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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티나인
Feb 06. 2024
내가 바이올린을 켜는 이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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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시작
202
3
년 12월 2
4
일 오후 7시 공연
오후 3시에 모여 마지막 리허설을 마치고, 단원들 대기실에서 단체로 사 온 김밥 한 줄을 꼭꼭 씹어 먹고 7시 공연장에 섰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어린이 합창단, 소프라노, 바리톤, 이탈리아에서 오신 마시모 피아니스트 선생님 등 거의 100명의 출연진들과 그 가족들로 공연장은 후끈후끈 시끌벅적했다.
"자, 이제 하프 연주 끝나면 줄 맞춰 입장합니다. 무대 뒤에서 조용히 대기해 주세요."
스태프의 외침에 꼬맹이들과 한 줄로 서서 무대 뒤로 걸어갔다.
검은 정장 옷에 양말까지 까만색으로 갖춰 입고 바이올린을 들고 컴컴한 무대 뒤에서 줄을 맞춰 대기하고 있었다.
평소에 신지 않던, 급조해서 산 싸구려 2만원짜리 구두에 발가락이 꼽아들고 긴장으로 다리에 쥐가 났지만 문지를 생각도 못 했다.
고개를 꼿꼿이 치켜 들고 앞만 봤다. 그러지 않으면 도망가고 싶어질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두근 심장이 몹시 날뛰었다.
떨지 말자고 다짐하며 고르는 심호흡은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반백살에 이런 큰 무대는 처음이었다.
악보가 엉키면 어떡하지
나 혼자 삑사리나면 어쩌지
너무 긴장해서 활을 떨어뜨리면........
아냐아냐 다시 심호흡하자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해골이다...... 시체다...... 백년이면 다 죽을 사람들이다.......(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이런 생각을 하니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나... 사이코페스인가?)
아무도 나 볼 사람 없다. 다들 자기 새끼들 보러 왔지 나보러 왔겠냐 어차피 우리 가족만 나 볼텐데 뭔 걱정이냐....
계속계속 중얼거렸다.
하프소리가 끝나고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들릴 때 들어가라는 스태프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심호흡 심호흡 시체 시체 해골 해골 객석에 절대 눈돌리지 말기.'
눈에 힘 빡 주고 허리 곧게 펴고 리허설 때 준비한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첫 왈츠곡을 시작으로 마지막 앵콜곡 '크리스마스 송'이 끝날 때까지 일부러 객석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보면 심장이 터져 죽을 지도 몰랐다.
마시모 선생님의 왈츠 반주곡, 발레리나의 발레에 맞춰 켠 '백조의 호수', 소프라노의 노래에 켠 '하바네라'
몇 곡을 실수 없이 켜고 나니 그제야 숨이 좀 쉬어졌다. (너무 빠른 곡은 중간에 몇 개 놓쳤다. 70명이 넘는 단원들 사이 구석 진 곳 누가 알겠나. 활만 열심히 맞췄다.)
장장 6분에 걸친,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캐러비안의 해적'이 끝나고 활을 높이 치켜 들었을 때 우레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고 나도 활짝 웃었다. 진짜 진짜 활짝!!!!!! 그렇게 시원하고 가뿐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결국! 마침내! 6개월간의 고통이 끝났다!!!!!!!!!
도래미도 못 켜던 내가 1년만에 이렇게 큰 무대에서 13곡을 켰다는 건 바이올린 선생님의 말씀처럼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마지막 리허설에 선생님께서도 놀랍다고 하셨다.
나도 내가 놀라웠다.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아 어금니 꽉 깨물었다. 목이 좀 따끔했다.
"엄마!!!!!!! 여기여기!!!"
수많은 인파 속에서 돈 아깝다고 사오지 말라고 한 꽃다발을 한아름 들고 있는 애들과 남편, 오지말라고 누누히 얘기 했는데 몰래 와 꽃다발을 들고 있는 친구들.....
"정말 정말 멋졌어.. 진짜 고생했어!! 어떻게 그렇게 잘 하냐? 놀랐어"
못 해 먹겠다고 ..너무 힘들다고 징징대는 나를 몇 달 동안 다 받아 준 친구들의 맹목적인 칭찬에 마음이 둥둥 떠 다녔다.
출연진의 몇 배가 넘는 하객들로 로비는 발 디딜틈이 없었고, 포토존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줄을 서 있어
포기하고 대충 구석에서 사진을 찍어댔다. 솔직히 이때까지도 혼이 반쯤 나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천장을 보고 대자로 누웠다.
피곤해서 금방 잠 들 줄 알았는데 눈이 말똥말똥했다. 막내가 찍어준 동영상 '캐러비안의 해적'을 돌려 보고 돌려 보고 또 돌려 봤다.
와.... 씨.... 이걸 내가 어떻게 했지?
계속 내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려줬다. 잘 했어... 진짜 수고 했어....
몇 달 동안 어깨가 아작나게 연습하고 ( 공연 끝나고 너무 아파 병원 갔더니 오십견이란다. 염증이 많이 생겼다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케이크를 옆에 두고 퍼먹으며 했더니 일주일 사이 3키로가 쪘지만.......
한 달 내내 그 때를 생각하면 얼굴에 미소가 실실나고, 도파민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와 발이 둥실둥실거렸다.
이제 좀 쉬자... 이젠 좀 천천히 가자....
인생에 후회스러운 일 하나가 없어졌다. 행복했다.
"네? 해외공연요? 오스트리아랑 독일이요? 버스킹 한다고요? 아 쌤 못해요 저 진짜 못 해요."
"아니요, 할 수 있어요. 아직 일 년 남았잖아요. 해 보고 안 되면 안 하셔도 돼요."
매년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공연을 간단다. 작년에는 미국을 갔는데 올해는 유럽이란다.
아!!! 선생님 또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제가 관종이라는 걸 벌써 아신겁니까?
아 절대 안 돼. 얼마나 고통스러웠는데 ... 50넘어 하니 오십견이 왔잖아. 의사도 바이올린 좀 쉬라고 하잖아.
이러다가 너 큰일 나...... 하지마 하지마 ..... 너 지나쳐 심해 과유불급 과유불급 네버 네에에버!!!
근데 쌤 .... 언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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