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2학년
* 대안학교, 간디학교에 대한 글은 모두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적었습니다. *
3년이란 시간 개념에 비례하자면 초과한 듯 넘치는 기억들이 존재한다.
탈도 많았지만 그렇게 재밌었던 우여곡절도 없었을 것이다. 아직 인생의 반도 살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내 25년 인생 가장 순수하고도 야심 찼으며, 제일 많이 웃고 울었던 순간이 바로 간디학교에서 보낸 3년이다.
지금은 치열하게 견제하고 갈등하며 펑펑 울었던 그 시간들마저 그립다.
간혹 귀족학교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어찌저찌 보면 사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재벌과 귀족을 나누는 척도를 풍요도로 기준 삼는다면 우리는 그들과 같이 풍족하고 풍요로운 감정과 경험을 부족함 없이 누렸기 때문이다. 마음을 표현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펄쩍펄쩍 뛰어놀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주고 때로는 품어주던 곳이었다. 자유를 누리는 대신 스스로 벌인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간디학교는 학생 이전에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을 키우고, 유소년 시기에 누려야 하는 동심과, 호기심으로 즐기고 채워야 하는 다양한 감정적 요소와 경험을 충족시켜주는 학교였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3년의 시간을 정리해보았다.
입학하는 첫해에는 학교에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간디학교의 진학은 독단적인 엄마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입학서류로 내는 자기소개서를 적으면서 떨어지길 간절히 바랐고, 합격을 해버렸다며 얼마나 서글프게 펑펑 울었는지 모른다.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 온 나는 200% 만족하는 학교생활을 즐기며 밝은 중학교 생활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밤마다 동네가 떠내려갈 듯 울었다. 특히나 이름이 간디학교가 뭐란 말인가. 결국 나는 학교 이름이 부끄러워 친구들과 헤어지는 마당에도 어느 중학교로 진학을 하는지 차마 말을 하지 못하였다.
간디학교에서 맞는 첫 1년은 새로운 관계를 맺는 법에 대해 온몸으로 느끼며 터득하는 일뿐이었다. 간디학교는 기숙형 학교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저녁에 눈을 감기까지 모든 순간을 학생들과 공유한다. 자는 순간조차 양옆에 꼭 붙어 누워있으니 24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공교육의 학교일 경우 아침 일찍 등교하더라도 하교를 하면 나만의 자유시간과 사적인 공간 속에서 관계에 지친 마음과 몸을 재정비할 수가 있다. 하지만 간디학교는 그럴 여유가 없다. 나만의 시간을 보낼 분리된 공간과 틈이 없었다. 틈이 있다고 하더라도 잠시라도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면 마음이 불안했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갓 입학한 신입생은, 친구가 되어가는 기로 그사이에 놓여 모든 긍정과 부정의 감정들을 과장하여 느꼈다.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지쳐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나간 자퇴생도 꽤 많았다. 특히 여학생들의 관계 속에서는 무리가 나뉘고 그 안에서 또 나눠지고 깨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싸움은 결코 빠질 수 없었다.
친구가 되어 가는 기로에 놓인 우리들은 수많은 감정을 유영했다. 마음을 재지 않고, 좋으면 마음껏 애정을 표현하고, 싫다면 관심조차 주지 않거나 유치한 싸움을 걸며 서로를 견제하였다. 지나고 보니 내게 중학 시절의 친구 관계는 사회생활의 축소판이었다. 그 안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이나 소비했던 여러 감정과 내가 대처했던 행동들은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첫해 전부를 적응 기간으로 보냈다. 매주 주말에는 집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열리는 축제는 한 학기 동안 모든 수업과 동아리에서 내는 활동 결과물을 보여주는 무대였지만, 나는 필수로 참여해야 했던 학급 공연을 제외하고는 무대에 서지 못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던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일이 소심하고 두려웠던 내게는 가장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1학년은 관계로 인하여 작고 큰 우여곡절을 끊임없이 겪었다. 1년간의 고군분투 끝에서는 ‘관계’의 시작이 될 씨앗에 새싹이 돋았다. 매서운 겨울이 지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간디학교에서는 매 학년마다 필수 교육과정이 있는데, 그중 2학년은 한 학기 동안의 해외이동학습이 있다. 한 학급씩 필리핀 캠퍼스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오는데 얼마나 또 가기 싫다고 엉엉 울며 밤을 지새운 지 모른다. 결국 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마음의 준비조차 하지 못하였는데, 한국마저 떠나버리게 되었다.
자매학교의 같은 학급의 학생들도 모여 두 학교가 2학년의 1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낯선 친구들까지 만나니 의도치 않게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각 학교의 대결구조가 이루어졌다. 또 한 번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학교별 단체전이었다. 단, 이 기싸움으로 예상치 못한 결과가 생겼다. 2학년에 올라와 친해질 겨를도 없이 첫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초반에 자매학교의 친구들과 눈치싸움을 하는 그 짧은 찰나에 여학생 6명 모두가 똘똘 뭉치며 친해져 버린 것이다. 지난 1년의 세월이 무색해지다시피 말이다. 역시 모든 인생과 관계는 타이밍이다. 모든 일에 적시라는 것이 있던 것이었다.
1학년 내내 각자의 무리가 깨지고 편견이 부서지며 빠른 속도로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생생하게 느끼며, 세상을 접하는 눈을 키웠다. 그 사이에서 새롭게 친구가 된 우리들은 매일같이 껴안고 다투며 스스럼없이 서로의 부족한 점들을 채워갔다.
소극적이었고 겁이 많던 나는, 적극적인 친구를 만나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의견을 제시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갔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모여 서로를 보완해주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과분하게 넘쳐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을 때도 있었다. 똘똘 뭉친 우리 6명과 담임 쌤이 쉴 틈 없이 충돌하고 화해하기 바빴다.
학교로 돌아온 2학기는 우리들의 세상이었다.
체육 시간에 쓰는 두터운 매트를 10명이 둘러메고 교실로 가져와 엉겨 붙어 매일같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선생님들께 회수를 당했지만...
가을이 되자 조회 시간에 모인 우리는 장대를 들쳐 메고 마을의 밤나무를 사냥했다. 누구는 장대로 밤송이를 따내고, 누구는 무적 장갑을 끼고 열심히 밤을 주어 모았다. 누구는 그렇게 모인 밤들을 가지고 식당으로 향해 영양사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 밤을 삶아왔고 도서관에 모여 가을 내내 밤을 까먹었다.
도서부에서 주관했던 손편지 이벤트에, 우리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매일 만나는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몰래 교실 벽에 벽화를 그리다 선생님들께 혼쭐이 나 원상 복귀를 시키기도 했다. 1년이 지난 2학년의 우리들은 끈적끈적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2학년의 나는 친구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갔다. 그 사이에서 치열하게 싸워가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가며 말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시너지와 합은 모두에게 값지고 뿌듯한 성취감을 불러왔다. 그 합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본인이 맞다며 주장하면서도 조율해가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던 시간 또한 절대 빼놓을 수 없다. 그런 과정과 시간을 거쳐 하나가 되는 힘을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