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어제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밤새 계속 내렸다. 4시 무렵에 단잠을 깨운 정체는 빗물이다. 처마의 홈통을 따라 배수구로 빗물이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소리가 아니다. 홈통으로 가는 길이 막힌 빗물이 나무 데크로 그냥 떨어져 내리는 소리다. 떨어지는 빗물은 방울져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빗물받이에서 물 덩어리로 뭉쳐져서 나무데크 위로 그냥 떨어진다. “딱, 딱, 딱”하면서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이지 않고 꽤 큰 소리여서 신경에 거슬려 잠을 깬 것이다.
햇볕 좋은 날 지붕에 올라가서 확인을 하고 집수리 업자에게 문의를 해보든지 해야 할 것 같은데 선뜻 방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지붕에는 어떻게 올라가지? 안전장비도 없는데. 젊었을 때 같았으면 2층 창문을 통해 일단 지붕에 올라가서 방도를 찾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주저하고 망설여진다.
또 실제로 빗물받이가 막힌 것인지 홈통이 문제인지, 지붕에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인지도 확실히 모르는데 공사업자에게 바로 의뢰를 하는 것도 그렇다.
이래저래 시골살이가 싶지는 않다. 일단 가을이 오면 생각해 보자.
II. 깨었다가 다시 잠을 청해서 7시 30분경에 일어났다. 매양 하던 대로 두유제조기로 두유를 만들고, 간밤에 해동시킨 인절미 3개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지난주에 만들어 둔 수제 요구르트를 깍둑 썬 사과와 토마토, 바나나에 버무려 과일 샐러드를 만든다. 이것만 해도 식사량이 적지 않아 오늘은 계란프라이와 커피는 생략이다. 토스트 대신에 인절미를 먹는 변형된 서양식 조찬이다. 이렇게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35분 정도이고 먹는데 25분 정도이니 1시간이면 아침이 해결된다.
아침 식사 후에는 매일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는다. 비타민C 1알, 고지혈증 약 1알과 2-3종류의 건강보조식품까지 합치면 한 움큼이나 된다. 비타민 C는 상시 복용을 해왔고, 작년부터 고지혈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 고기를 즐겨 먹지는 않는데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와서 의사가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매달 1번씩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먹기 시작했다. 매달 1번씩 병원에 가는 것도 번거롭고 2-3개월에 한 번씩 피를 뽑아서 콜레스테롤 수치 검사까지 한다.
환갑을 지나고 나니 조금씩 노화증세가 나타났다. 눈이 침침해진지는 제법 오래되어서 눈영양제를 먹고 인공눈물을 사용한 지도 오래되었다. 아직 무릎이나 허리에는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건강보조식품으로 관절영양제와 몇 가지 건강보조식품을 서울집에서 가지고 왔다. 이것까지 다 먹으면 매일 먹는 약의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잠시 보류 중이다. 이런 건강 보조식품이 간에 해로울 것이라는 생각도 있지만 노화를 체감하게 되니 서서히 이런 것들도 찾게 된다.
생물학적으로는 노화는 건강한 세포수의 감소와 소멸이니 엄밀하게 말하면 '부분 사망'이다. 친구들과 농담 삼아 이런 말을 종종 하는데 다들 기겁을 한다. 환갑이 지났어도 죽음은 생각하기 싫고 겁나는 모양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이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어졌다. 모든 사람은 죽는데 그 시기가 문제 될 뿐이다. 그 시기가 좀 미루어지고 당겨지고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나. 원래 살아간다는 말은 죽어간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은 점점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는 것이니 생사가 무슨 차이가 있나, 같은 것이지. 그래도 아직 고통에 대하여서는 두려움이 있다. 죽음은 내가 못 느끼는 것인데 고통은 내가 느끼는 것이니 두렵다. 이 고통에 대한 것도 자유스러워질 날이 있을까.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늘도 나는 약을 챙겨 먹고 한 움큼의 보조제까지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