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당하는 사기, 힘든 소송
대기업에서 대표로 있다가 몇 년 전에 은퇴한 B 씨는 나를 보자마자 억울하다며 거품을 물었다. 탁구장에서 항상 신중했고 자신감과 여유가 있었는데 상담실에서 본 그는 파리하고 초조해 보였다. 그를 만나 탁구를 종종 쳤는데 지역 4부라는 이른바 고수대열에 속하는 그에 비하면 나는 4점을 접고도 항상 게임에서 지기만 하는 실력이다. 좀처럼 속내를 말하지 않던 그가 탁구도 잘 못 치는 내가 변호사라는 것을 알고는 읍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나를 찾아와 법률상담을 요청하였다. 약 2년가량 마음 고생하다가 소송을 해야 할 것 같은 단계가 되니 혼자 끙끙 앓던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B 씨는 건설 시행업을 하는 대학동기 A로부터 돈 6천만 원만 융통해 주면 수수료로 3,000만 원을 주겠다고 해서 A에게 거금 6,000만 원을 빌려주었다. 상가를 분양하는데 마지막 몇 개만 분양이 되지 않아서 잠시 곤란하니 6천만 원을 빌려주면 분양을 마치고 원금 6천만 원과 수수료 3천만 원을 곧 변제하겠다고 하였다. 빌린 돈으로 미분양된 상가 3개의 계약금 6천만 원(상가 1개당 2천만 원)을 내면 금융기관에서 중도금과 잔금대출을 받을 수 있고 분양이 완료되면 크게 수익이 나니 수수료 3천만 원쯤 주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라면서 자신 있게 말하였고 담보도 충분히 마련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6천만 원을 빌려주었다.
B 씨가 제공받은 담보라는 것은 만일 돈을 변제하지 못하면 분양하는 상가를 대신에 주겠다는 약속이었고 확실하게 할 목적으로 B 씨 명의로 상가 3개에 대한 분양계약서까지 작성하여 신탁사, 금융기관, 시공사 등에 제출하였으니 안심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2년 동안 계속 수수료는 물론 원금 6천만 원은 변제되지 않았고 결국 B 씨는 상가 3개를 떠 앉게 되어서 그 분양대금 합계 15억 원을 고스란히 내어야 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듣고 보니 고액의 수수료를 준다는 말에 혹하여 계약금을 빌려주었다가 15억 원의 분양대금을 내야 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낭패를 당한 전형적 분양 사기 수법에 속은 것이다. 그렇지만 형사법적으로 쉽게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고 민사적으로도 돈을 돌려받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분양계약서를 작성하고 실제로 본인 명의로 분양까지 받았는데 무슨 사기냐고 하여서 무혐의로 처분되는 사례가 많은 사건이다. 민사법적으로도 금융기관, 신탁사, 시행사 등과의 분양계약은 선의의 제삼자라서 계약 자체가 취소되기도 어렵고 중도금 대출에 대하여 보증을 해준 시공사가 B 씨를 상대로 구상권 행사에 나서면 B 씨는 꼼짝없이 강제집행을 당할 우려도 있고, 또 그의 친구 A는 이미 모든 돈을 빼돌리고 빈털터리 상태라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금 현재도 시행사 대표 A는 상가까지 넘겨주었는데 무슨 손해가 있느냐고 항변하면서 뻔뻔하게 돌아다니고 있어 B 씨는 복장이 터져 죽을 지경이라고 하였다. 은퇴한 처지라 그의 집사람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고 혹여 탁구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그의 집사람 귀에 들어갈 수 있으니 조심해 달라는 말까지 하였다.
이런 사기꾼들이 정말 많다.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수사기관에서 피해자의 말을 자세하게 들어주기도 어렵고 실제로 분양까지 받았는데 사기가 아니라고 간단하게 무혐의해 버리는 것을 많이 봤다. 이럴 때 피해자는 정말 억울하다. 본인은 분양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고 오로지 거액의 수수료를 준다는 말에 속아서 돈을 빌려 준 것이고 담보조로 형식적으로 분양계약을 한 것뿐인데 생돈 15억을 부담하게 됐으니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 상가를 실제로 받아도 매수자가 없어 다시 팔 수도 없다. 애초에 분양이 잘 됐으면 그에게 접근하지도 않았을 사람에게 속아서 6천만 원을 빌려주었다가 그냥 15억 원의 은퇴자금까지 날리게 된 것이다. 주기로 한 이익금 3천만 원 때문에 15억 원을 날리면 웬만한 은퇴자라면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전세사기에 당하여 목숨을 버리는 청년들에 대한 기사가 이래서 종종 나오는 것이다.
법률적으로는 사기가 분명하다. 그렇지만 경찰에서 사기죄로 인정되기도 쉽지가 않고 법원에서 유죄를 받는 과정도 꽤 험난하다. 우선 경찰관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기꾼의 감언이설에 경찰관도 넘어가 피해자에게는 상가 소유권이 생겼으니 손해도 없고 피해도 없으며 오로지 비정상적 수익을 취득할 욕심에 돈을 선뜻 빌려준 피해자가 더 나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수사관도 꽤 많다.
민사적으로도, 상가 분양계약의 수분양자는 피해자인 B가 아니며 피해자 B는 명의를 빌려준 것에 불과하여 분양대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봐야 하며 분양받을 자격이 없는 시행사 대표의 기망에 의하여 체결한 계약임을 주장하여 법원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이 재판과정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오로지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통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고 참 억울한 경우이다. 이런 사건은 피해자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고 변호사를 통해야만 하고 변호사도 유능하면서 정말 열심히 해 주는 변호사를 만나야 한다.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사기꾼이 사라져야 하는데 안타깝다.
무료 법률상담을 하다가 보면 종종 만나는 케이스다. 강화도에 이런 사람이 꽤 있다. 은퇴 후 편안하게 살려고 강화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아서다.
왜 이런 세상이 되었는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은 정말 힘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