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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설 Sep 29. 2022

9편|[번외] 시골한의원 짝은 간호사

2013, 열여덟


|번외 1| 단골손님 해복 할머니


해복 할머니는 한의원에 약 10년이 다 되어 가시는 오랜 단골손님이시다.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알록달록한 꽃이 그려진 보행 보조기를 끌고 다니셨다. 또한, 내가 근무하던 당시에 연세가 90세셨는데, 할머니의 패션 스타일은 항상 센세이션 했다. 상의는 조끼나 세타로 레이어드를 하셨고, 하의는 항상 화려한 롱치마를 입고 오셨다. 포인트 액세서리 역시 빠지지 않아 금색으로 물든 할머니의 손가락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께서는 새로 온 간호사에게 무척 인색하셨다. 

한의원에 진료 순서가 있지만 침을 맞으시고, 물리치료를 받는 할머니만의 방식이 존재했기 때문에 새로운 간호사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할머니의 신경을 건드리는 행동을 할 경우에 찢어지는 목소리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셨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초반에는 해복 할머니가 오실 때마다 벌벌 떨며 할머니의 진료 차례가 돌아오면 여느 때보다 잔뜩 긴장을 했다. 1년 동안, 일주일에 2~3번씩 한의원에 들르시는 할머니께 아마 반년이 다 되도록 매일같이 혼났을 것이다. 


침은 정해진 시간보다 10~20분은 더 맞고 계셔야 했고, 얼굴의 떨리는 신경에 의해 자연스레 빠진 침 하나에도 내가 다 혼나야 했으며 얼른 원장님을 불러 빠진 자리에 침을 다시 놓아드려야 했다. 물리치료는 제일 아픈 발에 받곤 하셨는데, 끝을 알리는 소리에 기계를 옮겨 다른 곳에서도 사용해야 하는데 절대로 할머님이 빼라고 하기 전까지는 기계를 옮길 수 없었다. 간혹 어쩔 수 없이 연식이 있는 기계를 사용해 물리치료가 양발에 고르게 전달되지 않을 때면 나는 할머님의 흰 발을 마사지해드리며 몇 차례 건 마음에 드실 때까지 고쳐드려야 했다. 찜질팩은 방금 꺼내 제일 뜨끈뜨끈한 팩을 가져다 드려야 했고, 진료 후 한의원에서 서비스로 챙겨드리는 파스는 정해진 양보다 2장은 더 챙겨드려야 했다. 

이렇게 해복 할머니의 치료는 항상 남들보다 5배는 더 신경을 써야 했고, 평균적으로 30분 정도의 진료 시간이 소요된다면 할머님의 진료 시간은 1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같이 혼나다 할머니의 루틴을 어느 누구보다 완벽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할머니의 보행 보조기가 보일 때면 할머니의 진료 예약을 올려두었고, 할머니께서 만족하실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으며, 파스를 당연히 두어 개씩 더 넣어드리며 파스 한 장을 반절로 잘라 발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다독다독 붙여드렸다. 그걸로도 모자라 할머니의 진료 주기까지 파악하여 오실 무렵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내원하지 않으실 때는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셨나 하는 우려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긴장을 하지 않던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고야 말았다. 맞춤 간호사처럼 모든 것을 지시 없이 완벽하게 해내는 나였는데, 그날은 두 발바닥에 물리치료가 고르게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치료를 이런 식으로 할 거냐고!” 몇 번이나 소리를 치셨다. 고함치는 소리에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지만 군말 없이 고쳐드렸다. 

그렇게 치료가 끝나고 할머니는 일어나셔서 양말을 신으시고 옷매무새를 고치시며 “짝은 간호사 이리 와봐!” 하고 나를 부르셨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짝은 간호사’라 부르셨다.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가방 속에 있던 땅콩 카라멜 3개를 쥐여주셨다. 그러시곤 처음으로 웃는 얼굴로 나에게 ‘참 마음에 든다며. 오래 있으라며’ 따뜻한 말을 건네주셨다. 


그날은 무척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1년 동안 일한 보람을 할머니 말 한마디에 느끼다니. 그 뒤로도 사실 어김없이 혼이 났지만, 할머니께서는 진료 후 약을 타 가실 때마다 사탕을 꼭 쥐여주고 가셨다. 그렇게 6년이 지난 지금도 버스를 타고 한의원 앞을 지나갈 때마다 해복 할머니가 그렇게 생각이 난다. 

