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과 불안, 길었던 나의 삽화에 대하여
여름방학 때부터였다. 깨어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전반적으로 불안하게 느껴졌다. 불안이 두려워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땐 그것이 자기 관리라 믿었다.
통제감을 확보하기 위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노 단위로 나누었다. 나의 행동을 통제하면 불안이 사라질 줄로만 알았다. 모든 식단을 기록하고, 수면시간, 운동량을 정리했다. 불안 회피를 위한 자기비판과 과도한 분석 또한 멈출 수 없었다. 나를 돌보려 하지 않고, 학대했다.
돌이켜보면, 여름방학이 시작된 7월부터 약 세 달간 내 몸은 쉴틈이 없었다. 매일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운동을 다녀왔으며, 세 달간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량을 달성해야 집으로 돌아와 일과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불안의 변수가 생기면 나 자신을 탓하기에 바빴고, 하루 종일 맑은 정신으로 지내야 한다는 강박에 커피와 각성제를 들이켰다.
'이거 안 하면 다 무너질 것 같아.' '지금 바로 결정해야 해.' '괜찮다고 해도, 혹시 아닐지도 몰라.' '한 번만 더 확인하자'와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며, 기록하고 확인했고, 끊임없이 누군가 날 사랑해 주길 바랐다.
어느 날이었다. 내가 먼발치에서 나를 돌아본 것은.
누군가의 죽음 때문도, 어떤 것에 의한 좌절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내 심장은 날 위해 수억 번 뛰고 있었으며, 내 뇌는 나를 지키기 위해 수년간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 안팎으로 동동거리며 나 자신을 내몰지 않아도 넌 여전히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
그런 모든 것들을 비 오는 날 아침 그저 아무 이유 없이 깨닫게 되었다.
내 몸은 수년간 '이완'하는 것에 대해 잊고 있었다. 분석하고, 다그치고, 자책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동료들이 부러워했던 나의 부지런한 일과는 그저 불안을 통제하기 위한 자기 조련에 불과했다.
물론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지런하게 사는 습관을 알았으며, 꾸준한 운동으로 많은 근력을 확보했고,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혀 다양한 사랑을 경험했다. 글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더 많이 공부하게 되었고,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삽화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은, 더 이상 궁지에 나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고, 나는 나를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울고 웃고 생각을 정리한 후,
수년만에 처음으로 9시간을 내리 잤다. 삼일째다.
멈추는 것도 회복이다. 또한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신뢰해야 한다. 어쩌면 이 생각들도 강박이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기로 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마음껏 사랑할 것이며, 그 시간의 유한성 또한 잊지 않을 것이다. 매일 밤 이완하며 잠이 들고, 동틀 녘에 태양과 함께 깨어나겠지. 실수를 용서할 것이고, 이세상을 감사히 살아낼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