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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Oct 20. 2022

내가 바이올린을 배우는 이유

'3년안에 아리랑'

"그냥 텔레비전에서 어떤 남자가 프랑스말을 하는데 너무 듣기가 좋더라구요."

우연히 모임에서 만난 나보다 20살은 어린 매력적인 친구가 프랑스 유학을 4년간 다녀왔다고해서 호기심에 어떻게 거길 갔냐고 하니 이렇게 대답했다.

.. 뭐 거창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 먼나라까지 유학간 내력이 조금 엉뚱하고 싱겁기는 했다.

속내에 더 무언가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녀의 말을 빌리지면 별 이유가 없었단다. 프랑스말이 아름다웠더라는....


내가 바이올린을 배운다고 하니 주변에서 신기해했다. 리코더도 못 부는 사람이 그 어려운 현악기를 한다고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웬 바이올린? 왜?"

"음... 우연히 영상에서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켜는 걸 들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그래서 내가 한 번 켜보려고 아리랑을..."

무심히 대꾸하고 나니 싱겁다고 생각했던 젊은 그녀의 대답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아...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 않구나


처음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켜는 것을 들었을 때 마음이 아려왔다. 이상했다. 가장 한국적인 한의 노래가 저 이국의 악기와 이렇게 어울릴 수가 있을까 ?  나도 켜보고 싶었다.  음계가 뭔지도 모르겠고 악보를 볼 줄도 모르고 평생 악기라고는 해 본 적 없고 관심도 없었는데 갑자기 아리랑을 내 손으로 직접 켜보고 싶었다.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제자가 기억이 나 바로 다음 날 전화번호를 묻고 선생님을 소개 받았다.

매주 금요일 주1회 수업을 일대일로 받기로 했다.


"혹시 다른 악기를 배워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 없으시구나 혹시 악보 볼 수 있으신가요? 아! 모르시구나

네? 왼손잡이라 활에 힘이 안 들어가신다구요? 아! 그러시구나 음 하하하 괜찮아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천천히 제가 가르치는대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넉넉한 몸만큼이나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가진 선생님은 굉장히 차분하고 호쾌하신 분이었다.

"자 활은 이렇게 쥐시구요.. 힘 빼시구... 오늘 배우실 내용은 '자동차가 빵빵' 자 시작! 자동차가 빵빵"

미미미미 라라 미미미미 라라 자동차가 빵빵 자동차가 끼끼끼끽   

잔뜩 어깨에 힘을 주니 담이 걸려 죽겠고 긴장으로 가볍게 쥐어야 할 활을 너무 세게 쥐어서 빵빵 해야할 자동차가 자꾸 끼끼끼끽 이 되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잘 하고 계세요."

했다.  40분 수업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 주시면서 자세 하나하나를 고쳐주시고 악보를 못 읽는 나를 위해 계이름을 일일책에 적어 주셨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바이올린을 어떻게 잡는지 몰라 활을 거꾸로 들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셨다.

주1회 40분수업하는데 뭔 돈을 이렇게 받아 먹나 살짝 욕했는데 마치고 나오면서 선생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역시 사람은 돈 내고 제대로 배워야 한다.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나오는데 괜히 우쭐했다 길가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 보는거 같았다.

23살 검도 할 때  사람들이 (대부분 초보자들) 죽도를 들고 집에 가는 걸 보고 이상했었다. 죽도를 왜 집에 들고 가지? 도장에 놔두면 되는데?

이제야 알겠더라

바이올린을 들고 가니 내가 막 바이올리니스트같아 보였다. 케이스 안에 든 바이올린이 어디서 얻은 연습용인지 알게 뭐고, 내가 '자동차가 뿡뿡'을 켜는지 누가 아나...

토스트 가게에서 토스트를 주문했는데 주문 받으시는 분이 바이올린을 유심히 보시기에 다리를 우아하게 꼬고 바이올린을 톡톡 두드렸다.


한 달이 다 돼가자 이젠 제법 반짝반짝 작은 별 정도는 켠다 (이건 한 달이면 초등도 다 할 수 있는 단계이긴 하다) 바이올린에서 소리가 나니 신기했다. 첫날에 끼끼끽 소리만 나던 악기에서 작은별이 나오다니 ...

너무 신기해서 애들한테 계속 들어보라고 엄마 바이올린 켤 수 있다고 자랑을 했다.

애들이 시끄럽다고 텔레비전 좀 보자고 했다.  

 


"선생님 혹시 아리랑만 죽어라 연습하면 6개월 안에 켤 수 있을까요?"

"아뇨.. 진짜 잘 하시는 분은 1년 반 정도? 어머님같은 경우는 3년쯤?"

네? 3년이라구요? 아리랑을 제대로 켜려면 떨림을 잘 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단다.

그렇지 뭐든 쉬운 게 있겠나 세상을 거저 먹으러 들면 되나 뭐든 영글어야지 ..

오늘은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를 배웠다.

시작은 창대하나 언제나 끝이 미약한 나는 시작도 속전속결이지만 끝내는 것도 빠르다(프리다이빙 서서히 포기각이다 .더 하면 죽을것 같다 진심으로 .. 이퀄은 되는데 산소가 부족하다)

그래서 나를 어르고 달래기로 했다.

만약 네가 1년 동안 바이올린을 배운다면 지금 공짜로 얻어서 쓰고 있는 이 바이올린을 버리고 100만원 하는 바이올린을 구입해 줄게..

만약 네가 3년 동안 바이올린을 계속 켠다면 아리랑을 켜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려 줄게.

만약 가 5년을 바이올린을 켠다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단에 가입해 보자..

 니가 흰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 입고 바이올린을 오케스트라에서 켠다고 상상해봐 와! 멋지지 ? 사람들이 너만 볼거야 저 늙고 멋진 사람 누구냐고 . 너 관종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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