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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Oct 17. 2024

어둠 속의 속삭임: 뉴욕의 핼러윈 이야기

[뉴욕의 축제] 한밤중, 마법이 시작되는 순간

어느 10월의 밤, 가을바람이 서늘하게 등을 스치며 어딘가 모르게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어둠 속에 숨겨진 무언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기분.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적막 속에서 바람만이 속삭인다. 다시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덮치며 하얀 형체가 한순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사라졌던 세계가 다시 살아나려는 듯한 이 분위기. 그렇다, 바로 핼러윈이 다가왔다.


미국 전역이 핼러윈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공포를 즐기는 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교도 축제에서 유래된 핼러윈은 원래 죽은 자의 영혼과 정령들이 되살아난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귀신에게 자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괴물, 마녀, 흡혈귀의 모습으로 변신해 거리를 돌아다녔고, 이제는 이 전통이 한 해의 가장 큰 축제로 자리 잡았다.


뉴욕의 핼러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와도 같다. 이 날만큼은 도시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누구나 현실을 벗어나 자신이 되고 싶은 누군가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거리마다 상상 속 캐릭터들이 활보하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 상기된 표정을 띤다. 아이들은 'Trick or Treat'을 외치며 이웃집을 돌고, 사탕으로 가득 찬 바구니를 안고 해맑게 웃는다. 이 날 뉴욕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놀이동산이다.



그중에서도 뉴욕에서 핼러윈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열리는 핼러윈 퍼레이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장관이다. 이 퍼레이드는 그야말로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개성을 담은 화려한 코스튬을 입고 거리로 나서며, 퍼레이드 행렬은 6번가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도시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와 함께 형형색색의 마차와 캐릭터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추고, 환상적인 퍼포먼스가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상상 속의 장면이 현실로 펼쳐지는 순간이다. 뉴욕의 핼러윈은 마법 그 자체다.


퍼레이드만이 전부는 아니다. 뉴욕은 10월이 시작되면 그 자체로 변신을 시작한다. 거리의 상점들이 서로 경쟁하듯 핼러윈 장식으로 가득 채워지고, 어느 마트를 가든 몸통만 한 거대한 호박들이 진열된다. 이 커다란 호박들은 집으로 옮겨져 각자의 개성을 담은 잭 오 랜턴으로 탈바꿈하고, 도시의 밤을 으스스하면서도 아름답게 장식한다. 핼러윈의 상징이 된 이 호박들은 그 자체로 핼러윈의 열기를 상징하며, 미국이 이 축제에 얼마나 진심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뉴욕은 값비싼 집값으로 인해 주택이 적고 건물 사이에 간격이 좁아 비교적 집을 꾸며놓은 장식물이 적은 편이지만 근처 뉴저지만 가도 마당에 온갖 핼러윈 조형물들과 잭 오 랜턴이 넘쳐난다. 또 호박을 직접 캐서 구매할 수 있는 농장들도 시기해 성행해 있다. 


또한, 뉴욕의 핼러윈 시즌에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경험은 'Haunted House'이다. 뉴욕 전역에 다양한 공포 테마의 '유령의 집' 체험 장소가 마련되며, 실감 나는 분장과 효과로 관람객들에게 짜릿한 공포를 선사한다.  이러한 장소들은 핼러윈 시즌에만 운영되니 핼러윈 뉴욕의 으스스한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길 바란다.  


이 밖에도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호박 조각 대회, 핼러윈 테마로 꾸며진 놀이동산과 하우스 파티 등 이 모든 것이 뉴욕을 특별하게 만든다. 상업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뉴욕에서 맞는 핼러윈은 단순한 축제를 넘어선다. 사람들이 자신이 되고 싶은 무언가로 변신해 도심을 누비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변모하는 순간. 뉴욕의 핼러윈은 그 자체로 꿈같은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시간이다.





그날은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이 모두 코스튬을 준비해 만나는 날이었다. 각자 비밀리에 준비한 코스튬 덕분에 누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스파르타 장군 복장을 완벽하게 재현해 나타났을 때, 모두 빵 터져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갑옷과 헬멧까지 제대로 갖춘 모습이 어찌나 어울리던지, 영화 속 한 장면이 현실에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친구가 멋진 뱀파이어로 변신해 나타난 순간이었다. 뱀파이어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과 긴 망토를 휘날리며 등장하는 모습에, 다들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이내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그날 밤, 모두의 코스튬은 그 자체로 작은 공연 같았다. 일 년 중 이벤트로 한 단락을 쉬어가는 일. 마냥 똑같기만 한 일상에 마디마디를 끊어준다. 


뉴욕에서 맞이하는 핼러윈, 그 순간만큼은 모든 사람이 현실을 잠시 내려놓고, 상상 속 세상을 경험하며 서로의 경계를 허문다. 이 도시는 핼러윈을 통해 우리의 내면에 숨겨진 동심과 열정을 꺼내고,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선사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밤, 뉴욕의 핼러윈은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경계에서 우리가 잠시나마 잊고 지냈던 감정을 되살린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이 도시에선 누구나 마법을 믿게 된다는 사실을. 뉴욕의 핼러윈은 그저 하나의 축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상상하고, 새로워질 수 있는, 동경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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