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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내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by 한나

시간이 내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웃고, 울고, 누군가를 안심시키고, 기다리고, 가르치면서 지내왔던 수만 가지 나의 표정들이

조금씩 조금씩 내 얼굴에 결을 만들어 냈다.


사실 거울을 보고 조금 놀라긴 했다.

분명히 지난주까지만 해도 숨어있던 녀석이 얼굴에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왼쪽 눈가엔 잔주름말이다. (정말 '결'이 생겼다!)

평생 다크서클만 데리고 다닐 줄 알았던 나의 눈밑에 이렇게 새 식구가 하나 생겼다.


새 식구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마냥 기뻤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작은 슬픔과 함께 다가온 예쁘게 자리 잡은 새 주름.

마치 거울 속에 켜켜이 쌓인 시간들이 날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슬퍼했던 시간, 눈물 나게 웃었던 시간,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를 미워했던 시간들이 나이테처럼 쌓였다.


거울을 보며 찡그려도 보고 웃어도 보았다. 아. 이 얼굴이 내 얼굴이구나. 나를 데리고 살아온 내 얼굴이구나.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눈가의 결이 갈라지는 방향, 깊이, 그 섬세한 곡선들이 내가 살아온 시간의 온도를 담고 있었다. 화장품이 지워져도 다시 드러나는 건, 이미 내 얼굴에 살기 위해 자리 잡았다는 것.

그건 세월의 훼손이 아니라, 감정의 패턴이 새겨진, 만들어져 가는 내 얼굴의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이 녀석들을 데리고 다닐 생각을 하며 다짐해 본다.

시간이 더 흘러 주름은 늘어도, 눈빛은 더 맑아지길.

이제는 세상을 ‘판단’이 아니라 ‘이해’로 바라보길.

얼굴이 부드러워지는 대신, 눈빛이 단단해지길.

피부의 탄력이 아닌, 표정의 지혜가 얼굴에 드러나길.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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