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사이 side A
사랑받을 만한 사람다운
어린 시절의 자신 혹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다운은 대개 할 얘기가 없었다.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은 그에게 기억이라기보다는 파편에 가까웠다. 눈만 감으면 끔찍한 귀신의 얼굴이 떠올라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순간. 밤중에는 혼자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던 공포. 불길한 존재가 이불을 비집고 들어올까 봐 번데기처럼 이불로 빈틈없이 몸을 두른 채로 밤새 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던 많은 밤. 감정의 파편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의 모양새를 갖춘 것, 그것을 비로소 기억이라고 칭할 수 있다면, 어느 시점부터 이어진 과거의 순간들이 기억이라면 첫 기억의 순간에 그는 이미 완전히 혼자였다. 그 시점 이전의 기억은 없었고 이후의 기억은 이어서 쓰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기억할 것이 없었고, 종내는 기억하는 법마저 잊어버렸다. 이 과정에 그의 의지는 개입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이 자연의 순리처럼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다운은 그 자신의 삶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갔다.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아주 천천히 다운의 존재가 희미해져가고 있을 때 곁에 있는 누군가가 그것을 알아채주는 일이 있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그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첫 기억의 순간조차 그는 완전히 홀로였다. 곁에 있다고 굳건히 믿었던 이들은 사실 곁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자신은 텅 빈 페트병처럼 무력하게 굴러다니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생각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 슬픈 일이었다. 불의의 사건이나 불시에 닥친 무언가에 의해 그동안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거나 공교롭게도 모든 우연이 그를 비껴가 끝내 눈을 감을 때까지도 완전한 무지의 상태로 영면하는 것 외에는 다른 분기점이 없기 때문이다. 무지를 끌어안고 잠드는 이는 분명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일 것이다. 곳곳에 도사리는 무수한 가능성이 단 한 번도 그를 깨우친 적이 없다는 건 어쩌면 최선의 행복일지 모른다.
파란 약을 선택한 이는 자신에게 두 가지 약이 주어졌던 순간조차도 잊어버리겠지만 변덕스러운 어떤 마음이 그를 빨간 약으로 이끈다면 그는 아무것도 잊어버릴 수 없게 된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치고 다녔던 소크라테스는 누군가 그에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아느냐, 당신은 도대체 뭐가 더 잘났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적어도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보다는 똑똑하다.”
그러니까 다운이 다운이 되었던 순간, 바로 그 순간을 포함해서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몰랐던 일들을 꾸준하고도 부단하게 알게 되었다. 모든 무지는 자신에 대한 무지였다. 오랫동안 그를 구성하고 있다고 여겼던 크고 작은 덩어리, 조각들, 그것들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다운은 꼭 그만큼의 아픔을 되새겨야 했다.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은 동시에 그동안 왜 알 수 없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었기에.
그럼에도, 그 모든 아픔과 공백을 절절히 느끼면서도 그는 자신의 기억과 과거 속에서 자신이 아닌 것들을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끄집어내었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마냥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과거의 조각을 가지치기하듯이 잘라내고 나면 앙상한 가지만이 남지만 그 자리에 원래 있었어야 할 잎이 돋아나지는 않는다. 분명 과거는 매 순간 새로 생겨나고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과거의 공백을 메울 도리는 없다. 그 가지에서 다운의 잎이 아니라 다른 이의 잎이 자라기 시작했을 때, 그곳에 자라날 수 있었던 다운의 잎은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자신을 찾기 위해 자신이 아닌 것을 계속해서 찾아냈지만 남은 것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 허무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돌아올 수도 없는 것들에 대한 확인이었다. 빈자리를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마음은 희망이라기보다 애도였다. 다운이 갖지 못 했던 시간 속의 자신은 결코 돌아올 수 없고 공백은 영원히 공백일 것이었다. 과거의 어느 순간에 다운이 느꼈을 감정과 생각이 그 자신에게 남아있지 않다면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이 아주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그는 마침내 알았다. ‘모르는 것’이 ‘알 수 없음을 아는 것’이 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지만, 어쩌면 알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까지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과거를 자신의 뒤로 하고 나서야, 그래야만 갈 수 있는 길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