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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설 Sep 14. 2022

5편|대안학교, 간디학교 Ⅱ

중학교 3학년, 이후의 진로

* 대안학교, 간디학교에 대한 글은 모두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적었습니다. *


3학년 역량을 발휘할 시간

     

우정을 쌓으니 나는 점차 안정이 되어갔고, 3학년이 되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다양한 체험학습, 축제, 동아리, 학생회, 식구총회(학생들의 총회의) 등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대부분 고참 학년이 지휘하기 때문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발휘시킬 수 있는 시기였다.


3학년의 필수 교육과정은 ‘졸업 작품’이다. 우리는 줄여 말해 논문이라 칭했다. 실제 대학생들의 논문 과정과 비슷하게 1년 단위로 논문 계획, 중간점검, 논문 발표회까지 각자가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2년간 연습해 온 자기 주도적 학습을 실천할 영역이 바로 논문이었다.      

1학기의 절반 정도는 최고참의 권력을 마음껏 누리고, 서서히 주제를 정해 논문계획서를 작성하였다. 나의 논문 주제는 ‘폰트 개발’이었다. 나의 손글씨를 폰트화 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매 학기 말에 학교에서는 주제를 

잡아 학기 말 발표를 준비해 전교생과 학부모님들 앞에서 발표하곤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파워포인트 만들기에 열과 성을 다했다. 예쁜 폰트를 고르고, 템플릿, 배경색을 고르는 데에 몹시 신중을 가했다. 아마 이 계기였지 않나 싶다. 매 발표 때마다 사용할 폰트들을 고르다 보니 어느새 모아놓은 폰트는 100여 개가 넘었다. 자연스레 폰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모양이다. 논문 주제를 생각하다 ‘내가 한번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몰아붙여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폰트 제작 방법을 서칭해 나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았다. 먼저 나의 손글씨 2,350자를 한 자 한 자 적는 것이다. 한글을 조합해서 쓸 수 있는 글자는 약 12,000자 가까이 되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글자들을 추린 2,350자를 적은 것이다. 직접 적은 글자 표본을 스캔을 떠 한 글자씩 분할해 파일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이용해 편집을 시작한다. 여기서부터가 단순 노동과 지루한 반복 작업이 시작된다. 스캔을 뜨는 과정에서 왜곡 현상이 일어나 글자의 선이 반듯하지 않고 삐뚤빼뚤하기 때문에 이 글자들을 모두 매끄럽게 수정을 해줘야 한다. 그쯤이야 어렵지 않다만 2,350자 전부를 수정해주기란 눈이 빠지고 참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방학 내내 꾸준히 글자를 수정해 편집을 마치고, 폰트 테스트를 해보는데 이상하게 키보드에서 ‘가’를 누르면 ‘후’가 나오는 둥 글자가 제멋대로 입력되는 것이다. 어렵게 편집을 마쳤는데, 새로운 난관을 맞이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내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포기할 수 없어 이리저리 물어 원인을 찾아냈다. 원인은 각 글자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코드 값이 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코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글자를 입력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또 한 번에 대이동이 일어났다. 2,350자의 코드 값을 찾고, 일일이 수정을 해주어 마침내 폰트를 완성했다. 중딩 유설이 적고 탄생시켰다 하여 내 이름을 떡하니 건 글씨체! 이름하여 ‘유설체’ 

*네이버에 검색하면 폰트를 다운로드하여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뒀다.

    

중간에 난관이 있었지만, 스스로 방법을 찾고 해결하니 더 큰 성취감을 불러왔다. 특히 이 유설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단순히 졸업 작품뿐만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기획하고 창조할 때의 순서와 과정이 유사했다. 원하는 것을 이뤄내기 위하여 방법과 과정을 모색하고 난관과 권태로움에 대처하는 자세 말이다. 아마 간디학교에서 제일 크게 중점을 두는 자기주도학습력이 발휘되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의 기획을 완수해낸 보람과 끈기 있게 이겨낸 1년간의 시간과 경험이 때로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어 여전히 나에게 큰 보탬이 되어주고 있다.     






이후의 진로     


중학과정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특별한 계기도 없었고, 보지 않겠다던 특이한 결심 또한 없어 시험 일정 두 차례를 모두 놓쳤고, 어중간한 상태로 있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에 머문 학력이 되었다. 그렇게 중학교 졸업장을 쉽게 따낸 친구들과 달리 나는 여전히 초등학교 학력에 머문 채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1. 일반 공교육 고등학교 

일반 공교육 고등학교에 관심도 없었지만, 고려조차 할 수 없었다. 특히나 간디학교의 커리큘럼 속에도 일반 교과서의 내용을 다룬 수업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들만 쏙쏙 제외하고서 예체능 수업들과 영어 수업만 골라 들었다. 검정고시 준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교육 중학교의 3년 과정을 따라갈 수도 없었고 학력도 되지 않았다. 늦게라도 배우고 싶은 욕심이 들지 않아 공교육 고등학교 선택지에 밑줄을 그었다. 

