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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Oct 07. 2023

걷고 싶지 않지만 여행은 가고 싶은...

내비게이션을 켜라!


 이번 여행에서는 앞자리에 앉는 규칙 말고 또 다른 규칙이 있었다. 가족 4명 각각 자신이 가고 싶은 장소 한 곳씩 총 4곳을 정하여 집에서부터 제일 가까운 순으로 가되 최종 종착지는 여수로 정한 것이다.       


처음엔 신혼여행 때처럼 서해안에서 남해안 동해안으로 쭉 돌면서 갈까도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 3박 4일 이상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각자 챙겨야 할 짐들도 너무 많이 늘어나기에 대략 2박 3일 안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로 여수가 적당할 것으로 보였다.      


나와 남편은 각자 일 때문에 오래전에 여수에 다녀온 적이 있지만 딸과 아들은 여수에 가본 적이 없다. 혹시라도 딸과 아들이 싫어할까 봐 “‘여수 밤바다~’ 한번 보고 와야 하지 않겠어?”라며 가사도 모르는 ‘여수 밤바다~’란 제목만 흥얼거렸다.      


다행히 여수를 최종 목적지로 정하는 데는 가족 모두 동의했다.


첫 번째 여행지는 그나마 최근 여행을 가장 많이 다녀온 딸이 정했다. 친구들과 여기저기 다녀서 가족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맛집이 많았는지, 고심 끝에 여행지라기보다는 맛집 중심으로 아침, 점심, 저녁 식사 메뉴를 혼자 다 정했다.      


아침 7시에 일찍 출발하여 9시경에 군산에서 도착하여 아침 식사를 하고 주변을 돌다가 점심은 전주에서 유명한 한정식집을 그리고 저녁에는 여수에 가서 꽃게정식을 먹자며 여행지 3곳을 정했다. 남편과 아들은 딱히 목적지가 있다기보다는 자동차가 가는 데로 물 흐르듯 가고 싶었던 것 같고 나 역시 딱히 아는 맛집도 없는 터라 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늘 계획대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여행 첫날, 아침 7시에 출발하자던 약속도 잊고 7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가족들 모두 늑장을 부리더니 결국 예정보다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추석 다음날이니 차가 밀리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11시가 다 되어 도착했는데 식당 앞사람들이 100m 정도 줄을 섰다.      


나와 남편과 아들은 아무리 그 집 음식이 맛있어도 100미터나 되는 줄을 서서 먹지는 않는다.  주변 다른 식당으로 가서 간단히 식사를 끝내고 싶었지만 딸이 하도 맛있다고 하여 긴 줄에 합류하였다. 생각보다 순서가 빨리 돌아와 식사를 금방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식사 때를 놓쳐 배고파 맛있었는지 정말 특별하게 맛있는 곳이었는지는 구별할 수 없었지만 맛있는 식사였다.      


이렇게 군산에서 아침식사가 아닌 점심식사를 하게 되어, 점심식사를 위해 가려던 전주는 일정에서 빠지게 되었다. 애초에 대략의 큰 틀만 짜두었지 숙박 장소나 꼭 들러야 할 곳 등은 정하지 않았기에 여행 일정이 수시로 바뀌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이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방식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은 걷는 걸 싫어한다. 20대나 자칭 20대를 선언한 50대나 걷는 걸 싫어하니 남들  다 하는 등산도 싫어하고 걸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도 싫어한다. 온 가족이 차 안에서만 여행을 한다. 식사할 때와 휴게소 들를 때 잠깐 바람을  때를 빼곤 차 안에만 있었다.      


게다가 잠자리가 바뀌면 잠도 잘 못 잔다. 다들 예민해서 아무 곳에다 등 붙이고 잠이 드는 그런 성격도 못되니 요즘 한창 유행하는 글램핑이나 차박이니 하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는 관심 밖의 일들이다.      


우리 가족에게 여행은 일상 속 휴식의 연장선이다. 그러니 굳이 힘들여 걷거나 근사한 캠핑 장비를 준비하여 야외에서 잠을 청하는 것은 휴식이 아닌 또 다른 노동일 수밖에.    


이번 여행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최대한 편하게 쉬면서 즐기자는 모토 아래 이루어진 것이다.


군산에서 지리산으로 다시 지리산에서 남원을 거쳐 여수로 갔다. 딸의 계획대로 맛있는 게장 정식을 먹었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숙소를 찾았지만 긴 연휴 탓에 전라도에서 경상도까지 남해안 일대에서, 예민한 4인 가족을 만족시킬 만한 숙소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여수에서 야경을 드라이브로 즐기면서 다시 집으로 가기로 했다. 산도 보고 바다도 보면서 맛있는 식사도 하며 즐겼으니 가는 길이 멀더라도 집에서 잠이라도 편하게 자자는 것에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결국 저녁 9시경에 여수에서 출발하여 새벽 2시에 집에 도착했다. 장시간 차 안에 있었지만 다들 집에 도착하니 너무나 좋아했다. 잠자리가 바뀌지 않은 것에 대한 만족감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각자 핸드폰으로 측정된 걸음수를 보니 4천 보 내외였다. 성인 남성의 한 루 평균 걸음수가 5천 보에서 6천 보라는데 여수까지 다녀 온 가족 평균 걸음수가 4천 보 밖에 안되니 얼마나 걷지 않는 여행이었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경기도 집에서 군산, 지리산, 여수까지 당일치기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정을 우리 가족은 휴식을 목표로 즐겁게 다녀왔다. 그렇다고 여행의 의미가 희석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대부분의 시간을 차 안에서 보냈지만 경치를 즐기면서 가족과 말다툼을 포함,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지방 어디든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 꼭 2~3일 연휴가 안되더라도 토요일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가볍게 여행을 다니기로 가족 모두 의견을 모았다.      


여행이라는 것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여행지를 감상하거나, 배경 속에 날 가둬두는 사진으로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는 차’라는 좁은 공간에서 가족들이 반강제적 대화를 나누며 즐기는 것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딸과 아들이 조만간 학교에서 중간고사 기간이라 바쁘다고 한다. 이후 다시 당일치기로 가볍게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젠 계획 세우고 짐 같은 거 챙기지 않고 부담 없이 어디든 가 볼 생각이다.     


걷기 싫어하는 우리 가족이 이렇게 긴 거리를 하루 만에 여행할 수 있었던 건 내비게이션의 도움이 컸다.  비록 중간중간 내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마음 가는 길로 가기도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는 내비게이션이 필수다.     


내비게이션을 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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