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와는 3살인가 4살에 이혼했는데, 다양한 눈빛을 경험했다
이혼가정임을 밝히면
내 앞에서는 안쓰러운 표정
무표정
토끼눈
뒤에선 수군수군
뭐 사실 상관없었다.
오래된 일이어서 이혼했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고,
여자들만 살면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린 브라도 벗고 살어~
우린 샤워하고 다 벗고 나와 후다닥 옷을 찾아 나가~ 볼사람도 없거든
그런 표정을 방어하기 위해 여자들만 살면 좋은 장점들을 하나하나 말하다 보니
툭하면 툭 장점들이 나왔다.
근데, 음,,
정말 너무 서러운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건 어머니가 날 부족하게 키운 것도
사랑을 덜 준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서러운지
그건 운동회날 때
아빠들이 멋지게 뛰는 모습
가족들끼리 돗자리에 앉아 밥 먹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우리 아버지가 우리 돗자리에 같이 앉는 걸 상상한 건 아니었다.
그냥 다만 그때 기분이 그랬다.
난 어렸을 때 아버지를 두렵고 무섭고 싫다고만 생각했다.
아마 은연중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싫은 말을 해서 그렇겠지?
미우나 고우나 나의 유전자는 그를 향해있다.
그 사람을 닮은 습관이 나올 때면 어머니는 마치 그 사람을 직면한 듯 끔찍하게 그 습관을 싫어했는데,
손바닥으로 코를 올려 훌쩍 닦는 것,
손톱을 물어뜯는 것 등이 그러하다.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어쩜 똑같냐고
그 눈을 미워하는 눈빛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가장 행복해하며 말하는 아버지를 닮은 유전자가 있는데, 그건 노래를 잘하는 것이었다.
내가 노래를 부를 때는
‘너네 아빠가 노래는 정말 잘했다~’
물결표시는 꼭 해줘야 한다.
어머니는 내 목소리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달란트라며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걸로 사용하라고 하신다.
어머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말하라 하면
반사신경적으로 딱 이야기하곤 한다.
동생이 기타를 치고, 내가 피아노를 치며
같이 찬양을 부르며 놀던 그때다
나도 생각난다. 베란다에 있는 피아노 햇살 맞으며
빛바랜 악보를 펴
동생과 합을 맞추며 노래 부르는 시간들이 행복했지
그런 것들이 우리 가정을 평화롭게 만들었다
아버지에게 감사한 것은
나를 어머니와 만나게 해 준 거
아름다운 목소리를 선물해 준 거
더 이상 연락해주지 않는 것
세 번째는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그건 내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