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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설 Sep 20. 2022

7편|일일 체험 현장 - 붕어빵, 호떡 단기 아르바이트

[홈스쿨링 번외] 2013년, 18살

온종일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독차지했던 한 은행사의 개인 정보 유출 사건. 부모님 개인정보 또한 유출이 되고야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카드를 전부 재발급하러 읍내에 나갔는데, 평소 장날에만 나오시는 붕어빵 사장님께서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장사를 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붕어빵집의 엄청난 단골이었던 아빠와 나는 얼씨구 좋다 하며 은행으로 향하던 발길을 급하게 돌렸다. 

붕어빵 집으로 말하자면 시골로 이사 오고 나서부터 8년간 여름이건 겨울이건 계절을 막론하고 찾아갔던 곳이라 사장님으로부터 단골 공식 인정을 받은 곳이다. 한동안 붕어빵을 먹지 못해서 섭섭했던 터라 눈에 불을 켜고 치즈 어묵과 붕어빵을 흡입하였다.


가게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어떻게 지내셨는지, 요즘 장사는 잘되는지, 장날도 아닌데 왜 나와 계시는지 등 자연히 스몰토크가 오고 가며 조그마한 포장마차에 수다 장터가 열렸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던 중 엄마는 “사람 안 구하냐고, 나 여기서 호떡 팔고 싶다고” 장난스레 물었다. 그때 사장님의 눈이 번쩍하시더니 곧 설날이 다가와 대목장이 열리는데 혼자 붕어빵과 호떡, 어묵을 하기에는 도저히 무리인데 아르바이트생을 도통 구할 수 없었다며 엄마를 잽싸게 캐스팅하였다. 장난스럽게 던진 말이었지만 사장님의 깊은 한숨과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엄마는 대목장이 열리는 3일 동안 ‘호떡 단기 아르바이트’를 약속했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난데없는 호떡 아르바이트 첫날, 엄마는 9시 반까지 출근을 하고 아빠와 나는 한껏 여유를 부리다 얼렁뚱땅 씻고 장으로 놀러 갔다. 시장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포장마차가 저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고, 역시나 장에 들린 모든 이들이 들려가는 맛집인 만큼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평화로운 호떡 아주머니 그 자체였지만, 점점 가까워질수록 혼이 빠진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동그란 호떡은 더 이상 그만! 호떡의 모양에 자율성을!’

호떡의 새 시대를 외치는 듯 엄마의 호떡은 동그랗지도 않고 그렇다고 네모나지도 않은 알 수 없는 모양에, 적절히 누르지 못해 곳곳에서 꿀이 튀어나와 불에 타 있었다. 귀퉁이에 놓인 그릇에는 도저히 팔릴 수 없었던 호떡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그런 엄마의 서툰 모습을 보고 나는 하하호호 웃으면서 엄마를 놀려대니 사장님께서는 바쁜 아르바이트생을 방해하지 말라며 양손에 붕어빵 두 개를 쥐여주셨다. 조용히 붕어빵을 입에 물고 장구경을 하다 밥을 먹고 돌아오니 사장님이 나에게도 안으로 들어와 보겠느냐고 하셔서 잽싸게 센터를 차지해 계산하고 돈을 받았다. “예! 어서 오세요. 예! 어묵 몇 개 호떡 몇천 원어치. 5,000원입니다!” 인사와 동시에 포장, 계산까지! 정신없는 엄마와 달리 단골집 주방의 한자리를 차지한 나는 무척 신이 났다.

그날 저녁,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우연찮게 살펴본 거울 속 내 앞니에는 왕건의 고춧가루가 2개나 박혀있었다. 점심으로 먹은 순대국밥에 깍두기 반찬을 몇 접시나 리필해 먹었던 흔적이 하루 종일 내 이에 박혀있던 것이었다. 거스름돈을 암산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예쁘다 귀엽다 칭찬해주시는 손님들께 감사하다는 말 대신 눈을 진득하게 마주치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어드렸는데 말이다. 온종일^^


둘째 날, 

점심을 먹고 또 진귀한 구경을 하러 나갔다. 첫날보다 조금 한가한 포장마차 앞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호떡 모양이 왜 이따구로 생겼냐고, 호떡이 아니라 밀가루 빵 같다, 설탕을 적당히 좀 넣어야 한다’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또다시 사장님께 농담을 던졌다.

