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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_유일한 선택지, 간병의 외주화

가정 돌봄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by 두부맘 Mar 17. 2025

 눈썰미가 좋은 분들은 앞서 발행된 글에서 이미 ‘면회’라는 단어를 캐치하곤, ‘이 가족이 가정 돌봄을 포기했군.’하고 짐작하셨으리라. 비난을 가하셔도 좋다. 어차피 어머니를 시설에 모심과 동시에 감내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부분이다. 나와 같은 상황에 놓여 가족의 시설 입소를 고려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절대 죄책감 가지지 마시라. 전문 인력이 아닌 가족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치매 가족을 돌보기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다. (물론, 어려움을 이겨내 가며 가정 돌봄을 하는 보호자 분들도 많다. 진심으로 존경을 보낸다.)


 초로기 치매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은 환자가 아직 ‘육체적’으로 정정하다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걸어 다녀 한 눈 팔 수 없는 건 기본, 본인의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서 온갖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적극적으로 완력을 쓰니 더욱 쉽지가 않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왜소한 축에 속하고, 아버지는 동년배 남성 표준 체형 정도는 되셨기에 그나마 집에서 돌봄이 가능했던 편이었다. 반대의 경우에는 자가 케어가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요양시설에서마저 감당이 되질 않는다며 입소를 거부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들 한다.




 누가 내게 80억 인구를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하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는 자타공인 ‘극T형’ 인간이다. (“T라고 다 아픈 부모를 내팽겨 치냐?”라고 하면, 흠… 할 말은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평생 돌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께서 먼저 어머니를 시설에 보내자는 말씀을 하실 것 같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심적 부담을 덜어드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내가 먼저 아버지께 어머니의 시설 입소를 강하게 권유드렸다. 아픈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에게는 한계에 다다랐을 아버지를 지켜야 할 의무도 있었다.


 휴직 기간이 끝나갈 때쯤, 휴직 연장과 복직을 저울질하시던 아버지께서는 결국 복직을 택하셨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주간 보호 시설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버지와 내가 곁에 있을 때보다 인지능력이 더 좋아 보이실 때가 많았다. 시설에 도착하면 요양보호사님들과 반갑다고 인사도 하고, 가끔 내가 모셔다 드릴 때면 ‘우리 딸’이라고 자랑도 하셨다. 시설에서는 대화도, 심지어 약 복용(!)도 곧잘 하신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긍정적인 인간관계가 새로이 구축되고 타인과의 교류도 곧잘 받아들이시는 모습을 보니, 진작에 시설을 적절히 이용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돌봄 시간이 종료되어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오면 시설에서 생활하실 때보다 오히려 증상이 심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증상 발현 초기, 당신을 환자 취급하였던 나와 아버지에게 너무나도 큰 서운함을 느끼고 마음의 문을 많이 닫으셨던 게 아닐까 싶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차를 몰고 어머니를 모시러 간 날, 어머니는 “이제 집에 가자”는 내 말에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시고는 마지못해 조수석에 오르셨다. 어머니의 기분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건넸지만, 어머니는 나를 시설 요양보호사님들과 당신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는 훼방꾼 정도로 생각하시는 게 분명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옆에 차가 있는지 없는지 보지도 않고 문을 있는 힘껏 여셨다. 쾅! 아뿔싸, 왜 하필 그 자리에 주차를 했을까. 옆 차는 소위 말하는 '독3사' 차량 중 한 대였다. 우리 차는 그렇다 치고, 옆 차 문이 찌그러진 걸 보는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버지는 별말씀 없이 차주에게 연락하여 사과와 함께 수리비를 배상하셨다. 돌이켜보면 당시 우리 가족이 겪고 있던 수많은 난관 중 돈으로 수습할 수 있는 문제는 그나마 해결하기 쉬운 축에 속했다.




 주간 보호 시설을 다니시며 어머니의 병세 악화가 더뎌진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였지만, 그렇다고 시간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조금씩이지만 지속적으로 나빠졌고, 폭력성이나 배변 장애 등증상들도 차례차례 발현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안타까워하며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시다가, 다수의 기관을 직접 방문하고 알아보신 후에야 가정 돌봄보다 요양시설 이용 여러모로 유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셨다.  


 현재 어머니께서 머물고 계시는 요양원에서는 정말 감사하게도 네이버 밴드 운영을 통해 어르신들의 일정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보호자들에게 공유해 주신다. 평일에는 매일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중증 치매 환자는 단체 활동 참여가 어려운 편이기에 어머니 사진이 자주 올라오는 편은 아니다. 간혹 어머니 사진이나 영상이 올라오면 꼭 다운로드하여 핸드폰에 저장해 두고 종종 들여다보곤 한다. 조금이라도 웃음기를 띤 어머니 사진이 올라오면, 내심 안도한다. 그래, 어쩌면 적당한 자극과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시설이 어머니에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이게 우리 모두가 애증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 적당히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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