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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해 May 18. 2024

가족 내 희생양, 스케이프고트와 나르시시스트

우리를 이해하고 지키는 방법

 스케이프고트(scape goat)란 고대 유대시대 때 속죄일에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황야로 내쫓기던 양을 지칭하는 속죄양에서 비롯되었으며, 현대에서는 비유적으로 희생양이라는 말로 사용된다. (출처: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가족 안에서 스케이프고트는 역기능가정(부모의 양쪽 또는 한쪽에서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가정)에서 탄생한다. 가족구조의 융통성부족으로 스트레스, 불안, 좌절, 사건, 위기 등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그로 인한 가족구성원의 탈선, 신체적 질병, 가정폭력, 알코올중독 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어리고 눈에 띄는 한 아이를 골라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가정 내의 모든 갈등의 원인을 희생양에게 전가시켜 분노를 쏟아냄으로 가상의 적(희생양)을 통해 핵심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도 일시적으로 갈등을 해소한다.     


 

 최근 오랜만에 친정가족을 만나 카페를 갔었다. 거리도 멀어지고 자주 보지도 않지만, 자주 안보는 사이 나는 많이 컸는데, 그래도 그들 눈에는 내가 아직도 만만한 걸까.

 아빠, “너 유치원 보낸다고 참 돈 많이 들어갔다.”

 나, “그러게, 왜 유치원 보냈대? 난 힘들었어. 없는 집 자식이라고 날 얼마나 차별했는지 알아?”

 엄마, “그래도 네가 유치원을 1년 빨리 갈 수 있었어서 초등학교도 1년 빨리 들어갈 수 있었던 거야. 얼마나 좋니?”

 나, “좋긴 뭐가 좋아? 정상적인 나이에 학교 안보내서 나중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나한테 신고한다고 했어, 불법으로 1년 빨리 입학했다고. 엄마아빠 편하려고 나 초등학교 일찍 입학시킨 거잖아.”

 엄마, “그래도 너 그 덕에 심장병 발견할 수 있었던 거야. 학년 중에 키 작은 아이만 골라 검사했던 건데, 거기에 네가 딱 들어가서 검사했다가 운 좋게 발견한 거잖아. 운명이야.”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는데, 막 속상하고 그런데 언니가 말했다.

 “웃어. 웃으라니깐? 어떻게 해야 저렇게 입꼬리가 내려가지? 난 저렇게 입꼬리 내려간 사람 쟤밖에 못 봤어. 이렇게(자신의 입꼬리를 잡아 올리며) 웃으라니깐?”

 이제는 말해야 한다. 그만하라고. 화를 내야 하고, 가르쳐줘야 한다. 당신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언니, 내 표정까지 통제하려 들지 마. 언니가 다른걸 다 통제해도 내가 순순히 따라주는데  내 표정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잘못된 거야. 언니는 감정 없어? 언니는 안 슬퍼? 나는 슬퍼. 슬퍼서 입꼬리가 내려가는 거야. 일부로 입꼬리를 내리는 게 아니고 저절로 내려가는 건데, 내 감정까지 언니가 통제해서는 안 되는 거야. 그러면 안돼. 안 되는 거야.”

 “아, 그래? 나도 감정 있지... 뭐, 그래, 알겠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있곤 카페에서 더 이상 가족들은 나를 건들지 않았다.     

  


 언니는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때부터 지독한 회피형이었다. 타고나길 순한 기질로 태어난 언니는 부모를 힘들게 하지 않았지만, 부모는 언니에게 관심이 없었고 서로 불화를 빚고 방황하고 빈곤했기 때문에 언니는 자연스레 회피형 성향을 획득하게 됐다.

 오카다 다카시의 “애착수업”에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알려준다.

 회피형 아이를 둔 어머니는 대체로 무심하고 아이가 다가오는 것을 귀찮아했다. 아이가 울거나 슬픈 표정을 지어도 아이를 더 안아주거나 다정하게 대하지 않았다. 이 유형의 어머니들은  아이와 신체 접촉을 할 때도 기쁨보다 불편함을 느꼈다. 이처럼 아이가 아무리 어머니를 원해도 어머니가 다정하게 대하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는 어머니가 더 이상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이런 아이는 부모를 안전기지라기보다 자신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학대하는 존재로 여긴다. 이처럼 부모에게 심리적으로 지배당하면서  자란 사람은 타인을 자신의 자유를 방해하는 번거로운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물리적,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식으로 자식의 안전과 자유를 확보하려는 행동을 하기 쉽다.(78-79)

 부모의 동거 중 준비 없이 임신해 아빠가 출산을 거부했으나 엄마의 강요로 태어난 언니는, 태어난 날  아빠에게 외면을 당했고 외할머니도 엄마를 챙기지 않았다. 엄마는 언니를 낳았을 때 “참 힘들고 외로웠다. “라고 말했다. 아빠와 언니를 기르면서도 아빠는 계속해서 정착하지 못하고 사고를 쳤고, 엄마는 언니를 데리고 외할머니를 찾아갔다. 하지만 외할머니마저도 엄마에게 "애는 얼른 아빠 갖다 줘버리고 새시집을 가자."라고 했고 엄마는 아무도 버릴 수 없어서 다시 아빠에게로 언니랑 돌아왔다.

 그래서 의지할 곳 없던 언니는 혼란스러운 부모 밑에서 지독한 회피형이 되었다. 그리고 회피형 특성 중 하나인 과도한 자기애는 나르시시즘과 연결되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고 자신이 원하는 데로 상황을 조작하려고 한다.      



  썸머의 “아직도 사랑이라고 생각해?”에서는 건강한 자기애와 병리적 자기애를 구별해 설명해 준다.

 심리 조종자(나르시시스트)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며 스스로를 소중하게 가꾸는 일반적인 자기애를 가진 사람들과 구분된다.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반면, 심리 조종자는 자신의 욕구나 필요를 위해 타인을 희생시킨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낳은 자녀와 경쟁까지 할 정도이다.(10-11)

 내가 이때까지 만나본 여러 명의 나르시시스트들의 애착유형은 대부분 회피형에 속해있었다. 간혹 불안형도 있었지만 거의 회피형, 일반적이지 않은 극단적인 회피형에서 나르시시즘이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애착유형과 나르시시스트와 관련된 서적과 영상콘텐츠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회피형은 무조건 나쁘다 또는 나르시시스트다."라는 일반화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회피형은 강한 자기애를 가지고 있고, 갈등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회피하기 때문에 갈등상황에서 회피형의 상대방은 희생당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산채로 불에 타는 고통을 겪으며 죽을 것 같고 죽고 싶고 몇 번을 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탓하는 가족에서부터 나 자체가 존재론적으로 부정당해왔으며 수치스러웠고 그래서 친구와의 관계도 사회생활을 하면서까지도 모든 갈등의 원인은 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면 당연히 갈등은 발생한다. 그리고 갈등은 해결해도 계속해서 발생한다. 그 집단이 유지되는 동안 끊임없이 갈등은 발생하고 구성원들은 해결해야 한다. 애꿎은 희생양을 만들 것이 아닌 진짜 원인을 발견해서 해결하며 집단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가끔씩은 또는 종종... 먼발치에서 바라봐도 된다. 사람들이 모이면 당연히 갈등은 발생하는 거니깐.

 ‘내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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