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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Apr 30. 2024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제 아내는 흙수저 출신입니다. (ep.12)

  뭐, 어쨌든 프러포즈는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에 돌아온 우린 이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쳤다. 30살의 나와 29살의 그녀 가진 거라곤 건강한 몸뚱이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지원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우린 우리가 모은 돈을 탈탈 털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 지난번 그녀의 동기가 결혼했던 결혼식장을 예약했다. 역에서 거리도 가깝고, 음식도 맛있었고, 주차장도 잘 되어 있었기에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결혼식장이라 생각했다. 이 결혼식장도 이미 성수기에는 예약이 꽉 차 있었고, 우린 그중에서 식대가 저렴한 날짜를 골랐다. 8월 27일. 8월은 더운 여름이지만, 마지막 주라 그 더움이 한 꺼풀 벗겨질 수 있는 날이라 생각했다. 우린 결혼식장에 이 날짜를 예약하고는 각자의 부모님들께 알렸다. 그리고선 상견례가 열렸다.



  상견례 전에도 이미 나는 그녀의 어머니와 식사도 몇 번 했었고, 그녀 또한 우리 부모님과 인사를 자주 나눴었다. 상견례는 그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다. 한식당에서 만난 우리, 겨우 다섯 명이 참석하는 조촐한 식사 자리였다. 나도 외동이었고, 그녀 또한 외동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공통점을 찾았을 때 그녀가 이런 물음을 던졌다.


"우리가 외동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글쎄, 그럼 난 대학도 졸업 못했을걸..."

"그래도 형제자매가 있으면, 서로 의지도 되고 좋잖아."

"그건 그렇지만..."


가지지 못한 것을 동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현실적으로 보면 아마도 더 힘든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나는 우리 집 형편에 외동이라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식당에서 한정식이 정갈하게 나왔고, 우린 거의 말없이 식사를 했다. 부모님도 그녀의 어머니도 이 자리가 매우 어색한 듯싶었다. 우린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결혼식장을 예약한 얘기를 꺼냈다. 한참을 들으시던 어른들은 그저 "잘했네."라고 간단하게 답하셨다. 그러고 보니 나의 모든 성장과정에서 부모님은 날 지지해 주셨다.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알아서 잘하겠거니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셨다. 이번 결혼식 준비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의 손이 묻은 것은 결혼식장 인원수를 조정할 때뿐이었다.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말씀하셨다.

 

"그래도 우리 쪽에서 100명은 될 것 같은데, 시골에 계신 친척들도 다 올 테니까."

"그러면 일단 200명으로 예약할게요."

"그러는 게 좋겠다."


나의 답을 들으시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다시 숟가락을 드셨다. 이 외에 예단, 예물 등 다양한 준비과정이 있었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생략하기로 했다. 각자의 집에서 알아서 하는 걸로 합의했다. 서로 교환은 없는 것이었다.



  거의 통보식이었지만, 결혼식장과 날짜까지 부모님께 알린 후 상견례도 끝냈다. 이젠 진짜 우리는 발로 뛰면서 결혼식을 준비해야 했다. '스드메'라고 하는 것들을 예약해야 했고, 친구들을 만나 청첩장을 돌려야 했다. 가장 중요한 신혼집은 대출을 끌어모아 투룸 빌라를 전세로 계약했다. 없는 집안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던 우리는 다행히 대출이라도 잘 나올 수 있었다. 회사에서 나오는 대출과 은행에서 나오는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 모았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우린 현실의 벽에 부딪쳐 여러 번 한숨을 쉬었지만, 그때마다 옆에 있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는 웃어넘겼다.


"우리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응, 행복한 가정을 꾸려보자."


각자의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물려주신 게 아예 없는 게 아니었다. 건강한 신체와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해 준 뒷바라지는 우리에게 큰 자산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든 과정에서 웃을 수 있는 '긍정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다. 이거면 됐다. 충분하다. 우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혼식을 준비하면서 나는 확신이 섰다. 그녀와 함께라면 우린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미래가 밝다면 아무리 힘든 과거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 뿐이다. 그녀의 웃음이 이를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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