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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나의 조각

by 한나

내 몸은 사실 열 하나의 헝겊조각으로 조각조각 기워져 있다. 그것은 흡사 사람 피부와 같아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천 조가리인지 피부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각각의 조각들이 모여 어설프게 하나의 무늬를 이룬다.


그 무늬를 얼핏 목격한 사람들은 종종 나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내가 왜 무늬를 갖게 되었는지. 내가 왜 특별한 피부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묻는다. 정작 내 몸이 헝겊조가리인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눈치채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저 내가 가진 무늬에 현혹될 뿐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조각들의 유효기한은 24시간이다. 조각들은 금방 닳고 해어져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신경과 혈관이 분포해 있는 진피가 드러난다.

상상해 보라. 내가 허리를 굽힌 사이, 나의 등에 보이는 빨간 혈관들을. 아마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나를 특별한 사람이 아닌 딱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저 멀리 도망갈지도 모르지.


그리하여 조각이 해질때 쯤엔 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열한 조각의 헝겊들을 아주 천천히 올을 맞대어 이어나간다.

배와 등에는 진피가 드러나 심장의 박동에 맞추어 혈구들이 흐른다. 미처 모세혈관을 잘 따라가지 못한 혈구들은 몸 밖으로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헝겊을 기우는 시간엔 옷이 빨갛게 물든다.


한때는 내가 천으로 된 인형인지, 아니면 그저 조금의 천을 덧대고 사는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어 괴로웠던 적이 있다. 열한 가지의 천은 꽤나 까다로워서 한 조각이라도 부족하면 온전한 바깥세상의 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현학적인 고민들은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열한 가지의 비릿한 천도 나의 일부이며, 그것이 전부 닳아 사라진 빨간색 나체의 나도, 나 자신이라고 받아들인다.


밤이 깊어지면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 바늘과 실을 꺼낸다. 하루 동안 해져버린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이는 일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의식 같다. 바늘이 천을 뚫을 때마다 살짝 스치는 통증이 있지만, 산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에대한 고충보다는 작은 통증이다.


피가 배어 나온 자국 위로 조각들이 차례차례 얹히고, 이윽고 나는 다시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다음 날 아침 누군가 나를 스쳐 지나가며 평범하다고 말할지라도, 나는 알고 있다. 내 안에는 밤마다 기워 넣은 흔적이 촘촘히 겹쳐 있다는 것을.

언젠가 모든 조각이 더 이상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그때까지 나는 이렇게 꿰매며 버틸 것이다. 조각난 채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어쩌면 나에게 남겨진 삶의 방식일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천으로 된 피부를 가진 사람을 마주칠지도 모르지. 난 천으로 기워져 생긴 어설픈 무늬를 보면 이야기해 줄 것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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