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모임에서 만난 나보다 20살은 어린 매력적인 친구가 프랑스 유학을 4년간 다녀왔다고해서 호기심에 어떻게 거길 갔냐고 하니 이렇게 대답했다.
음.. 뭐 거창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 먼나라까지 유학간 내력이 조금 엉뚱하고 싱겁기는 했다.
속내에 더 무언가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녀의 말을 빌리지면 별 이유가 없었단다. 프랑스말이 아름다웠더라는....
내가 바이올린을 배운다고 하니 주변에서 신기해했다. 리코더도 못 부는 사람이 그 어려운 현악기를 한다고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웬 바이올린? 왜?"
"음... 우연히 영상에서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켜는 걸 들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그래서 내가 한 번 켜보려고 아리랑을..."
무심히 대꾸하고 나니 싱겁다고 생각했던 젊은 그녀의 대답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아...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 않구나
처음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켜는 것을 들었을 때 마음이 아려왔다. 이상했다. 가장 한국적인 한의 노래가 저 이국의 악기와 이렇게 어울릴 수가 있을까 ? 나도 켜보고 싶었다. 음계가 뭔지도 모르겠고 악보를 볼 줄도 모르고 평생 악기라고는 해 본 적없고 관심도 없었는데 갑자기 아리랑을 내 손으로 직접 켜보고 싶었다.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제자가 기억이 나 바로 다음 날 전화번호를 묻고 선생님을 소개 받았다.
매주 금요일 주1회 수업을 일대일로 받기로 했다.
"혹시 다른 악기를 배워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 없으시구나 혹시 악보 볼 수 있으신가요? 아! 모르시구나
네? 왼손잡이라 활에 힘이 안 들어가신다구요? 아! 그러시구나 음 하하하 괜찮아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천천히 제가 가르치는대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넉넉한 몸만큼이나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가진 선생님은 굉장히 차분하고 호쾌하신 분이었다.
"자 활은 이렇게 쥐시구요.. 힘 빼시구... 오늘 배우실 내용은 '자동차가 빵빵' 자 시작! 자동차가 빵빵"
미미미미 라라 미미미미 라라 자동차가 빵빵 자동차가 끼끼끼끽
잔뜩 어깨에 힘을 주니 담이 걸려 죽겠고 긴장으로 가볍게 쥐어야 할 활을 너무 세게 쥐어서 빵빵 해야할 자동차가 자꾸 끼끼끼끽 이 되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잘 하고 계세요."
착했다. 40분 수업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 주시면서 자세 하나하나를 고쳐주시고 악보를 못 읽는 나를 위해 계이름을 일일이 책에 적어 주셨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바이올린을 어떻게 잡는지 몰라 활을 거꾸로 들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셨다.
주1회 40분수업하는데 뭔 돈을 이렇게 받아 먹나 살짝 욕했는데 마치고 나오면서 선생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역시 사람은 돈 내고 제대로 배워야 한다.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나오는데 괜히 우쭐했다 길가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 보는거 같았다.
23살 검도 할 때 사람들이 (대부분 초보자들) 죽도를 들고 집에 가는 걸 보고 이상했었다. 죽도를 왜 집에 들고 가지? 도장에 놔두면 되는데?
이제야 알겠더라
바이올린을 들고 가니 내가 막 바이올리니스트같아 보였다. 케이스 안에 든 바이올린이 어디서 얻은 연습용인지 알게 뭐고, 내가 '자동차가 뿡뿡'을 켜는지 누가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