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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Oct 06. 2022

당신이 그 일의 전문가잖아요!

"전문가라는 단어가 결코 가볍지 않도록..."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다 보면 "당신이 전문가잖아요."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조금 이른 경우에 3~4년 정도만 지나도 이 말을 듣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당신이 만약 지금 회사에서 이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떠한가? "아 내가 정말 드디어 이 분야에서 전문가로 올라섰구나! 별거 없는 나를 전문가로 인정해 주다니 정말 고마운데?"라고 느낄 수 있다. 나도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그랬으니까. 아마도 회사 생활 한지 5년 차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이제 어느 정도 일이 능숙해지고, 사수에 도움 없이도 하나씩 일을 처리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자신감도 생기고, 월급 받는 만큼 일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도 넘친다. 그러다 이런 '전문가'라는 말을 듣게 되니, 기분도 좋아지고 이 사람에겐 어떤 질문을 해도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게 되며, 심지어 일을 떠넘겨도 감사히 받는다. 이렇게 회사에서 인정받는 기분, 회사 생활하며 처음 느껴보는 짜릿함이다. 만약 당신이 원하는 걸 상대방에게 얻기 위해서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만큼 간단한 것이 없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나도 분명 처음엔 전문가라는 말이 좋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연차가 쌓일수록 더 많이 듣는 말인데도 뭔가 꺼림칙하다. 내가 왜 이렇게 느끼고 있는지 하나씩 정리해보고자 한다.


혹시 간단히 해결하려고 그러십니까?

  직장인 10년 차쯤 되니, 이런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일단 업무에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벌인 일을 본인이 스스로 수습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이러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야근도 해야 할 것 같다.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니 친절한 팀원이 하나 보인다. 잘 구슬리면, 간단히 문제의 해결책을 조언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살짝 접근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 과장님! 저번에 이 일 어떻게 진행하셨어요? 제가 하니까 문제가 있어서요... 이 쪽에 전문가라고 알고 있는데, 해결 좀 해주세요!" 그럼  그 친절한 그는 "아, 이건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풀어가면 됩니다. 제가 관련 자료들이랑 이력들을 공유해드릴게요!"라고 말한다. 전문가라는 말 하나로 그를 통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였다. 그가 친절했으니 다행이지, '저 전문가 아닌데요? 왜 이걸 저한테 물어보세요?'라는 식으로 반응했다면, 난감한 상황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전문가라는 말은 사람을 잘 보고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고, 친절하게 답변과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면,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커피라도 한 잔 사주도록 하자!


혹시 일을 나한테 떠넘기려고 이러십니까?

  이 것도 위에서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인데, 좀 더 선을 넘어간다. "당신이 전문 가니까, 나한테 떨어진 일도 당신이 좀 해봐."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내가 하면 오래 걸리니까 당신이 빠르게 해결해줘. 많이 해봤잖아!" 아마도 속마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도 호구처럼 전문가라는 말만 듣고, 몇 년간 내 일이 아닌 일을 떠맡은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떠넘겨진 일이 내 일이 되어버렸고, 심지어 팀장님도 그 일이 마치 내 일인 양 취급하고 있었다. 결국 그 일이 내 책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걸 다시 제자리로 돌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이후로 난 다른 사람들에게 전문가라는 말을 잘 안 하게 되었다. 혹시나 나도 이렇게 전문가라고 말하면서 내 일을 떠넘기려고 한 적이 있는지를 항상 경계하게 되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전문가로 인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 일은 내 일인 것이다. 만약 정말 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일을 그대로 넘기지 말고, 일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만을 발췌해서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당신에게 이 일의 전문가는 몇 명입니까?

  가장 얄미운 사람 중에 하나인데, 해당 업무를 나에게 물어보면서 "당신이 전문가니까, 좀 일려 줘!"라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가서 똑같이 "전문가니까 일려 줘!"라고 말하는 걸 듣게 된다. 이 사람의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자기 외에 주변 팀원들을 모두 전문가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인은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전략을 사용한다. 얄밉긴 한데 어찌 보면 똑똑하게 일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듣는 전문가 입장에서 똑같은 내용의 일을 다른 전문가에게 또다시 물어보는 은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 사람 입장에선 잘 모르니까 여러 명에게 물어보고 이를 취합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문제는 전문가들에게 동시에 여러 번 물어보며, 그게 그 전문가들의 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전문가는 생각한다. '기껏 알려줬더니, 내 말을 신뢰하지 않는구나!'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런 손 안 대고 코 풀기 전략을 이용한다면, 그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전문가의 의견만을 듣거나, 시차를 두고 개별적인 장소에서 전문가들에게 물어볼 수 있도록 하자!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내 마음이 조금 꼬인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장에서 전문가라는 말을 너무 헤프게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한두 번 해본 것뿐인데도, 사람들은 '이거 해봤다며? 당신이 전문가네!'라는 식이다. 이게 정말 전문가가 맞는 건가 싶다. 전문가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그런 가벼운 마음이 부작용만 가져올 뿐이다. 하지만 당신이 '진심으로 인정하여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존경'으로 누군가를 전문가로 불러준다면, 그는 당신에게로 와 꽃은 아니지만 꿀 같은 조언들을 서슴없이 해줄 것이다. 지금은 다른 데로 가셨지만 내 사수였던 분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며 전문가로 인정하고 있었더니, 그와의 관계가 굉장히 끈끈해졌던 기억이 난다. 진심으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회사 생활이 각자를 본인이 맡은 일의 전문가로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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