인가??;;
결로현상으로 몇 번이나 방에 있는 짐을 다 빼고 곰팡이 제거하고 단열벽지 붙이는 일들을 했다.
미니멀라이프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방에 물건이 많지 않아 꺼내어 장판도 말리고 벽도 말릴 수 있었다.
가장 힘든 것은 끊임없이 결투 신청하는 잡초와 승부를 내야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늘 패.
몇 주만 방치하면 마당은 정글이 되어갔다.
마당 있는 집에 살며 생명의 신비와 계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잡초는 물을 주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났고, 화단에 있는 나무들도 풍성해졌다.
화단에는 거미들이 신나게 집을 지어 놓았다.
엄마는 관리하느라 땀을 좀 흘렸지만 아이들에겐 그야말로 자연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흙놀이를 좋아해 물웅덩이를 만들어 갯벌놀이를 하기도 했고, 개구리, 달팽이, 메뚜기, 사마귀 등을 잡고 놀았다. 윗집 할머니께서 지인에게 닭을 받아오셔서 같이 길러 보기도 했다.
눈이 오면 눈썰매 타고 눈사람 만들고 마당에서 신나게 놀았다.
아이가 많고 주말에 더 바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남편으로 인해 캠핑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마당 캠핑도 할 수 있었다.
마당에서 해보고 싶었던 일들 다 해볼 수 있어서 즐거웠고 행복했다.
'마당도 우리집이니까 가꾸고 정리하며 살아야지.'라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잡초 뽑고 화단을 정리하다가 가끔은 지치기도 했다.
집이 커지고 마당까지 생기니 물건의 수는 집의 크기에 맞춰 늘어나게 되었다.
마당이 있으니 그에 필요한 물건들 또한 많아졌다.
이사 오고 얼마 안 되어 마당 화단에서 아이들이 떨어질까 봐 걱정되신 할아버지께서 사다리를 철물점에서 사 오셔서 막아주셨다.
사다리만 놓으니 안 예뻐 보여서 대나무발을 사서 달았다.
마당에 텃밭을 만들어 수확의 기쁨을 누리겠다고 모종을 사 와서 심었다.
잡초를 뽑고 매일 물을 주고 비료도 주며 관리했다.
호스 끝에 물 뿌리기 좋은 스프레이건도 필요했고, 오이와 방울토마토는 지지대도 필요했다.
낫과 삽, 잡초제거제 등도 구매했다.
눈이 올 때 사용한다고 쓰레기장에서 조금 부서진 눈썰매도 주워왔다.
눈을 쓸어야 한다며 넉가래도 구매했다.
돗자리도 사고 여름에는 인덱스 수영장까지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구매했다.
하나둘씩 사다 보니 마당에서 사용할 물건이 많아졌다.
역시 소유한 것이 많을수록 관리할 것도 많아지는 걸 알게 되었다.
관리할 것이 많으니 몸은 고되어졌다.
다시 이사를 가게 됐는데 주택보다는 아파트로 가고 싶어졌다.ㅋㅋ
마당 있는 주택은 나중에 손주 볼 때쯤 다시 살고 싶다.
우리 집 주변에 할머니, 할아버님들을 보면 늘 부지런히 텃밭을 관리하시고 마당을 가꾸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건강에도 좋을 것 같고 사랑의 힘으로 하고 계신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도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들을 선물해 주는 엄마,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사를 앞두고 마당에서 사용하던 물건들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10평 넓어져서 물건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자 비움의 속도가 늦춰졌다.
작은 집이면 놓을 곳이 없어서 금방 정리했을 텐데 게을러지게 되었다.
그렇게 물건들이 쌓여가다 보니 미니멀라이프 하기 전처럼 슬슬 집에 있으면 답답해졌다.
자꾸 밖으로 나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시 한 곳씩 물건들을 비우고 정리해 갔다.
그랬더니 며칠 사이에 집에 있어도 답답하지 않고 할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소유한 것이 많을수록 관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걸 마당 있는 집에서 몸소 체험했다.
그렇지만 집의 크기가 커져도 매일의 정리습관을 통해 단정한 집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미니멀하고 정돈된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
나와 가족이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행복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