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밑반찬을 가져다주시겠다던 어머니는 시금치무침과 아파트 분양 홍보 전단지를 함께 꺼내신다.
이 임대아파트에 꼭 들어가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표정은 미안함과 초라함의 어디 중간쯤이다.
꼬깃꼬깃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접혀있던 전단지도 어렵게 주름을 편다.
펼쳐지지도 접혀있지도 않은 전단지를 꼭꼭 손가락으로 눌러가며 설명하시는 어머니의 손가락이 유난히 지쳐 보인다.
70년 가까이 굴곡진 인생을 지내온 손, 아직도 나의 도움이 필요한 손, 그 쪼글쪼글한 손가락으로 전단지의 아파트를 꾹꾹 누르신다.
화려한 전단지를 꾹꾹 눌러가던 조그만 어머니의 손.
#2
누군가에게 오롯이 기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상대방의 견고함을 맹신하며 철없이 부리는 어리광은 어떤 느낌일까.
감정표현의 한계 수용선을 지키고 살아온 어떤 여자는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는 법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의 아이는 여전히 떼를 쓰고 기댈 곳을 찾는다.
그 방황이 내 삶의 축이 되었다.
#3
00 지역 최대규모, 프리미엄, 공세권 등이 잔뜩 적혀있는 전단지는 그렇게 내 옆에 놓였다.
내 마음을, 내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우뚝 서있는 아파트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 아파트의 베란다에서는 공원이 훤이 보인다고 하셨었나. 나는 이렇게 불면의 밤을 환하게 지키고 있는데.
#4
전단지를 분리수거상자에 넣었다 뺐다를 한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의 분양가가 걸려있는 전단지는 버려야 마땅한데, 어머니가 누르시던 손자국이 마음에 걸려 도로 잘 펼쳐놓는다.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는데도 전단지는 나에게 자꾸만 말을 건다. 잠을 자야 하는 걸 알면서도 자학적으로 커피를 내린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볼까. 하루쯤은 잠들지 않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