“사장님 하루 휴가 내세요. 딸내미가 붕어빵 굽고, 내가 호떡 꿀랑게.” 사장님은 또 엄마의 제안을 쏜살같이 낚아채셨다. “일로 와서 한번 구워봐. 쉬~워” 

평소에 붕어빵 킬러였던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기계 앞에 섰다. “자, 여기에 반죽을 좀만 부어놓고 팥 쪼매 넣고 닫아. 옆에 거 돌려놓고 저기 멀리 있는 거 한 번씩 뒤집어. 자 해봐.” 나를 너무 믿어버리신 사장님은 두세 번의 시범을 보여주시고 붕어빵의 기계의 마법봉(쇳덩이 막대)를 나에게 쥐여주셨다. 그리곤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버리셨다. 이것저것 돌려보고 만져보다 엉겁결에 들어온 붕어빵 3천 원어치 주문을 받아버렸다. 사장님은 보이시지도 않고, 만들어진 붕어빵은 없고, 알려주신 대로 쉽게 쉽게 해보려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기계가 다 쇳덩어리라 의외로 여닫고 뒤집는 게 쉽지 않았다. 또, 반죽의 적당량을 붓는 게 무척 어려웠다. 천천히 반죽을 부으니 불에 익고 있는 반대 방향의 붕어들이 탈까 봐 노심초사했다. 시장통의 모두가 아는 주인아저씨는 없고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꼬마애가 안절부절못하며 붕어빵을 구워대는 모습이 꽤나 신통방통하고 우스웠는지 고개를 숙였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렇게 어찌어찌해서 만들어낸 내 첫 붕어들은 모두 병에 걸려있었다. 반죽을 너무 조금 넣어 영양실조 걸린 붕어, 팥을 너무 많이 넣어 반죽을 뚫고 나와 내장 터진 붕어, 붕어 틀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는 붕어를 떼어내려다가 막대를 푹 집어넣어 구멍 뚫린 붕어, 한쪽 면은 너무 노릇하고 다른 면은 너무 안 구워져 언발란스한 붕어 등 정상적인 붕어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병 걸린 붕어들은 내놓기도 창피하고 안 내놓기에는 또 아까운 붕어들이었다. 다행히,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보시던 한 아주머니께서 괜찮다며 내놓으라 일러주셨다. 정말 조심스럽게 물었다. “먹을 만.... 하신가요?” “어 맛있네! 대신 오래 구웠나 보네. 반죽이 너무 두껍다^^” 나름 용기를 얻어 3천 원어치의 붕어 아홉 마리를 팔았고, 그 뒤로 간간이 오는 손님들께 “제가 엄청난 초짜라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하고 양해를 미리 구한 뒤 인내심이 만들어낸 붕어를 돈 받고 팔 수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요령을 터득한 나는 흐물흐물하지도 않고, 타지도 않은 평범한 붕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간간이 붕어빵이 다 익지 않았다며 뱉어내는 할아버지께 너무 죄송했다. 평소에 혼자 장사하시는 사장님 주위로 처음 보는 아가씨가 둘이나 와서 이상한 호떡과 붕어빵을 굽는다고 구경하시는 분들도 참 많으셨다. 하여튼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재미난 경험이었다. 특히나 여름조차도 팥빙수보다 붕어빵을 더 반기는 나로서 약간의 성공한 덕후 느낌도 느끼며...

붕어빵을 굽는 것도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알맞은 노릇노릇함을 구워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겨울의 보석. 가슴팍에 현금 3천 원을 언제나 품고 다녀야 하는 이유. 붕어빵 사장님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커진 채 엄마와 내 붕어빵 호떡 단기 아르바이트는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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