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시작에 불과했다.
“네 엄마가… 어금니를 뽑아서 구석에 숨겨뒀더라.”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원래도 어머니의 치아는 그리 튼튼한 편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계셨기에, 항상 치아 관리에 열심이셨다. 초등학생이던 시절, 어머니의 칫솔질을 보고 ‘와, 저 정도로 이를 빡빡 닦으면 이가 닳아 없어지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어머니의 치아는 주기적으로 아말감 땜질과 금 크라운의 보조를 필요로 했다. (잠깐 딴 길로 새자면, 나는 어머니의 크라운이 뽑히는 걸 눈앞에서 두 번이나 목격했는데 각각 호박엿과 강정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치아를 걱정하시면서도 달다구리한 간식을 포기하지 못하셨다.) 그렇잖아도 약했던 어머니의 치아가 다시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금니 발견 사건’의 진상은 이랬다.
썩을 대로 썩어버린 어머니의 어금니는 제 역할을 다했다는 듯 잇몸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했다. 어머니는 도망간 어금니가 원망스럽지도 않으셨는지, 이 친구를 집 한쪽 구석에 있던 항아리에다 친히 숨겨주었다. 그뿐 아니라 주기적으로 그 친구의 은신처를 찾아 안위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어머니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감지하신 아버지는 날을 잡아 항아리 내부를 샅샅이 뒤지셨고, 어금니는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발각되고 말았다. 아, 막다른 항아리에서 공포에 떨었을 불쌍한 어금니여.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어금니의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해야 할 사건이었다. 만약 어머니께서 그 어금니를 소중히 숨겨주지 않았다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버리셨다면? 우리는 어머니의 치아 문제를 한참 뒤에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긍정적(!)으로 사고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얼마나 더 많은 치아에 문제가 생겼을지 눈앞이 캄캄해졌을 뿐.
어금니 발견 사건 이후,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의 씻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어머니는 치약을 짠 칫솔을 입에 넣더니(여기까진 희망적이었다!), 가만히 물고 있다가(으잉?) 이내 뱉어버렸다(오 마이 갓). 이를 목격한 아버지가 “아니, 이렇게 위아래로 안쪽도 꼼꼼히 닦아야지~”라며 시범을 보이셨지만, 어머니의 지시 수행 능력은 이미 칫솔질을 따라 하는 것마저 어려울 만큼 현저히 저하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치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치과 진료가 시급했다. 본가 인근의 한 치과에 진료 문의를 하자, 치과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치매 환자 분은 저희가 봐드리기 어려워요. 더 큰 병원을 찾으셔야 할 것 같아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어머니의 뇌신경 세포가 치과 진료에도 영향을 끼친단 말인가?
“치매 환자 분들은 저희가 말씀드리는 걸 이행을 잘 못하세요. 말을 잘 이해하시는 경우에도 치료를 거부하시는 경우도 있고요.”
상담사의 설명을 듣고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도 어머니의 치아 상태를 확인하려고 이미 몇 차례나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려보라고 시도해 본 상황이었다. 당신 딴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 보였으나, 실제 어머니의 입 모양은 그저 괴상하게 일그러질 뿐이었다.
고작 “아~”조차도 못하는 어머니가, 치과의사의 이야기를 알아듣고 입을 벌릴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게다가 운 좋게 입을 벌린다고 해도, ‘치료 중에는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을 지킬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치매 환자들은 상황 인식이 수월하지 않을뿐더러, 인식이 되더라도 금방 망각하기 때문에 치료 중 통증이 발생하면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치료가 진행되는 도중 크게 움직이기라도 하면 곧바로 의료사고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의사가 선뜻 진료를 하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 전화를 끊기 직전, 해당 치과에서는 마취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치과를 찾아보라는 조언을 남겼다.
경주에 마취과 전문의를 별도로 고용하는 치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의 수소문도 쉽지 않았는데, ‘치매’라는 단어만 꺼내도 진료가 어렵다는 얘기가 돌아왔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딱 한 곳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었고, 우리는 이 기회마저 놓칠세라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일단 현재 치아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치아 중 많은 부분에서 우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경미한 충치에 대해 보존치료를, 이미 너무 많이 썩어버린 치아에 대해서는 발치를 제안했다.
‘발치를 요하는 충치가 거의 다 어금니인데… 다 뽑아버리고 나면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 거지?’
임플란트를 원하면 가능은 하다고 했다. 다만 발치를 포함한 전 과정에서 매 치료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기에, 충분히 고민해 보고 선택하기를 권고받았다.
또다시 마음속 갈등이 시작됐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도 전신마취를 한 번 하고 나면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 어머니의 몸이 마취를 몇 번씩이나 견뎌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치아 상실 상태를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치아로 음식물을 직접 씹는 저작활동은 뇌 기능 유지에 필수적이라던데. 게다가 유동식만 섭취하게 되면 식사의 즐거움을 잃게 될 뿐 아니라 영양 불균형이 초래될 텐데, 이것도 인지기능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갈등하는 나를 대신하여, 이번엔 아버지께서 총대를 메셨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가 남은 평생 동안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당신마저도 너무 괴로울 것 같다고 하셨다. 아직 나이도 많지 않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한데, 여명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능한 오랫동안 입으로 음식을 섭취했으면 좋겠다는 게 아버지의 의견이었다. 나도 그 마음을 이해했기에, 달리 반대할 수 없었고 결국 어머니의 치아는 임플란트를 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예상대로, 그 이후의 상황은 쉽지 않았다. 부모님은 경주에서 서울까지 몇 번을 더 왕복하셔야 했고, 전신마취 전 금식 규정을 자꾸 잊어버리시는 어머니께서 아침에 믹스커피를 드시는 바람에 시술을 잡아놓은 당일에 일정이 취소되기도 했다. 어머니의 치료가 시작되고 나면, 아버지는 끝도 없이 담배를 피우셨다. 치료가 끝난 후, 전신마취에서 깨어난 어머니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셨는데, 양 볼이 퉁퉁 부은 채 짓던 그 표정이 아직 선명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고통스럽다.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데, 만약 신이 있다면 아무래도 그 축복을 내리지 않는 것으로 나를 단죄하려는 게 아닐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성인에게 권장되는 치과 검진 주기가 6개월임을 알고 있는지? 나는 몇 차례의 충치 치료를 통해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바쁘다는 핑계로 치과 검진을 차일피일 미루곤 한다. 이처럼 정상적인 성인도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건강 문제에는 소홀할 때가 많은데, 하물며 기본 위생 관리가 스스로 되지 않는 치매 환자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심지어 보호자들마저도, 가장 가까운 사람의 치매를 목도한 충격 자체가 어마무시하다 보니 다른 건강 문제까지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초기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두신 분들은 혹여 치매뿐 아니라 다른 질병이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환자를 세심하게 관찰하시길 부탁드린다.
다행히도 최근 몇 년간 치매 환자의 치과 진료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어, 각 권역별 치과대학병원의 ‘장애인 구강진료센터’에서 치매 환자의 전신마취 및 치과진료를 지원한다고 한다. 치매환자에게는 장애등급이 부여되지 않다 보니 보호자 입장에서는 ‘치매’를 곧 ‘장애’로 연관시키기 쉽지 않은데, 부디 우리와 같은 상황에 놓인 분들이 있다면 너무 늦기 전에 주변의 장애인 구강진료센터에서 적절한 조치와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