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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Sep 22. 2024

창녕 관룡사에서

순리(順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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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웃음소리가 정겹다.


무언가 잘못 한걸 빌고 있단다.

3학년도 안 돼 보이는 꼬맹이가 무슨 큰 잘못이 있을까 싶은데, 그 눈감고 기도하는 표정은 사뭇 진지해서 오히려 웃음이 난다.


가늠하기 힘든 시절동안 해가 떠오른 곳을 하루도 빠짐없이 보고 계신 돌부처님은 또 많은 것들 애써 가르치지 않으셔도  이들을 깨우치게 하신다.

해가 구름에 가려도, 비가 와 그 형태조차 보이지 않아도 하염없이 보고 계신다.


돌부처님 계신 제법 산 높은 그곳에 가기 전 그 산 아래에는 작지 않은 절집이 있다.

 아래 조용한 절집이 세상사 힘든 이들을 잠시나마 마음 편하게 만드는 여기는 창녕 화왕산 관룡사(昌寧  觀龍寺)다.

화왕산 관룡사(火王山 觀龍寺)

또, 여기 절집에 닿기 전 절집 한참 아래에 한쌍의 석장승(石長丞)이 절 출입하는 사악이들을 물리치시려고 든든하게 지키고 계신다.

창녕 관룡사 석장승(昌寧 觀龍寺 石長丞)

혹여 죄 지었나 싶어 가슴 조리며, 또 이런저런 일들을 물으시는 것 같아 겁도 난다.

지만, 쉽게 통과시켜 주시는 걸 보니, 다행스럽기도 하고, 그 진지한 표정에 정겹기도 하다.


한참을 또 오르니, 예쁜 돌문이 기다다, 역시 통과시켜 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통과한 그곳에는 멋진 길이 나 있어 절집 가는 마음이 설렌다.


여기 관룡사는 신라 8대 사찰 중 하나였다고 하니 그 역사가 짧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꼭 있었으면 하는 전각(殿閣)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배치해 놓으니, 잠시 스치는 이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도 남으니, 한 없이 여유롭고 감사하다.

대웅전 여래(如來)께 수줍게 인사드리고 나와 작은 전각들을 하나하나 찾아본다.

은 향의 그 향기가 가볍게 내려앉은 작은 전각들의 그 소박한 느낌이 좋은 그런 절집이다.


웅전 앞 꽃보시(布施)로 나온 국화는 아직 멀었는데, 가을전령 꽃무릇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가을이 분명 온 게 맞다.

작은 석탑 하나 품에 앉고, 간결한 사람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 머리에 인 약사전(藥師殿) 정겹다.

아픈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대(大願)을 세우신 약사여래(藥師如來)의 그 큰 뜻에 절로 고개 숙여지면서 말이다.

관룡사 약사전(觀龍寺 藥師殿),삼층석탑(藥師殿 三層石塔)

조용히 약사여래(藥師如來)께 좋은 이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나와서,  절집 뒷 쪽의 돌부 앉아 계신 용선대(龍船臺)로 발길을 이끈다.


발길 적은 고요한 산길이 또 좋다.

조금 힘겹긴 하지만, 진하지 않은 솔향으로 거칠게 힘들지는 않아 좋다.

흙길, 데크길, 돌계단이 번갈아 가며 지겹지도 않다.

딱 그만큼만 오르면 고 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용선대(觀龍寺) 가는 길

한 번 가쁘고, 얇은 여름옷 또 한 번 젖을 즈음, 절로 탄성이 나올 만큼 고운 돌부처님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이 기다리고 앉아 계시는 거다.

용선대 석조여래좌상(龍船臺 石造如來坐像)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인사드리니, 왠지 낯설지 않다.

처음 뵙지만 말이다.

그래 석굴암에 계신 그 부처님과 똑같은 모습이다.

동쪽을 한 없이 바라보고 계신 그 모습도 그대로다.


한 없이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조용히 흩어진다.

그 자리를 소나무와 바위들 사이를 지나는 딱 기분 좋은 바람소리들이 채운다.


크지 않은 바위에 앉아, 산 위 바윗돌 위 여래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복잡한 세상사에 조금씩 더 지쳐가고 있어 여래께 여쭈니, 세상사 이런저런 일들이 그냥 다 그대로 흐르게 하면 되는 거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용선대, 돌부처님 옆에 서서 그 시선 그대로 눈을 맞춰본다.

용선대 석조여래좌상(龍船臺 石造如來坐像)

세는 것조차 무의미한 시절 동안 떠오르는 해를 지그시 쳐다보고 계셨을 바위 속 여래는 그저 하루하루 조금씩 변화하는 시간들을 묵묵히 보내고 계신다.


그 수많은 세월 동안 그렇게 앉아 한마디 말씀도 없이 그저 옅은 미소만으로도 느끼게 해 주신다.


영원할 것 같은 바위 속 여래도 변하고, 여래의 시선 속 산도 하늘도, 바람도 하나같이 모두 다 변하고 있었다.


지치게 하는 세상사도 시간이 흐르면 함께 흘러 다 해결될게 틀림없지 않을까 싶다.


용선대 석조여래좌상(龍船臺 石造如來坐像)

온통 늦여름, 초가을 그 언저리쯤 녹색의 산과 흰구름 가득한 하늘이 다 채우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또 스치면, 이 푸르름도 흩어져 온통 붉은빛, 노란빛으로 물들다가 흩어져 버리겠지만, 그조차  어느 하나 걱정하지 않고, 그저 쉬이 받아들인다.

순리(順理)대로 그렇게 흐르면 되는 거였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 하고, 오는 변화들은 또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 뜻에 맞게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늘 변화하는 세상순리에 걱정도 그 순리에 맡겨 두면 시간의 흐름 속에 흩어져 한 없이 고요한 평온(平穩)이 올 거라 믿어본다.


또 한참을 돌부처님 옆 큰 바위에 앉아 이런저런 세상 일들을 생각하다 큰 바람 한 번에 정신이 번쩍 들어 여래께 인사들이고, 가벼운 걸음으로 고요한 산길을 내려온다.


큰 비 온 뒤 늘 언제나처럼 가을이 한층 곁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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