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론즈실버 May 16. 2023

#16. 고양이가 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데려온 개

또치야, 너가 좀 참아. 생명 하나 살린 거다, 너?

잠에서 소스라치며 일어났다. 창문을 대강 흘깃 보니, 어스푸름한게, 새벽 네시 반쯤 된 것 같았다.

꿈에서, 나는 친구들이 산채로 불에 태워지고 있는 걸 봐야 하는 도살장 개였다. 다음이 내 차례여서 끌려가지 않으려 뒷 두 발로 흙밭을 긁었고 앞발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괴로워하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빨라지는 심박수에 잠에서 깼지만 다행이진 않았다. 이 시간에도 그렇게 죽어가는 개들이 있을 테니까.


터줏대감 소심한 턱시도 고양이를 이미 모시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볼리를 무턱대로 데리고 온 것은, 내가 이 개를 살릴 수 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볼리는 연인의 회사 공사판에 떠돌던 개다. 불현듯 나타나서 공사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꽤 규모가 있는 건물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름 사랑받으면서 자유롭게 지내고 있었다. 솔직히 좀 예쁘게 생기기도 했고.

꼬질꼬질 강아지. 공사판에서 현장 작업자분들이 주는 음식을 넙죽넙죽 받아먹던.


처음 애인이 사진을 보내줬을 땐, 귀엽게 생긴 강아지가 있네, 정도였다. 그곳에 계시는 분들도 잘 챙겨준다고 했고, 그래서 별 신경 쓰지 않으려 했는데...... 곧 공사가 끝나가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면 물이며 밥이며 챙겨주는 이 하나 없었고, 건물이 완공되어도 한동안 사람이 있을 계획은 없다고 했다. 하물며, 이 강아지는 사람 손을 타는, 누군가 키우던 강아지였던 것 같았다. 휘파람을 불면 멀리서도 달려오고, 손도 줄줄 아는 기특한 개였다. 사람 없이는 살지 못할 개였다.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강아지가 지내고 있던 곳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다.


그럼 도대체 강아지는 어떻게 지내게 되는 거지? 일하던 와중에도 머릿속에 자꾸 생각이 난입했다.

그리고 날이 점점 따뜻해져 왔다. 어린 시절을 할머니 댁에서 지냈기에, 알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개장수가 동네를 돌아다닌 다는 걸. 떠도는 개들을 잡거나, 때론 주인 몰래 개를 잡아가기도 한다는 걸.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져 왔다.


공손히 모은 저 손이 자꾸만 생각났다.


갑자기, 어디서 난 용기였는 지는 잘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강아지구조하기], [유기견구조], [들개잡기] 등으로 열심히 찾아봤지만, 대부분 보호소에서 데려오는 방법에 대한 얘기였다. 관련된 정보는 찾을 수 없었고, 이미 동물 보호센터는 만석이었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멀리 사는 개 때문에 더이상 고통 받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오빠! 우리, 그 개 잡아오자!!!! 우리가 키우자!! "


공사장에서 사람들이 모두 떠날 때면, 이렇게 까매진 발로 배웅을 했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15. 퇴사가 잘못된 선택이면 어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