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간 기업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학사 졸업 연구원이다. 기계부품을 주로 다룬다. 대학에서 취업 준비를 할 때 학사로 연구소에 지원하면 석박사 출신들의 뒤치다꺼리만 하면서 평생을 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의 학부 생활 동안 제대로 된 실험 장비를 다뤄본 것도 아니고, 논문을 써보지도 않았었다, 석사부터는 특정 교수님 연구실에 소속되어 실험 장비를 통해 데이터를 추출하고, 이를 근거로 졸업 논문을 작성해 볼 수 있다. 2년뿐인 기간이지만 사회에서 생각하는 인식의 차이는 꽤 컸다. 박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민간 기업 연구소에 박사 출신이 입사한다고 하면 연구원이라는 직함 대신 박사님으로 불리며, 과장급 이상의 역할을 기대했다. 내가 생각해도 박사는 박사다. 특정분야에서의 깊이 있는 학문적 탐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의 전공 지식과 논문이 박사의 직함을 지닐 만큼 훌륭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 생활 동안 내 전공에서 더 나아가 석사 또는 박사과정을 밟고 싶지 않았다. 내 전공을 더욱 깊게 공부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기업에서 일하면서 현장을 체험하며 경력을 쌓고, 돈도 함께 버는 것이 내 상황에서 좀 더 현명한 선택인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대학 생활 4년 만에 취업 준비를 하고, 민간 기업 연구소에 입사하게 되었다. 사실 학사 졸업생으로서 연구소에 가고 싶어 했던 건 아니었다. 민간 기업의 공장에도 지원했었지만, 위치 상 연구소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어 내 평소 생활 반경 안에 들어온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어서 연구소에서 일하기로 선택했다. 그 선택의 과정에서 '학사인데 연구소로 가도 되나?'라는 걱정은 있었지만, 입사한 동기들의 학벌을 살펴보고 살짝 안심했다. 대략 신입 교육에서 만난 동기들의 60프로 정도는 학사였다. 30프로는 석사 그리고 나머지 10프로 정도가 박사였다. 민간 기업 연구소라고 해서 박사만 가득한 게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학사로서 민간 기업 연구소에 입사한 뒤 팀 배치를 받고 선배들의 학벌을 살펴보니 구성이 동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팀이 20여 명 정도였지만, 박사는 딱 2명 있었다. 게다가 고등학교만 졸업한 기능직 2명도 함께였다. 이런 모든 학벌이 다양하게 어울려 팀을 구성하고 있었다. 또한 팀장은 석사 출신이었기에 박사라고 해서 꼭 팀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일을 할 때는 내 학사 출신이라는 배경이 민간 기업 연구소에서 그렇게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일하는 동안 열심히 해서 현업의 노하우를 많이 쌓기만 하면 경쟁력이 생길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학사 출신의 한계가 점차 드러나고 있었다.
우선 일 자체가 학사 출신은 좀 더 데이터를 추출하는 반복 업무가 많이 할당되었다. 반복 업무이다 보니 다루는 설비와 전공 지식이 한정적이었다. 그 한정된 경계가 업무 영역이 되어 서로 넘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리가 진짜 연구라고 생각하는 선행 연구는 석, 박사 출신 몫이었다. 그들은 선행 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여 논문을 쓰고 특허 출원을 하는 등 본인의 연구원으로써의 역량을 한껏 발휘했다. 이렇게 주어진 업무에 대해서도 분명 차이가 있었고, 연차가 쌓일수록 누적되어 같은 팀에서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경력이 전개되었다. 특히 이런 경력이 성과를 이뤄내 연구소 임원의 경우엔 박사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뒤늦게 이를 깨닫고 회사를 다니며 석사를 딸 수 있는 사내 제도도 알아보았지만, 경쟁이 너무 높기도 했고 내 업무 분야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주력이 아니라서 지원하는 족족 떨어졌다. 다른 회사로 눈을 돌려보았다. 특정 분야의 경력을 갖고 있는 학사 연구원이 지원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대부분 선행 연구를 하는 대기업들은 연구원을 새로 뽑더라도 석사 이상이라는 지원 자격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렇다면 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하고, 구매나 품질로 지원하려고 해도 그 분야의 경력이 쌓인 건 아니라서 서류에서 광탈이었다. 점차 연차가 올라갈수록 학사 연구원의 입지는 좁아졌고, 실험실에 있는 여느 집기류처럼 쓰다가 정밀도가 떨어지면 교체되듯이 한 순간에 내쳐질 것 같은 그런 위기감이 몰려왔다.
포기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민간 연구소라는 주어진 환경에서 학사 연구원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우선 업무 영역을 넓히기로 했다. 석, 박사 출신은 특정 분야에는 깊지만, 자신의 영역만 좀만 벗어나도 다른 일반인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계 박사라도 전자 분야는 문외한이었고, 오히려 자신만의 영역에 갇혀 다른 영역은 쳐다보지도 않는 꽉 막힌 사람들도 꽤 많았다. 난 여기서 기회를 포착했다. 팀의 순환 배치나 다른 업무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업무의 깊이는 어차피 석, 박사 출신을 따라갈 수 없기에 적당히만 하고, 업무의 영역을 더욱 넓게 펼치고자 하는 요량이었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영역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될 여지도 크다는 생각이었다. 3년 전부터 이를 팀장에게 적극 어필하다 보니 기존에 내가 맡은 업무 중 일부가 순환식으로 후배에게 돌아갔고, 새롭게 할당받은 두 가지 분야의 서로 다른 영역의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영역을 넓히는 것에도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동그란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는 것이었다.
또 다른 생존은 회사 밖에 있었다. 민간 기업 연구소의 학사 출신 연구원의 한계가 명확해지니, 회사 업무와는 별개로 개인 생활 속에서 나만의 경쟁력을 갖추기로 했다. 회사가 나를 놓아버리는 순간 나도 가볍게 손을 놓아줄 수 있는 그런 가벼운 관계가 되기 위해서였다. 회사 일은 효율적으로 업무 시간 내에서 정리하고, 개인 시간에는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책도 읽고 운동도 했다. 아이를 돌보며 글도 썼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이런 생활이 힘겹거나 싫지만은 않다. 석, 박사 출신들은 나름의 전문성으로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면 되는 것이었고, 학사 출신인 나는 좀 더 넓은 분야를 적당한 깊이로 두루두루 배우며, 서로 융합하여 이리저리 섞어 나만의 색깔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학사 출신 연구원의 생존법이었고, 회사 생활을 유지하면서 나라는 존재의 경쟁력을 더욱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