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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Feb 24. 2024

그녀가 내게 숨기고 있는 것(1)

제 아내는 흙수저 출신입니다.(ep.4)

  우리의 데이트는 행복의 나날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내 마음은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미 봄날이었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더욱 따스했다. 서로 직장인이라 평일엔 그리 자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금요일에 퇴근하고서부터는 주말 내내 붙어 다녔다. 그녀를 만나는 동안은 전혀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를 보더라도, 밥을 먹더라도, 카페를 가더라도 그랬다. 그녀 또한 내게 밝은 미소를 항상 보내주었다.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종일 행복해졌다. 점차 그녀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어느 날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랑 결혼까지 할 거야!"


친구들은 부러움 반, 의심 반의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다.


"에이, 너 지금 29살인데 뭐 벌써 결혼이야."

"그래도 단단히 빠지긴 했나 본데? 하하."

"언제까지 가나 보자. 근데 뭐 하는 사람인데? 이뻐?"


정식으로 만난 지 세 달도 채 안되었지만, 뭔가 확신이 들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겠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정말이야! 난 그녀와 꼭 결혼하고 말 거야."


친구들에게 막상 이렇게 내뱉고 나니, 그녀를 만나는 동안 내가 그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건지, 정말 내가 아는 그녀가 그녀의 전부인 건지 궁금해졌다. 내 결혼 의사를 그녀에겐 알리지 않았지만, 점차 그녀를 더욱 깊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데이트는 평범했다. 남들이 하는 데이트 코스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게다가 우리 둘은 내향형이라 시끌벅적한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우리 둘만 잔잔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좋아했다. 영화, 공연, 전시 등 같이 보면 좋을 문화생활을 즐겼고, 맛있는 맛집과 분위기 있는 카페도 찾아다녔다. 시간이 허락하면 야외로 나가 공원을 산책하고 신선한 공기도 마셨다. 이따금 1박 2일로 근교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는 때때로 저녁이 되면, 맛있는 음식에 술을 곁들였다. 그녀는 그리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었고,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마셨다. 그녀는 술보다는 술안주를 좋아했다, 해산물을 즐겼고, 국물음식도 좋아했다. 심지어는 곱창이나 닭발과 같은 음식들도 털털하게 잘 먹었다. 닭발을 입에서 발골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다. 손에 투명 장갑을 끼고 빨간 양념을 묻혀가며 입을 오물오물 거리는 것 또한 내겐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렇게 술 한 잔씩 하는 날에는 밤이 늦어져서 녀를 바래다준 후,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 했다. 바래다주는 길은 항상 아쉬웠지만, 그녀는 딱 우리가 처음 만난 날에 헤어지던 사거리까지만 나와 함께 걸었다. 그녀가 나에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오늘 즐거웠어! 바래다줘서... 고마워."


그녀의 뒤로는 항상 그랬듯 어두컴컴한 골목길이 가로등 한, 두 개의 빛을 의지한 채 존재감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항상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골목길 무섭지 않아? 내가 집 앞까지 데려다줄게."


그녀는 항상 괜찮다며 나를 택시 태워 보내고는 어두운 골목길로 자취를 감췄다. 나 또한 못 이기는 척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집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골목길 뒤로는 개발되지 않은 구식 빌라들이 겹겹이 그들만의 틈을 유지한 채 계단식으로 언덕 위에 쌓여있었다. 마치 시멘트로 이루어진 산 같았다. 어렸을 적 나도 IMF로 직격탄을 맞고 우리 가족이 반지하 생활을 했을 때, 친구들에게 집을 보여주는 게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그래서 하교를 하고는 친구들 몰래 집으로 먼저 가거나, 운동장에서 놀다가 아예 뒤늦게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녀도 아마 내 어렸을 때의 그런 마음일 거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불금을 즐기고 있었다. 역시나 마지막 코스는 그녀 동네에 있는 술집이었다. 자주 가는 프랜차이즈 횟집이었는데, 분위기도 깔끔하고 가격도 저렴하여 그녀가 좋아하는 해산물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그날따라 그녀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로 쌓인 불만을 내게 토로하고 있었다.


"오빠는 공무원 사회로 안오길 천만다행이야. 여기는 정말 꽉 막혔어."

"왜 무슨 일 있어?"


나는 속을 식히라며 그녀에게 맥주를 한잔 따라주었고, 그녀는 벌컥 들이키고는 한참을 회사 욕과 상사 욕을 했다. 마지막으로는 공무원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점까지도 피력하고 있었다. 사기업에 다니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었다. 렇게 홧김에 세잔, 네 잔을 연거푸 마시자 그녀가 취하기 시작했다. 혀는 꼬이고 눈은 풀리고 있었다. 나도 어느 정도 맞춰주느라 취기가 올라서 그런지 술 취한 그녀의 모습을 처음 보고는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모습을 하나씩 발견할수록 한층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그녀는 한참을 회사 얘기를 하다가 본인이 어쩌다 공무원을 하게 되었는지를 또 풀어놓고 있었다. 이미 아는 얘기이지만, 나는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오빠, 나는 말이야... 대학교 때 법학과 나온 거 알지? 나.. 근데 과생활을 하나도 안 했어... 웃기지?"

 "어어, 알지, 알지. 예전에 얘기했잖아."


그녀는 내 반응에 흡족한 듯 이어서 말했다.


"입학하자마자 공무원 되겠다고... 공무원 시험 준비만 계속했잖아? 그때 대학교 생활도 좀 즐기고 할걸... 근데.. 후회는 안 해. 난 무조건 공무원이어야만 했으니까..."


그녀가 횡설수설하는 게 재미있었지만, 웃음을 꾹 참고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오빠! 내가 왜 이렇게 공무원에 목숨 걸었는 줄 알아...?"

"안정적이고 오래 일할 수 있어서 그런 거라며..."


취한 그녀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황을 한 나는 혼란스러웠다.


'뭐지? 내가 대답을 잘못했나...? 아니면... 원래 주사가 우는 건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는 한동안 그녀가 우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그녀의 옆 자리로 조심스레 다가가서 그녀를 감싸 안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말했다.


"나... 사실... 아빠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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