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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Nov 04. 2023

내가 바이올린을 배우는 이유 2

오케스트라 정기 공연 D- 48

"뭘 하라구요? 선생님? 오케스트라 정기 공연요????"

"네네!! 할 수 있어요. 연습하면 돼요. 걱정 마세요."

선생님은 황당해 하는 내게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고개를 아래위로 마구 흔들어 주셨다.

"청소년들 중심으로 된 오케스트라 모임이에요. 매년 12월 정기공연을 하는데 지금부터 연습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바이올린 시작한 지 5개월 쯤 선생님께서 갑작스레 제안하셨다. 이런 공연하면 실력이 확 늘어나니 좋은 기회라고 참석하라고 하신다. 

오 ... 그럼 나도 막 오케스트라 그런거에 들어가서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고 꽃다발 받고 막 스포트라이트받고 박수받고 뭐 그러는 건가? 누굴 초대하지? 그냥 다 부를까?  아무것도 모르고 설렜더랬다.

"진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아직 악보도 못 보는데?"

"그럼요 충분해요 시간 많아요."

"할게요.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무식해서 용감했고, 선생님은 자신의 노련함과 능력을 맹신했다.


연습을 시작한 지 3개월 후...

 참담했다. 아직도 악보를 볼 줄 몰라 계이름에 123숫자를 써서  보고 있고, 나아질 거라 생각한 바이올린은 여전히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이들 학예회 발표회 정도로  생각했던 나는 12곡을 켜야 한다는 소리에 기가 질려 버렸고,(오늘 앵콜곡 한곡 추가 됐다. 앵콜은 무슨..... 12곡도 토하겠구만... 추가 악보를 받는 순간 나보고 죽으라는 소린가싶어 이상한 신음소리가 나왔다.) 

하면 할수록 더럭 겁이 났다. 

어린이 합창단들이 3곡을 노래한다고? 어린이 발레단도 들어온다고요?  백조의 호수를 켜야한다구요?

에? 이탈리아에서 성악가가 오셔서 투우사의 노래를 부른다구요?  포항에서 제일 큰 공연장을 대관했다구요? 지역 신문에도 실렸다고요?

선생님!!!!! 

이건 아니잖아요..... 그냥 작은 학예회같은 것처럼 별거 아닌듯 말씀하셨잖아요..... 도대체 선생님은 저 뭘 보고 이런 제안을 하신겁니까....  저 어찌 합니까...

선생님도 원망스러웠고,  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등떠밀어준 제자(처음 바이올린 소개해준 녀석)도 미웠다.


"엄마, 이 정도면 그냥 민폐야. 차라리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해. 뭐 박자도 안 맞고... 지금 그거 에델바이스였어? 난 제목보고 알았네. 이건 뭐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

"닥쳐... 그냥 가.. 니들 방으로..."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 매일 2시간씩 연습해서  용을 쓰고 줄을 잡아 손가락 두 개가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였고,기형적인 바이올린 포즈에 어깨가 아작이 나서 아침마다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아파 오면 노력의 결과물이라 생각하며 혼자 뿌듯해했더랬다. 

애들이 그지 꺵꺵이 소리가 난다고 해도 1년도 안됐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많이 늘지 않았나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처음 합을 맞출때까지는.....


12월에 공연을 앞두고 석달 전부터 비올라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가 모두 모여 합주를 한다고 선생님께서 지정된 장소를 알려 주실때는 바이올린을 어깨에 두르고 가방에 12곡의 악보를 쫙 넣고 가는데 괜히 고개가 빳빳해지고, 머리도  쓱 한 번 넘겨 주었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 보는거 같았다. 

주차된 차에서 내리면 10분 갈 거리를 일부러 천천히 걸었고, 직선으로 가지 않고 빙 둘러서 갔다. 

바이올린 든 나 좀 봐 달라고.....


2층으로 올라가니 20명 남짓 아이들과 어른 두서너명이 앉아 활을 고르고 있었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단장님의 눈짓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 전부터 킬킬거리며 폰으로 게임을 하던 애들이 (머리가 노랗고 시끄러운 아이들이라 한심하게 쳐다봤었다.)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미친듯이 캐러비안의 해적을 비브라토(떨림)까지 자유자재로 켜면서 날아다녔다.

나는..  나는 한 시간 반 동안 단 한곡도 제대로 켜지 못했다.

단 한곡도.....

집에서 제법 연습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속도가 달랐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속도에 어버버하고 있으면 악보는 벌써 훌쩍 넘어가 있었고, 한 번 놓치면 계이름을 몰라 어디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콩나물대가리만 멍청히 보고 있다가 슬그머니 활을 내렸다.

좀 느린곡은 따라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맺고 끊는 타이밍을 놓쳐 혼자 끼잉 튀는 소리에 앞에 꼬마가 나를 휙 돌아 보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코딱지만 애들한테 눌리는 게 너무 창피하고, 그렇게 연습했는데 단 한곡도 못 따라하는 내게 자괴감이 들어 괴로웠다. 

노란머리에게 물었다.

"너 얼마나 했니?"

"5년요."

틈만나면 폰게임을 하는 뚱뚱한 친구에게 물었다.

"6년요."

1년미만인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성인들도 더러 보였는데 레벨이 달랐다. 준프로들이었다.

한 시간 반의 연습이 끝나고 어떻게 나왔는지 정신이 없었다. 

무슨 정신으로 바이올린을 챙겼는지 모르겠다. 나올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무하고도 마주치고 싶지않았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내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을 것 같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 평생 이렇게 자괴감과 좌절감에 두통이 날 정도로 스트레스 받은 적이 몇 없었다. 바이올린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었다. 

손에 들었던 바이올린을 슬며시 어깨로 메어 뒤로 감췄다.


"선생님, 저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공연 빠지면 안될까요? 제가 악몽을 계속 꿉니다. 비행기를 코앞에서 놓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꿈을 연속으로 꾸고 있어요."

" 헉! 그 정도로 스트레스 받을 줄 몰랐네요. 일단 팜플렛은 나왔어요... 이름도 들어가 있고요.. 그래도 그렇게 힘드시면 12월 공연 전까지 해 보고 빠지셔도 돼요."

팜플렛이 나왔다고요?

울상을 하고 팜플렛을 빼꼼히 보는데  제 2 바이올린 누구누구 내 이름 석자가 딱 보였다. 

아... 씨,,,, 좀.. 많이 멋지네. 이놈의 관종끼를 .....

"선생님....쫌만 더 해 볼까요 그럼?"

"네네. 아직 두달 남았으니 좀 더 해 봐요. 연습한 게 아깝잖아요.. 그래도 정말  많이 느셨어요..."

나는 용감했고, 선생님은 노련했다. 


오늘도 오케스트라단과 합주를 하고 왔다. 3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투우사의 노래를 켤 때 못 따라 잡아  벌개졌고, 캐러비안의 해적을  얼렁뚱땅 따라갈 때 조금 창피했다. 에델바이스를 완전히 따라 잡았을 때는 울컥해서 살짝 눈이 빨개졌다. 


앞으로 공연까지 48일 남았다.

공연을 앞두고 더 견디지 못 하고 그만 둘 지 끝까지 가서 내 평생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할 지 나도 이 이야기의 결말이 몹시 궁금하다. 

<제일 힘든 캐러비안의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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