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기로 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분투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그 관계 속에 살다가 모든 관계가 끝날 때 죽는다. 자명하고도 분명한 이 순리에 따르면 내가 나에 대해 쓰고 말하는 것이 오롯이 나의 이야기일 수는 없다.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 역시 마찬가지로 무수한 관계 속에서 태어났으므로. 어떤 측면에서는 모르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안다. 모르는 것이 아는 것이 될 수는 있어도 아는 것이 모르는 것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 삶의 가장 중대했던 시간과 사건을 다룰 때 나의 최선을 다해 신중을 기하려고 한다. 이 장에서 할 이야기는 단연 여기에 속하는 사건이다.
그때는 내가 거의 죽어가고 있던 때였다. 당시 나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이었다. 나를 통과해 지나가는 모든 시간이 시시각각 생명력을 잃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먹는 항우울제를 한 번 잊기라도 하면 극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의 형태로 세로토닌 고갈 증후군이 나를 덮쳤고 그 상태에서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했다. 한 달인지 석 달인지 아무튼 달 단위의 시간 동안 화장실 갈 때, 약 먹을 때 빼고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가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오후 4-5시, 늦으면 6-7시쯤 잠에서 깨면 다른 사람들은 하루의 일과를 마칠 시간에 나는 고작 눈을 떴을 뿐이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창밖은 이미 어둠이었지만 내 태블릿에서는 밝고 즐거운 예능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언제나, 매번 결국 절망으로 귀결되는 생각의 고리를 막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콘텐츠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 사고를 막아내는 중이었다. 특히 모두가 잠든 새벽이 오면 이 세상에 나 홀로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마디로 아주 더러운 기분이었다. 나의 몸은 마음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내 위장은 아무것도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위로든 아래로든 게워 내기만 하는 몸 상태로는 물조차 마시기가 꺼려졌다.
그러나 막상 죽으려면 죽을 수도 없었다. 죽음을 향해 발돋움할 용기보다 죄책감과 책임감이 월등히 컸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많은 사람이 슬퍼할 것이고 그중 어떤 이는 무너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이미 죽어 없는 세상일지라도. 그리고 어쩌면 이 상태로는 얼마 안 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작동을 멈출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이미 상상 속의 관짝에 들어앉아 죽음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그 일이 터졌다.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 일로 내 시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나 자신이 나의 소중한 사람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내가 죽는 편이 이 세상과 내 주변의 사람들과, 아무튼 모든 것들에 대해 더 이롭다는 확신을. 나에겐 용기가 필요할 뿐이었다. 살아갈 용기가 아니라 죽을 용기가.
그렇게 죽을 궁리만 하던 중에 우연히 밀리에서 접한 책 한 권이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가져왔다. 내가 애도해야 하는 것은 다가올 나의 죽음이 아니라는 깨달음. 나는 나의 삶을, 나의 유년 시절을 애도해야 했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하루 종일 집에 없고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는 중이었던 열세 살의 나. 누구에게도 부담을 지우기 싫어 그 흔한 사춘기조차 억눌렀던 나. 꿈을, 미래를, 그밖에 삶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 밑그림을 그릴 시기에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게 혼자였던 나. 나는 그때의 나를 최대한으로 잊고 모른 척하는 것이 극복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밤, 내일은 제발 눈을 뜨지 않게 해달라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하는 고작 열세 살이었던 나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게 최선이자 유일한 길이라고.
나는 나의 열세 살을, 나의 유년 시절을 충분히 애도해야 했다. 애도 받지 못한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여태 죽음의 그림자와 더불어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는 그 그림자를 벗어나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어린 나의 목소리가 그제야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늘 나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네가 아니야. 너의 삶이 아니야. 남들이 너의 삶을 빼앗아 가게 두지 마. 네 삶의 규격을 다른 사람들 마음대로, 너 없이 정하게 하지 마. 더는 삶을 포기하지 마. 우리의 삶은 여기에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이끌리고 떠밀려서 간 곳에, 그곳에는 나의 삶이 없어.
그렇게 나는 나를 다시 찾았다. 내 삶은 지금 여기에 있었다.
근원적 감정의 피비린내 나는 행위는 내면의 표출, 속으로 찢긴 영혼이 겉으로 터져나온 데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찢긴 영혼은 미쳐 날뛰며 죽이고, 파괴하고, 스스로 죽기를 원했다. 새로 태어나기 위하여. 거대한 새가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오고 있었다. 알은 세계이고 세계는 부서져야 했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