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공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며칠 전, 7월에 본 JLPT N1 성적 발표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시험을 위한 공부는 거의 못했기 때문에 결과를 기대하진 않았는데 의외였다. ‘역시 무슨 일이든 힘을 빼고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잠시, '아, 이건 공부의 성과라기보다, 지난 몇 년간 일본어와 함께 걸어온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브런치에는 50여 편의 글을 올렸는데,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글 1위부터 3위까지는 모두 ‘일본 직장인이 알려주는 비즈니스 일본어 시리즈’다. 새삼 일본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
교직 자격증도 있겠다 이참에 일본어 공부법으로 글을 써볼까란 생각도 했지만 누군가를 가르쳐 본 경험이 있기에 오히려 더 조심스럽달까..( ⸝⸝ ᷇࿀ ᷆⸝⸝ƪ);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공부법보다, 일본어와 함께한 내 경험들을 가볍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했다. 사실 일본학이기 때문에 일본어보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배우는 학문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나의 경우 대학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같은 과 동기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일본어 실력이 부족했다. 부족한 일본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학교에서 전공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난 저녁에는 일본어 학원을 다녔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조금씩 일본어가 들리기 시작했고, 외국어 교수법을 익혀 언어를 전문적으로 더 잘 구사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시험 삼아 지원한 일본어 교직이수와 중국어 복수 교직이수까지 합격해 일본어와 중국어 공부를 함께 병행하게 됐다. 언어 공부에 부단히도 애쓰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열심히 배운 일본어를 현지에서 직접 써보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다. 그렇게 일본 교환학생을 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당시 JLPT N1을 턱걸이(!)로 합격해 와세다대학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일본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동아리 친구들과 회의나 술자리에서 대화하며 배운 표현들이 지금도 내 말투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지금은 4년 차 일본 직장인이다. 매일 아침 전철 안에서, 회사 회의실에서, 거래처와의 미팅 자리에서 늘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다. 회사 메일과 자료, 회사 동료들과의 대화가 곧 일본어 공부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지금도 일본어는 여전히 내 삶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이번 JLPT 시험장에서 마주한 문제들은 크게 낯설지 않았다. 일상에서 많이 접해온 단어와 표현들이 많았고, 특히 청해의 경우는 회사에서 듣는 일본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속도와 발음이 정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벽한 일본어 사용자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업무 현장에서는 매일 장벽을 느낀다. 회의 시간에 갑자기 의견을 말해야 할 때, 머릿속에서는 말이 정리되어 있는데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면 순간 긴장이 몰려온다. 머뭇거리는 몇 초 사이에 대화는 이미 흘러가 버리고, 속으로만 아쉬움을 삼킬 때가 많다.
회식자리에서 일본인 동료들이 주고받는 학창 시절 이야기나 말장난의 뉘앙스를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다. 상대방은 웃었는데, 나는 왜 웃는지 이해하지 못해 고개만 끄덕였던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JLPT는 언어 지식을 측정하는 시험일 뿐이고, 생활에서 사용하는 일본어는 또 다른 차원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JLPT를 응시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현재 나의 일본어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보기 위함이었다. 나는 회사 생활에서 1인분 그 이상의 몫을 해내는 게 중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최근 미팅, 자료 작성, 발표 때 언어로 인해 업무에 작은 실수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가 무능하게 느껴져 견디기가 어려웠다.
때로는 회사에 나가는 것 자체가 민폐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주변 눈치를 많이 살피게 되니 한없이 위축됐다. 낯선 해외에서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일하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 시험을 통해 전공자로서, 일본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혼자만 연수 내용을 못 따라가 회사에서 남몰래 울었던 신입사원 시절, 처음 월차 보고를 했을 때 너무 긴장한 탓에 준비한 내용을 다 말하지 못하고 아쉬움에 고개를 숙이고 집에 돌아온 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외국인으로서 일본인과 동등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중한 자산이자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만점은 그 사실을 조금 더 확신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여전히 매일 회사에서 새로운 표현을 배우고, 때로는 실수하며, 일본 사회 속에서 일본어를 익혀가고 있다. 시험 성적은 하나의 이정표일 뿐, 내 배움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