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슬픔을 안고
2023년 4월에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나의 마음 기록을 10월의 끝무렵, 즉 가을의 허리 즈음에 다시 적어본다. 그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모두가 원하지 않는 업무를 받았고 우당탕탕 일을 해나가며 하루하루 피폐한 삶을 클리어하고 있다. 스트레스는 건강하지만 더 큰 스트레스로 덮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는지 꼬박꼬박 전화영어도 하고 있고 끝없이 책을 탐독한다. 전시회도 닥치는 대로 찾아가 구경을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일을 하다 보면 원치 않게 내가 가진 무언가를 쏟아내야 한다. 어느 날은 열정, 어느 날은 불행, 어느 날은 기쁨, 어느 날은 슬픔과 같은. 그러면 나는 더딘 속도로 또다시 다채로운 감정들을 내 안에 켜켜이 쌓아간다. 흑색과 백색이 존재하는 책을 읽어 다채로운 상상력을 부풀려보고 들끓는 여름날의 아스팔트를 향해 짜증을 극으로 올리기도 하며 가을의 쓸쓸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다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한숨의 문장으로 쓰고 나니 어딘가 불안하고 위태로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평소의 나는 무척이나 잔잔하고 고요한 어떠한 호수처럼 지내고 있다. 고요함을 묶어두는 나의 이성 덕에 여러 감정들이 미쳐 날뛰어도 스스로 천천히 마음이 회복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어떠한 이성도 나의 슬픔을 막진 못했다.
어느덧 ‘사’를 이따금 목도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친한 이들은 내가 얼마나 천진한지 잘 알고 있기에 굳이 생과 사에서 가까운 쪽을 찾자면 ‘생’이었던 나에게 뜨거운 여름은 ‘사’로 점철된 고통의 시간이었다. 소중한 존재를 물리적으로 마주할 수 없는 상실감. 허탈감. 공허함. 무언가를 게워내고 싶어도 게워낼 수 없을 정도로 텅 비어가던 내면은 기어코 가을이 되어서야 정점에 이르렀다. 나의 작은 고양이. 나의 유쾌한 할머니. 나의 순수를 어루만져주던 존재들이 없는 세상이 천천히 흘러간다. 그들을 잊고 싶지 않아 발버둥을 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죽죽 흘렀다. 우리는 어떻게 인연을 맺어 어찌하여 이 세상에서 일정한 시간을 물리적으로 마주할까. 함께 손을 잡은 날들과 손을 잡지 못할 날들이 순식간에 시차를 벌릴 때마다 그 틈에서 나도 모르게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살려주세요. 이 말이 하고 싶었던 2023년의 여름과 가을. 나는 조금 자랐고 지나치게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