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가사가 아니고요.
치매 환자들은 본인이 거주하는 집에 있으면서도 보호자에게 '이제 집에 가자, 집에 보내달라'는 요구를 하고는 한다. 이는 지남력이 떨어지며 흔히 발현되는 증상으로, 불현듯 주위 환경을 낯설게 느낀 환자가 충동적으로 불안감을 표출하는 행위에 가깝다.
물론 우리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나에게 “집에 가자”라고 하셨을 때, 나는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아 벙찐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집? 지금 집에 있는데 무슨 집에 가자고 하시는 거지? 혹시 옛날 친정집이 그리우신가?’
“외할머니 댁 가보고 싶으세요?”
“아니, 우리 집. 이제 집에 가자.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데?”
“...? 여기가 우리 집이잖아요?”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이 ‘우리 집’이라는 나의 대답에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무셨다. 당황스러웠다. 여기가 집인데 대체 어디를 가자는 말씀이신가. 이 대화가 이루어진 당일, 어머니는 더 이상 집에 가자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안일하게도 나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순간적인 착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집에 한 번만 데려다주면 안 되나?”
하루가 지나며 어머니의 바람은 더 애절해져 있었다.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어머니는 진심으로 집에 가고 싶으셨던 거다. 쓸쓸하게 한 번만 집에 데려다 달라는 말씀을 하시며, 혹시 내가 집에 보내주지 않을까 봐 눈치를 살피는 어머니의 표정. 마음이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무려 20년을 살아온 집인데 왜 우리 집을 집이 아니라고 하시는 걸까. 혹시 같이 살지 않는 딸이 와있는 게 그렇게도 불편하고 낯서신 걸까. (한참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치매 환자들 중에서는 30년 이상, 심지어는 50년을 거주한 집에서도 “집에 가자”라고 요구하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한다. 기억이 흐릿해지면 익숙하던 것들마저 모두 생소해지는 모양이다.)
그 뒤로도 어머니의 귀가 본능은 계속되었는데, 그나마 대낮에 “집에 가자”는 말씀을 하시면 다행이었다. 일단 나가서 산책을 조금 한 후,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집에 돌아오는 것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으셨기 때문이다. 문제는 밤늦은 시각에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거나, 방금 ‘집에 가는’ 산책을 끝내고 들어왔는데 돌아서자마자 또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실 때가 있었다는 거다. 심지어 당시에는 체력이 아주 좋으신 편이었기에, 한 번 산책을 나가면 1시간은 거뜬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에 가자고 하시면 그게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함께 집을 나서셨지만, 나는 이기적인 딸인지라 다른 방법이 없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귀차니즘이 발동했던 내가 찾은 해결책은 ‘아이스크림’이었다.
우리 모녀는 원래부터 달다구리한 간식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내가 유학(遊學)으로 집을 떠나 지내게 되면서, 본가에서 보내는 주말엔 ‘투게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통을 사 와 같이 퍼먹는 게 월례행사로 자리 잡았을 정도였다. 이 ‘아이스크림 박살 내기’ 행사는 주로 토요일 저녁식사 후 모녀의 은밀한 눈빛교환을 통해 이루어졌다. 일단 시그널이 통하기만 하면 일사천리!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스크림?”이라며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쟁반에 떠먹는 아이스크림과 숟가락 3개(티스푼이 아닌 어른 밥 숟가락이다)를 챙겨 거실로 내오면, 아버지는 숟갈을 뜨는 시늉만 하시고는 그 많은 아이스크림을 두 하이에나에게 전부 양보하시곤 했다.
사람의 기호란 쉽게 변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서, 어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며 불안에 떠시거나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잔뜩 화가 나 계시다가도 달달한 간식을 드시고 나면 기분이 풀리곤 했다. 과거의 추억도 되새길 수 있겠다, 자연스레 어머니랑 대화도 더 많이 할 수 있겠다, 어머니의 기분이 좋을 수만 있다면 단 것 정도야 얼마든지 사드릴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부정망상(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는 망상)’이 심화된 이후에도, 이 ‘아이스크림 전략’은 아주 수월하게 먹혔다. 어머니는 당신만의 세계에 갇혀 아버지를 자주 오해하셨는데, 불만을 토로하시는 도중 내가 조금이라도 아버지 편을 들면 “딸자식 낳아서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며 나에게까지 날 선 반응을 보이시곤 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나를 싸잡아 비난을 가할 때면, 나는 어김없이 아이스크림을 꺼내왔다. 재빨리 어머니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만 나의 정신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기에.
아이스크림을 드신 후 기분이 좋아진 어머니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면, 어머니를 깨워 씻고 주무시게 해야 하나 마음속에 갈등이 일었다. 주무시는 어머니를 깨우면 어머니의 기분이 다시 나빠진다는 사실은 경험칙으로 알고 있었다. 게다가 씻으시라는 잔소리까지 해야 하다니! 또다시 어머니의 불만이 나를 향하는 건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철없는 딸은 불편한 상황을 그저 피하고 싶었다. 또 서로 기분이 상하느니, 오늘만! 정말 딱 오늘만! 그냥 넘어가자는 생각에 양치를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주무시도록 두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