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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May 08. 2024

신혼생활 3년 만에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

제 아내는 흙수저 출신입니다. (ep.13)

  드디어 우린 하나가 되었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결혼식을 마치고 꿈만 같았던 신혼여행도 잘 다녀왔다. 한국에 돌아오니 현실이 시작되었지만, 이젠 둘이 힘을 합쳐서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더 위안이 되었다. 비좁아 보였던 신혼집 투룸도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집을 꾸리니 그럭저럭 생활할 만했다. 그리고 우린 이 보금자리에서 희망찬 미래를 꿈꾸었다. 각자의 회사생활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으며, 집에 도착해서 마주한 우리는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털어놓기 바빴다. 주말엔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기도 했다. 이대로만 살아가도 우리의 삶은 순탄하게 흘러갈 것만 같았다.


  결혼한 지 1년이 흘렀고, 우리의 삶이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집안일은 자연스레 분배되었으며, 시드머니도 차곡차곡 모아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서로 아이에 대해서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 평화롭고 여유로운 삶이 깨질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그렇게 세월은 계속 흘러갔고, 우리는 2년이라는 신혼생활을 보냈다. 집 전세 계약을 2년 더 연장했다. 부모님들도 가끔씩 하던 아이 얘기를 이젠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이대로가 좋았다. 그리고 행복했다. 우리 앞가림까지는 어떻게든 우리의 힘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딩크족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부부는 아이 없이 둘이서만 살아가는 딩크족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그래, 가진 것도 없는 집에서 태어나봤자 애도 고생 우리도 고생이지...'


잘 한 선택이라 여겼다. 지금껏 2년이란 세월을 우리 부부가 무탈하게 잘 지내왔는데, 앞으로 20년도 우리 둘이서만 잘 지내면 될 뿐이었다. 아내도 역시나 나의 생각에 공감하듯 아이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가끔씩 TV로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혼잣말로 '나는 못해...'라고 되뇌기만 했다.



  결혼 3년 차가 되었을 때 현실을 마주하고 있던 우리는 금 더 미래를 바라볼 여력이 생겼다. 아내와 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가 있는 삶을 조심스레 예상해 보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에서 나온 자식은 틀림없이 예쁠 거야. 그렇지?"

"우리가 평생 일하면 아이 하나쯤은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이 외에도 모든 예상 질문들에 우린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아이와 함께 하는 가족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우리는 어차피 평생 일할 것을 각오하고 있었고, 우리 개인에게 쓰는 시간과 돈의 가치보다는 아이에게 쓰는 시간과 돈의 가치가 훨씬 더 높을 거라 생각되었다. 결국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을 때 내 나이는 33살, 아내는 32살이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내가 방에서 신문지를 깔고 큰 볼일을 보는 꿈이었다. 엄청나게 큰 대변을 보고 있는데, 거기서 볼일 보면 안 된다며 어머니한테 혼이 났다. 잠이 깨고 나서 잠시 얼떨떨했다. 너무 생생했기 때문이다.


'똥 꿈은 돈 들어오는 꿈이라는데, 로또라도 하나 사야 하나?'


하루 종일 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임신테스트기를 내게 들이밀었다. 두 줄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똥 꿈도 태몽으로 꾸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왜 이리 생생하게 꿈을 꾸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우린 서로에게 축하했고, 아이를 가진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 피가 보인다는 좋지 못한 소식을 들었고, 병원에서도 최대한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최대한 누워만 있었지만, 그럼에도 결국 유산을 하고 말았다. 한동안 우울해 있던 우리는 다시 준비해 보기로 했다. 준비하는 과정 동안 술도 끊고 음식도 가려 먹었으며, 과로와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변기에 앉아서 큰 볼일을 보고 있는데, 너무나 많은 대변이 나와 변기에 흘러넘치는 꿈이었다. 이것도 매우 생생했다. 나는 꿈에서 깨자마자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웠다.


"우리, 아이를 가진 것 같아."


아내는 긴가민가 하는 눈치였지만, 다음 날 아침에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이 나온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거봐, 내 말 맞지?"


우리는 한 번 유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레 임신 초기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쯤 태명을 지었다. 똥 꿈을 꾸고 갖게 된 아이의 태명은 당연 '똥이'였다. 그리고 난 '똥이애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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