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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같은 남편 책 내쫓아 버리기

물건에 시간과 에너지 뺏기지 않을래요

by 미니멀 사남매맘

오전에 4남매를 보내자마자 우산 2개, 압축봉, 고장난 빗자루와 밀대걸레, 헌 옷 한 봉지, 어제 화단 정리하며 자른 줄기와 잎들 넣은 봉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몇 주 전 갑자기 집 보러 오신 분들이 그 날 바로 계약하게 되었다. 이사집 알아보기까지 단 일주일.

우리도 바로 알아보고 서둘러 계약을 진행했다.

그토록 바라던 이사다.

집이 안 나가 1년 반동안 주말부부, 반주말부부로 4남매를 온전히 홀로 육아하며 지냈기 때문이다.


보름만에 모든 이사 준비를 해야 하기에 마음이 바쁘다.

그나마 지난주에 가전제품들 이전 설치, 도배장판 알아보기, 이사업체 견적 받고 결정하기 등등 예약을 해놔서 조금의 여유가 있다.

불필요한 물건을 비우고 보관이사 하는 2주 동안 사용할 짐들을 싸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이사의 목표는 6인 가족이지만 5톤 트럭에 여유롭게 가는 것이다.

지난번 이사는 미니멀라이프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한 이사였기 때문에 5톤 윙바디 트럭 한 대로 왔다.


이번에는 4년 차 미니멀리스트이기에 조금 더 비장한 마음으로 이사에 임하고 있다.

비장한 마음(??) 조금 웃길 수도 있겠지만 진심이다.


가족들의 짐은 둘째치고

내 짐은 캐리어 하나에 담길 만큼만 가지고 가고 싶다.

정말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남기고 싶다.

그래서 2년 전 이사할 때보다 더 과감히 비우고 있다.


일단 책장을 벗어난 책들은 SNS에 책 나눔 이벤트를 하였다.

제일 비우지 못하던 물품이 책이었다.

학창 시절에 공부의 목적을 몰라 신나게 놀기만 했기에 책은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올라갔다고 해야 하나?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이제는 안다. 나의 결핍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스무 살 때까지 책을 10권도 안 읽던 사람이었기에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게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책장에 책이 많아질수록 약간의 허영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책 한 권당 한 줄씩만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기로 했다.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책에 있는 내용이 내 삶에 적용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에 줄 치고 낙서하는 걸 좋아해서 구매해서 읽고 있지만 다 읽은 책은 책장에 꽂아 놓지 않기로 했다.

책 나눔 이벤트를 통해 그 책이 날개를 펴고 날아갈 수 있도록, 우리 집에서 먼지 쌓인 채 두지 않기로 했다.

책에서 해답을 얻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책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눔 이벤트를 진행한다.


2번은 반값택배를 이용해서 나눔을 했다.

반값이라고 해도 외벌이 가정에겐 부담되는 가격이 지출되어서 이번에는 양해를 구하고 착불택배로 이벤트를 했다.

다행히 신청해 주신 분들이 계셔서 몇 권을 제외하고 나눔을 할 수 있었다.

책을 포장하고 노트북을 펼쳐 예약하고

예약번호를 택배 윗부분에 적고 편의점에 가서 보내는 작업에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마음만은 뿌듯했다.

나를 거쳐간 책들이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어 도움을 주고 조금이나마 삶을 윤택해질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움직였다.

우리 남편은 대학원 전공서적을 가지고 있다.

가끔가다가 한 권씩 찾아볼 때가 있다.

평소에는 전자책으로 읽는데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찾아 읽는다.

그렇게 11년간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하고 책장에 갇혀 있는 책들이 있다.

같은 직업군의 다른 분들의 책장에 비하면 훨씬 미니멀한 책장이지만 내 눈에는 늘 거슬렸다.

화장실 옆에 책장을 두었기에 화장실 갈 때마다 갑갑했다.


결국에는 몇 년 전에 책표지를 사진 찍어두고 다 뒤집어서 제목이 안 보이게 넣어두었다.

아이들 책만 해도 거실장에 한가득 있어서 알록달록 어지러웠는데 남편 책까지 있다 보니 집에 있으면 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양해를 구하고 책표지 쪽 말고 아무것도 안 쓰여있는 쪽으로 바꿔서 꽂아놓았다.


사람들이 집에 올 때마다 왜 책을 뒤집어 꽂아놓았는지 물어봤다.

그때마다 이유를 말했는데 아마 주부라면 조금 공감을 해줄 것이다.

뭔가 책장의 물건들에게 내가 압도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답답하고 정신없는 느낌말이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남편에게 물었다.

“11년 동안 한 번도 안 읽던데 왜 못 비워?”

답은 늘

“언젠가 읽을 수도 있으니까?”라는 말로 돌아왔다.

’그 언젠가가 도대체 언제야~?‘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응, 알겠어.” 하고 넘어갔다.


남편은 IMF 때 아버님 사업 부도로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이기에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일단 내 물건 먼저 비우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면 남편도 변하겠거니 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사를 계기로 심경에 변화가 있을까 싶어서

이사 일주일 전 남편의 쉬는 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책 중에 비울 거 없어?”

그랬더니 바로 책장에 앞에 앉아 한 줄을 비워줬다.

남편의 비움 기준은 본인이 산 책이 아닌 것이었다.

그렇게 10분도 안 되어 빠르게 비울 수 있으면서 11년 동안 가지고 있었다니…

늘 책장을 보며 답답해하던 나의 시간들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나마 비워줘서 고마웠다.

아이들 책장 한 칸까지 차지하고 있던 남편의 책을

남편 책장에만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사 가면 남편 방에 책장을 따로 예쁘게 마련해 줘야지.

내가 오다가다 보기 힘들면 흰 천으로라도 덮개를 만들어 덮어놔야겠다.


남편의 책을 중고판매 해볼까 생각했지만 책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니 미안해서라도 안 되겠다 싶었다.

11년 동안 먼지 쌓인 책을 누가 읽고 싶을까?

과감하게 버렸다.

속이 다 시원했다.


사사키 후미오의 ’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를 읽고 있는데 물건을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뺏는 괴물로 인식하면 빠르게 비울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나의 마음의 무거운 짐으로 들어있던 남편의 책이 괴물에 빗대어지며 집에서 내쫓을 수 있어서 기뻤다.

괴물로 느껴지지 않는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지 않으며 살기 위해 더더욱 비워내고 남길 물건만 추려낼 것이다.


이사를 계기로 더 과감하게 신나게 비울 수 있어 감사하다.

물건으로부터 해방되어 더 가볍게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 화이팅이다.



<책 비우는 방법>

1. 당근 중고거래 하기

2. 당근이나 SNS로 나눔하기

3. 알라딘, 예스 24 중고판매하기

4. 재활용 수거일에 버리기

5. 아파트 엘레베이터 나눔하기

6. 헌책 매입하는 업체에 판매하기

7. 지인에게 주기 (상대방에게 물어보고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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