보행 보조기를 끌고 차분히 걸어가시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번외 2단골손님 순섭 할아버지


순섭 할아버지께서는 오랜 단골은 아니셨지만 내가 근무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꾸준히 한의원을 찾으셨던 손님이셨다. 순섭 할아버지께서도 할아버지만의 진료 루틴이 있으셨는데, 출근이 일주일 차도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할아버지의 루틴을 완벽히 어겨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손님이 밀려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할아버지께 된통 혼이 났다. 

“하나를 제대로 마무리 짓고 다른 일을 해야지!” 


할아버지께서는 발등과 종아리, 가끔은 허벅지 부위에 주로 침을 맞으셨다. 특이점은 물리치료를 하지 않으시고 금방 꺼낸 팩으로 찜질만 오랫동안 하고 가셨다. 진료를 마친 후, 한의원에서는 파스 한 장씩을 챙겨드리곤 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낱개로 받아 가지 않으시고 달력에 다녀가신 날을 ‘순 1, 순 2, 순 3’으로 표시하고 ‘순 6’이 되는 날에는 파스 6개가 들어 있는 한 팩을 받아 가셨다. ‘순 6’가 되어 파스 한 팩을 받아 가실 때는 나 역시 괜스레 퀘스트를 완료한 듯 묘한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말하지 않아도 척척 해내는 나를 참 예뻐해 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순 4’였을까 ‘순 5’였을까. 오실 때가 되셨는데 오지 않으셔서 어디 가셨나 하고 할아버지의 소식이 궁금해질 즈음, 한동네 사시는 아주머니께 소식을 여쭈어봤는데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마음이 자주 아팠다. 

낯선 공간에서 근무를 시작할 무렵, 진심으로 조언해주시며 예뻐해 주셨던 할아버지 셨기에 오고 간 마음의 정이 깊어 한의원에서도 집에서도 곳곳에서 참 많이 울었다. 할아버지의 방문 날짜를 적어둔 그달의 달력이 뜯어 넘겨질 때쯤에서야 천천히 마음에 진정을 찾아갈 수 있었다.






번외 3외할아버지가 쌍둥이셨던 건 아니셨을까?


우리 외할아버지와 너무 닮으셔서 첫 방문에 흠칫 놀랐던 할아버지가 계셨다.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보고서야 외할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정말 비슷한 외모를 가지셨었다. 유쾌하시고 쾌활한 할아버님의 성격에 나도 할아버지를 잘 따르고, 할아버지도 친손녀처럼 나를 참 예뻐해 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의원 바로 맞은편에 새 한의원이 오픈했다. 평소와도 같이 환기를 시키려 문을 벌컥 열다 맞은편의 새 한의원에서 나오시는 할아버지와 눈이 분명 마주쳤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인사를 드리기 전에 나를 못 본 척 슬며시 고개를 돌리시고 후다닥 사라지셨다.






번외 4월급과 함께 입금된 주부습진


어렸을 적부터 나는 손에 문제가 많은 아이였다. 연필을 오래 쥐고 있으면 손바닥에 땀이 고이는 동시에, 손발이 차갑기도 한 복잡한 사연이 있다. 그러다 열여덟에 한의원에서 일을 하다 주부습진을 얻어 버리고야 말았다. 손가락 약지에서 시작한 습진은 다섯 손가락에 서서히 물들어버렸다. 주부습진이 제일 심술을 부릴 때에는 손에 물집이 잡히고 피가 고이고 터지기를 반복하며 가만히 두어도 고통을 유발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원장님은 그런 나를 너무나도 걱정하셔서 원장님이 터득하신 자가 치료법을 알려주셨는데, 나한테는 맞지 않았는지 더 큰 상처를 입어버렸다. 손가락 주인인 나보다 더 손가락을 보고 마음 아파하신 원장님께서는 근무시간 도중에 시외버스를 태워 유명한 피부과에 다녀오게 했다.


열여덟에 주부습진을 얻어 지금까지도 물을 평소보다 과하게 사용할 때나 거친 합성세제에 손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이놈의 주부습진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주방세제에 중독되어 버린 내 약지와 소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습진에 굴복해버렸다. 안 그래도 손에 땀이 많이 차는데, 그 위에 핸드크림까지 바르니 무척이나 축축했다. 이런 내 손을 누가 잡아 줄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오빠가 손좀 (손에 나는 무좀이라 하여)이라 부르는 내 나약한 손가락을 때로는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한다. 사계절 내내 습진과 전쟁하는 내 손가락이 불쌍해질 때 즈음 한의원에서의 기억들이 슬금슬금 피어오른다. 물론 아프기도 하지만, 그 시절의 따뜻한 정과 순수했던 마음들이 떠오른다. 그때의 추억들이 아른거리며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온기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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