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처럼 따라오는 피할 수 없는 고독과 외로움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불현듯 외로움이 몰려올 때가 있다.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그립고, 언어 장벽 때문에 직장에서 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들이 SNS에 올라올 때면 괜히 마음이 허전해진다. 직장에서 작은 실수라도 한 날엔 자책까지 더해져, 타지에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해외 생활을 하는 사람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로 첫발을 내딛거나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해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름 독립 7년 차인 내 입장에서 뉴욕에서 유용하게 써먹은,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나만의 꿀팁들이 있다.
우선,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원래 즐기던 취미를 놓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취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이 됐건, 다른 여가 활동이 됐건 간에, 나라가 바뀌었다고 내 취미까지 없애선 안 된다. 나는 한국에서 취미로 하던 주짓수를 미국에서도 찾아 몇 달간 다녔다. 미국에 온 초반이라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런 상황이 더욱 용기를 주었다. 직장 때문에 아침반을 다녔는데, 그곳은 진정한 실력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공유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주짓수’를 향한 열정이었다.
항상 먼저 와서 웃으며 인사하던 블랙 벨트의 백인 할아버지는 내가 한국어로 "넘겨"라는 말을 가르쳐 드린 후로 스파링을 할 때마다 “예지, 넘겨! 넘겨!”를 외치곤 하셨다. 또 다른 퍼플 벨트의 실력자분은 나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고, 유창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동작 하나하나를 직접 보여주며 차근차근 가르쳐주셨다. 언어를 넘어 취미를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나 역시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허리 부상으로 주짓수를 그만두었지만, 그 뒤로는 친구들과 클라이밍을 다니며 뉴욕 곳곳의 클라이밍장을 찾아다녔다. 나중에는 혼자서도 여러 곳을 탐방하며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힘든 상황일수록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운동을 하는 동안엔 다른 걱정 없이 오로지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고, 체력이 떨어질수록 감정적으로 더 지치기 마련이다. 힘들 때일수록 체력 관리가 필수다.
두 번째는 내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다이어리를 써왔고, 이제는 5년 넘게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미국 생활에서 다이어리 쓰는 습관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아무리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도, 집에 돌아와 느끼는 공허함은 어찌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유독 내 작은 방이 크게 느껴지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그런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갔다. 마음속에 둥둥 떠다니는 감정들을 붙잡아 글로 옮기면 생각이 정리되고, 숨겨졌던 내 진짜 감정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마주하며, ‘아, 내가 이래서 힘들었구나’ 하고 스스로 위로하게 된다.
같은 길을 눈을 뜨고 걷는 것과 감고 걷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형태를 알 수 없는 감정일수록 더 두렵다. 하지만 그 실체를 알게 되면, 생각만큼 두려운 존재가 아니게 된다. 두려워하는 감정을 직시할 때, 그것을 마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라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된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 버텨왔는지 새삼 대견하게 느껴진다.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힘을 주는 것 같다. 매일 쓰는 일기는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응원과도 같다.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면 내일도 잘 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나를 다시 용기 내게 만든다.
이렇듯 취미 활동이 나를 세상과 연결해 준다면, 다이어리 쓰기는 내면과 연결되는 시간을 준다.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나는 비로소 나를 온전히 돌볼 수 있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몸과 마음을 모두 챙기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작은 순간들이 쌓여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외로움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취미 활동을 통해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다이어리 속에서 나 자신과 대화를 이어갔다.
위의 어떠한 것들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아 보는 건 어떨까. 말을 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내 감정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생각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주변에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고민에 갇혀 살지만, 사실 우리 모두 비슷한 감정과 싸우고 있지 않을까. 내면에 본질적으로 있는 고민의 모양은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감사하게도 뉴욕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과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그들과 고민을 나누며 큰 힘을 얻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기에, 뉴욕에서의 경험만큼이나 이들이 내게 값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나누지 못할 고민들은 가족과 이야기하면서 풀어나가기도 했다. 말을 하다 보면 ‘아, 내가 이래서 힘들었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외롭다면, 잠시 눈을 감고 주변을 떠올려 보자. 멀리 서라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들 역시 당신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고민과 외로움 속에 서 있을지 모른다. 서로에게 작은 손길을 내미는 순간, 내가 느끼는 외로움이 나만의 것이 아닐 때, 그 외로움은 더 이상 마냥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 복잡한 세상에서 외로움을 품고 살아간다. 외로움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할 때, 그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압도하지 못한다.
이러한 점들은 해외 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내가 항상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다. 가끔은 하루가 벅차더라도, 단 10분, 20분 동안이라도 좋은 일이 있었다면 그 하루는 충분히 가치 있는 날이다. 매일 조금씩 나를 돌보는 작은 행동들. 글을 쓰고, 몸을 움직이며,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이런 자잘한 것들이 모여 삶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내면의 작은 기둥들을 튼튼하게 세우고 돌봐야 나라는 집을 단단하게 지탱할 힘이 생긴다. 이건 해외 생활을 넘어, 어디에서든 내가 나 자신을 지키고 성장하는 방법이다. 외로움 속에서도 우리는 그 안에서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나를 위한 기둥들을 세워가며 조금씩 더 강해질 수 있다. 이것들은 어디서든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