    

2.  고등과정 대안학교 

참 이상했다. 고등 대안학교의 체험 프로그램만 참여해보았는데 흥미가 나지 않았다. 그저 중학교의 연장선인 느낌이 들었다. 타 대안학교 또한 학교의 철학, 커리큘럼, 그에 따른 운영방식이 큰 차이가 분명 나겠지만 같은 계열의 대안학교에 대한 내 어린 생각이 별 이유 없이 완고했다. 그래서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대안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선택지는 미련 없이 지웠다. 

*다녀보지 않고 추측만 했던 나의 편견이다. 분명 똑같은 것을 배워도 다르게 느꼈겠지 하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졸업 후 새 학교와 새 친구들을 만나는 친구들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던지. 한동안 나의 선택에 후회막심하며 살았다.      


3. 교육 공동체 

4가지의 선택지 중 학기 초에 가장 원했던 곳이 여행학교이다. 여행하는 길 위에서 배우고 논다. 그리고 주로 철학과 인문학을 다루는 학교가 많았다.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과 함께 떠나는 동기들과 24시간을 보내고 길게는 1년씩 붙어 있으며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쌓아나간다. 이 얼마나 멋진 요소인가. 지금 들어도 끌리는 학교가 바로 여행학교이다. 학기 초부터 여행학교에 관심을 제일 크게 두고 지켜보았는데 왜일까? 왜 나는 지원하지 않았었지? 입학 서류 제출을 못 했었나?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는 인연이 닿지 않았나 보다.      


결국, 위의 순서대로 차곡차곡 생각하며 미래를 그려보다 자연스럽게 홈스쿨링을 결정하게 되었다. 홈스쿨링으로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홈스쿨링의 장단점 또한 파악하지 못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나는 간디학교를 졸업하였다.     






가끔 드는 의문     


3년의 시간, 앞서 글의 서두와 같이 다채로운 경험들로 넘치는 추억이 마치 지워지지 않는 타투처럼 새겨졌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 역시 존재했다. 

첫해의 1년처럼, 간디학교에서는 24시간 전부를 친구들과 보내기에 관계 문제가 결코 쉽지 않았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했다. 물론 그 과정을 이겨낸 경우 한 층 더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만, 관계 개선이 되지 않거나 극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이 자퇴를 택하는 일이 꽤 많았다. 학창 시절에 그러한 경험이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에 모두에게 결코 좋은 경험으로 남을 수는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간디학교에 다닐 2009년도의 무렵, 그 시절만 하더라도 일반 사회에서 대안학교란 문제아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시선이 낙인 되어 있었다. 가끔 학교에 있을 시간에 돌아다니곤 하면 내게 학교에 가지 않고 이 시간에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묻던 사람들에게 저는 간디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녀서 가정학습 (단기 방학) 중이에요. 하고 대답을 하면 “거기 문제아들 다니는 학교 아니야?”하고 뚜렷한 선입견과 부정적인 편견을 표정으로 날카로운 단어로 내비치곤 했다.


간디학교는 생태학교로, 자연 친화 교육을 중시하며 친환경 제품만을 사용해야 했다. 당시에는 높은 가격에 대비되는 질의 친환경 세안 도구의 선택지밖에 없었다. 그리고 냄새가 고약하다 못해 간혹 속이 좋지 않을 때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수도 없이 구토를 일으켰던 생태 화장실. 물론 지금은 생태를 아끼는 절약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는 것에 필히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 나는 왜 친환경 제품, 생태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 채 그저 학교의 의무성에 끌려갔을 뿐이다. 다만, 이유 없는 실천은 의지가 박약했다. 방학이나 주말을 맞아 학교 밖을 떠나는 그 즉시 학생들은 의도적으로 일반 제품들을 찾아 사용하고, 인스턴트 먹거리들을 섭취했다. 모순적이었다고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존재했던 강압성으로 인해 반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학교의 의미 있는 취지를 천천히 배워나가며 문제점을 인식하고, 연습을 시켜주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간디학교를 졸업한 뒤, 나 같은 케이스는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고 홈스쿨링을 택하며 곧바로 사회로 나왔다. 갓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 쉽게 적응을 하지 못했다. 학교와 마을에서 일반인들과 분리되어 3년을 보내고 나온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현실로 나오게 되니 학교에서 보낸 3년과 일반 사회와의 간격 차가 크게 느껴졌다. 장점으로는 안전한 보살핌을 받으며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었지만, 단점으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산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왼쪽에서 확실한 대안을 찾았다 했다. 

그 소문을 들은 어느 누군가는 왼쪽에서 대안을 찾다 포기하고 돌아가던 도중 오른쪽에서 대안을 발견했다.

대안학교에 확실한 대안이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수많은 학생들이 거쳐 간 이곳 역시 다양한 대답이 오가고 있다.



학기말, 방송부로 진행한 보이는 라디오. 친구의 사연에 전교생 앞에서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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