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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하나의 문장으로 살아가기

‘live the day as a whole’

by 한나

생각해 보면 어느 순간도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감각에 집중하고 살지 않았다. 어떠한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다음 일을 생각했고, 모든 하루를 분절시켜 퀘스트처럼 완수해 나가며 하루를 완성했다.

분절된 시간은 하루를 조각냈고. 조각의 개수만큼 나를 시시때때로 평가했으며, 그 감정은 곧 나의 성찰이 아닌 자책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을 반복한 것이다.


니체는 인간이 과거에 매달리고 미래에 도망치는 걸 비판했다. 그는 “현재의 깊이”를 회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시간의 노예다. 그러나 위대한 인간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든다.” 이 문장은 곧 하루의 각 순간을 ‘하나의 전체처럼 살아라’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시간을 쪼개고 평가하는 대신, 그 순간순간에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태도. 니체는 결국 하루를 온전히 하나의 문장으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운동하러 가기 전엔 스스로 약속한 시간을 넘겨 센터에 도착할까 전전긍긍했고, 학교에 도착해서는 한 시간 한 시간 수업을 마칠 때마다 '드디어 하나 끝냈구나' 체크리스트에 두줄을 그었다. 점심을 먹으면서는 교무수첩에 할 일을 적고 있었으며, 그 할 일을 하는 와중에는 저녁거리 걱정을 했던 것이다. 물론 저녁을 먹으면서는 또 어서 쉬고 싶다는 생각에 시계를 봤고.


도서관에서 만난 우연한 책 한 권에 가슴이 뭉클했다. 과연 나는 '밀도'있는 삶을 살았던가? 이루어놓은 것보다 느끼고 있던 순간들의 밀도로 하루를 채운적이 있는가. 과연 '현재'에 감각을 두고 존재에 감사한 적이 몇 번이나 될까?


하루를 하나의 문장으로 산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를 하나의 큰 서사로 봐야 하기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아침부터 나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왔다. 분절된 하루는 결국 시시각의 평가로 파생되어 매 순간 나를 채찍질한다. 반성과 자책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를 하루에도 수번씩 반복한다.


하루를 통째로 산다는 것은 이것들을 전부 이어 붙이는 일이다. 감정과 몸, 생각이 서로를 배반하지 않는 하루를 만드는 것.

밥을 먹을 때 밥을 후다닥 해치워 먹는 내가 아닌 밥을 먹는 순간 자체로 존재하는 나. 운동할 때는 이걸 하면 근육이 어디에 더 생기겠지 라는 생각보다는, 아 내가 지금 움직이고 있구나 하고 자각하는나. 수업을 할 때 진도에 급급한 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있는 공간을 바라볼 줄 아는 나. 이런 것들이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어 진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 사실 이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수 일이 걸렸다. 이 생각들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그래도. 한번 해보려고 한다. 존재하며 사유하는 순간의 나로 살기 위해.


선언한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살아가며 글이 되어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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