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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설 Nov 22. 2022

18편|에필로그 Ⅰ 완벽한 비주류의 인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가 늘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새로운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미궁에 빠지는 병이다. 성인이 된다면 상상해보았던 견고한 삶과는 달리 스물 중반의 나는 여전히 잘하는 일은 무엇인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자신 있게 집어내기가 어렵다. 또한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 언제나 좁은 문턱과 얕은 경험에 막힐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그렇게도 넓고 다채롭다 했지만, 내 세상의 시야는 너무나도 좁음을 수시로 느끼면서도 새로움 앞에서 주저하는 습관은 세월이 갈수록 굳어져 가고 있다. 하지만 다행이라 부를 수 있는 점은 굳어진 생각과 습관을 깨고 나와 새롭게 경험하고 배울 때마다 세상의 시야가 조금씩 넓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의 이 시기를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다양한 가능성을 엿보는 시기라고.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에는 재미난 일들이 너무나도 무궁무진하다. 그 많고 많은 일 중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지금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인생의 <보기>를 늘리기를 택했다. 시험 볼 때의 방식과 같다. 우리가 객관식 문제에 놓인 보기 중 한 가지를 선택해 답을 메기는 것처럼, 미래에 그려질 꿈과 직업에 신중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경험을 몸소 느끼며 ‘나만의 인생 <보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요즘 나에게는 ‘확실한 것’ 따위는 없다. 

대신 나를 더 알아가기 위한 나의 집합체를 채우고 있다. 다만 인생 제2막을 열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해인데, 경로를 탐색하다 갈피를 잃고 겁이 났다. 어떤 출발선에 섰는지, 그곳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특별한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시작에 공존하는 극과 극의 두 감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불안감 또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훈련 중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껏 두려워하고 걱정하다 제자리로 돌아와 매일 다른 출발선 앞에 선다.


내 인생을 내비게이션으로 비유해보자면, 제시해주는 경로를 벗어났다고 혹은 잘못된 경로를 가고 있다며 경고음이 울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잠시 후 갈림길에서 되돌아가라고 끊임없이 울리겠지만, 나는 나만의 경로를 개척 중이다. 나만의 경로를 탐색하며 수도 없이 장애물을 만나 수렁에 빠지고 비탈길에 미끄러지며 진흙탕에 아끼는 옷을 버린다. 그렇지만 수렁에 빠지고 미끄러진 경험으로 고행과 장애물로부터 마음을 챙기고, 실패한 일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법을 깨달았다. 결국 모든 사건, 사랑과 이별, 몸과 마음으로 겪은 경험들은 시간이 흘러 인생의 지혜로 남게 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나는 완벽한 비주류 인간을 자처한다. 초중고, 대학교, 취업. 코리안 로드를 깔끔히 이탈한 나의 삶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서툴고 안정적이지 못하다. 여전히 할머니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대학교를 가라고 하시고, 할아버지는 문득 뉴스를 보시고는 남들은 다 대학교에 가서 취직하는데 도대체 뭣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냐며 공부해서 통역사로 취직을 하거나 선생님이 되어서 얼른 결혼을 하라고 매 전화 통화마다 재촉을 하신다. 


대한민국 고학력 시대 그 중심에서 검정고시 시험조차 치르지 않은 나는, 전쟁을 치른 할아버지 세대와 같은 학력을 가지고 있다. 가방끈도 짧은 데다 무식한 소리를 용기 있게 찍찍 씨불인다며 오빠는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역시 ‘길바닥 출신’ 이라며 어디 가서 아는 체하지 말라며 나무란다.

하지만, 나는 나의 비주류적인 개성 있는 이야기를 사랑하겠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각본 있는 드라마 옆에선 두 손에 쥔 쪽 대본이 초라해 보일 수는 있으나 생동감 있고 가슴 뛰는 것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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