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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 사남매맘 Jul 04. 2023

6인 가족 전세난민이라도 집을 가꾸기로 했다

노후주택 미니멀라이프 <베란다, 창고 편>

아이들이 1,2살일 때 해외에 가서 3년 넘게 지냈다. 비자 갱신하러 귀국했는데 코로나가 한참 시작될 당시였다. 남편만 다시 비자를 받아 6개월 넘게 기러기 아빠(?)로 살고 넷째 출산할 때쯤 돌아왔다. 35평 집의 짐이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채 19평 한국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비상사태 비상사태’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19평 집도 이미 물건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출산예정일을 열흘 남겨둔 채 많은 박스들이 우리 집으로 도착했다. 방과 베란다 곳곳에 쌓여 있는 짐들을 만삭의 임산부가 정리하겠다고 하나 둘 풀어갔다. 쓰레기까지 모두 보내온 짐을 보며 그동안 정리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름 한국을 떠나기 전에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기에 해외에서도 짐을 늘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살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많아져 갈수록 짐들 또한 많아져갔다. 결국 베란다 3곳에 차곡차곡 짐들이 쌓여갔다.

19평 집 주방 베란다 모습

손님이 오면 가리기에 급급한 보여줄 수 없을 정도의 주방 베란다.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었다.

좁은 베란다 양 옆으로 많은 짐들이 테트리스하듯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뭐가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의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베란다를 비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언제 쓸지 모르는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련들과 함께 비워내야만 했다. 베란다에 있던 큰 플라스틱 수납장 먼저 꺼내어 그 안에 있는 짐들을 다 꺼내고 분리했다. 같은 종류끼리 모아서 한 곳에 넣고 라벨링을 했다. 지금 당장 사용하지 않는 것들, 갯수가 많은 물건들은 당근마켓을 이용해 나눔 하기도 하고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10평 넓어진 지금의 집으로 이사 왔다. 지금 사는 집은 노후주택인데 주방 옆에 베란다 대신 창고가 있다. 몇 개월 동안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이 이삿짐센터에서 놓아주신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 창고는 열어보기 힘들 만큼 더러웠고 낡았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쥐가 튀어나올 것 같은 큰 하수구 구멍이 있고 컨테이너 박스 같은 벽면엔 20여 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거미줄과 먼지들이 그득했다. 그 속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넣어뒀더니 열지 않고도 몇 달 동안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 좋아하는 곳에서 살고 있나요? >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오래되어 낡은 집을 조금씩 돌보아주니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있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인테리어는 단순히 ‘예쁜 집’에 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내가, 가족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나중에 내 집에 생기면, 돈이 더 모이면, 좋은 집에 이사 가면 ‘이 아니라 ‘이곳이 아닌 곳’에서 ‘언젠가 행복하게 살겠지’라는 생각보다 지금 내가 사는 집에서 행복할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떠겠냐는 문장을 읽게 되었다. (출처: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딱 내가 하고 있던 생각이었다. 없는 살림으로 시작해 전세난민으로 살았기에 집은 늘 그냥 스쳐 지나갈 곳으로 여겼다. ’손봐야 할 부분이 있어도 내 집도 아닌데 뭘~ 그냥 살자‘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내 집을 갖고 살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진 않지만 지금 집 말고 ‘이사 가면 그때 꾸미고 살아야지’,‘아이들 좀 크면..’이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나의 마음이 들킨 것 같았다.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기 위해 내가 살고 있는 곳을 가꿔줘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주말 독점육아 시간에 아이들과 창고문을 벌컥 열었다. ‘이제부터 이곳을 가꿔주기로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아이들과 청소도구를 들고 들어갔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일단 같이 그 안에 있는 짐들을 옮겼고, 같이 물을 틀고 밀대로 바닥을 밀기 시작했다. 사다리까지 동원해 창문도 닦아내고 벽도 닦았다. 그 안에 있던 짐들에 쌓인 먼지들도 털어가며 하루종일 창고에서 보냈다. 단지 생각하나 바꿨을 뿐인데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놀이라 생각하고 아이들도 함께 했더니 청소 후 말끔해진 창고를 보며 함께 흐뭇해했다. 청소 후의 쾌감을 아이들도 맛보게 된 것이다. 창고도 우리 집이라 생각하고 가꿔주기로 했다. 그 작은 생각의 변화로 인해 우리 집 곳곳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올여름 무더위가 시작되었는데 마당에서 물놀이를 언제 하냐는 아이들의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마당에서 하기엔 뒤처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창고에 수영장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영장에 바람을 넣고 물을 받아 놀게 하였다. 아이들은  ‘보기 싫던 더러웠던 공간이 이렇게 재밌는 물놀이장이 될 줄 상상을 못 했다’고 하며 신나게 놀았다. 그전에 정리하고 청소해 놓았던 나를 스스로 칭찬해 줬다.


공간이란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의 손길에 의해 바뀌어질 수 있구나. 집은 꾸미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이구나.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위해 편안한 쉼을 위해 매일 가꿔나가야 하는구나. 생각하며 오늘도 조금씩 집을 어루만져주고 돌봐주고 있다. 비록 노후주택이라 낡은 곳이 많아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의 손길로 가꿔주다 보니 내 눈에는 조금씩 예뻐 보인다. 오늘도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기 위해 내가 사는 공간을 가꾸고 돌봐줘야지.

sns에 기록해 둔 창고 비포 애프터
노후주택 창고의 변신 물놀이장


글의 내용을 영상으로 보길 원하시면

https://youtu.be/G4Zc5kNAo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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