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티나인 Feb 06. 2024

내가 바이올린을 켜는 이유3

또다른 위시 리스트

또다시 시작


2023년 12월 24일 오후 7시 공연

오후 3시에 모여 마지막 리허설을 마치고, 단원들 대기실에서 단체로 사 온 김밥 한 줄을 꼭꼭 씹어 먹고 7시 공연장에 섰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어린이 합창단, 소프라노, 바리톤, 이탈리아에서 오신 마시모 피아니스트 선생님 등 거의 100명의 출연진들과 그 가족들로 공연장은 후끈후끈 시끌벅적했다.


"자, 이제 하프 연주 끝나면 줄 맞춰 입장합니다. 무대 뒤에서 조용히 대기해 주세요."

스태프의 외침에 꼬맹이들과 한 줄로 서서 무대 뒤로 걸어갔다.

 검은 정장 옷에 양말까지 까만색으로 갖춰 입고 바이올린을 들고 컴컴한 무대 뒤에서 줄을 맞춰 대기하고 있었다.

  평소에 신지 않던, 급조해서 산 싸구려 2만원짜리 구두에 발가락이 꼽아들고 긴장으로 다리에 쥐가 났지만 문지를 생각도 못 했다.

고개를 꼿꼿이 치켜 들고 앞만 봤다. 그러지 않으면 도망가고 싶어질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두근 심장이 몹시 날뛰었다.

떨지 말자고 다짐하며 고르는 심호흡은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반백살에 이런 큰 무대는 처음이었다.

악보가 엉키면 어떡하지

나 혼자 삑사리나면 어쩌지

너무 긴장해서 활을 떨어뜨리면........

아냐아냐 다시 심호흡하자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해골이다...... 시체다...... 백년이면 다 죽을 사람들이다.......(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이런 생각을 하니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나... 사이코페스인가?)

아무도 나 볼 사람 없다. 다들 자기 새끼들 보러 왔지 나보러 왔겠냐 어차피 우리 가족만 나 볼텐데 뭔 걱정이냐....

계속계속 중얼거렸다.

하프소리가 끝나고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들릴 때 들어가라는 스태프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심호흡 심호흡  시체 시체 해골 해골 객석에 절대 눈돌리지 말기.'

눈에 힘 빡 주고 허리 곧게 펴고 리허설 때 준비한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첫 왈츠곡을 시작으로 마지막 앵콜곡 '크리스마스 송'이 끝날 때까지 일부러 객석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보면 심장이 터져 죽을 지도 몰랐다.

마시모 선생님의 왈츠 반주곡, 발레리나의 발레에 맞춰 켠 '백조의 호수', 소프라노의 노래에 켠 '하바네라'

몇 곡을 실수 없이 켜고 나니 그제야 숨이 좀 쉬어졌다. (너무 빠른 곡은 중간에 몇 개 놓쳤다. 70명이 넘는 단원들 사이 구석 진 곳 누가 알겠나. 활만 열심히 맞췄다.)

장장 6분에 걸친,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캐러비안의 해적'이 끝나고 활을 높이 치켜 들었을 때 우레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고 나도 활짝 웃었다. 진짜 진짜 활짝!!!!!! 그렇게 시원하고 가뿐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결국! 마침내! 6개월간의 고통이 끝났다!!!!!!!!!

도래미도 못 켜던 내가 1년만에 이렇게 큰 무대에서 13곡을 켰다는 건 바이올린 선생님의 말씀처럼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마지막 리허설에 선생님께서도 놀랍다고 하셨다.

나도 내가 놀라웠다.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아 어금니 꽉 깨물었다. 목이 좀 따끔했다.


"엄마!!!!!!! 여기여기!!!"

수많은  인파 속에서 돈 아깝다고 사오지 말라고 한 꽃다발을 한아름 들고 있는 애들과 남편, 오지말라고 누누히 얘기 했는데 몰래 와 꽃다발을 들고 있는 친구들.....

"정말 정말 멋졌어.. 진짜 고생했어!! 어떻게 그렇게 잘 하냐? 놀랐어"

못 해 먹겠다고 ..너무 힘들다고 징징대는 나를 몇 달 동안 다 받아 준 친구들의 맹목적인 칭찬에 마음이 둥둥 떠 다녔다.

출연진의 몇 배가 넘는 하객들로 로비는 발 디딜틈이 없었고, 포토존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줄을 서 있어

포기하고 대충 구석에서 사진을 찍어댔다. 솔직히 이때까지도 혼이 반쯤 나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천장을 보고 대자로  누웠다.

피곤해서 금방 잠 들 줄 알았는데 눈이 말똥말똥했다. 막내가 찍어준 동영상 '캐러비안의 해적'을 돌려 보고 돌려 보고 또 돌려 봤다.

와.... 씨.... 이걸 내가 어떻게 했지?

계속 내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려줬다. 잘 했어... 진짜 수고 했어....

몇 달 동안 어깨가 아작나게 연습하고 ( 공연 끝나고 너무 아파 병원 갔더니 오십견이란다. 염증이 많이 생겼다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케이크를 옆에 두고 퍼먹으며 했더니 일주일 사이 3키로가 쪘지만.......

한 달 내내 그 때를 생각하면 얼굴에 미소가 실실나고, 도파민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와 발이 둥실둥실거렸다.

이제 좀 쉬자... 이젠 좀 천천히 가자.... 인생에 후회스러운 일 하나가 없어졌다. 행복했다.


"네? 해외공연요? 오스트리아랑 독일이요? 버스킹 한다고요? 아 쌤 못해요 저 진짜 못 해요."

"아니요, 할 수 있어요. 아직 일 년 남았잖아요. 해 보고 안 되면 안 하셔도 돼요."

매년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공연을 간단다. 작년에는 미국을 갔는데 올해는 유럽이란다.

아!!! 선생님 또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제가 관종이라는 걸 벌써 아신겁니까?

아 절대 안 돼. 얼마나 고통스러웠는데 ... 50넘어 하니 오십견이 왔잖아. 의사도 바이올린 좀 쉬라고 하잖아.

이러다가 너 큰일 나...... 하지마 하지마 ..... 너 지나쳐 심해 과유불급 과유불급 네버 네에에버!!!


근데 쌤 .... 언제라고요?



                                                                                                                                                                                                                           




이전 11화 내가 바이올린을 배우는 이유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