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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en 나봄 Jul 21. 2023

행복은 횟수로, 불행은 평균으로

포도 나무는 살기 위해 산다(ft. 김경일 - 마음의 지혜)

어렸을 때부터 우리 가족은 암묵적으로 '아침 인사'를 하는 것을 가족들 간의 규칙으로 삼았다. 하루의 시작을 기쁘게 시작해야 온종일 긍정적인 운이 서로를 돕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공주, 잘 잤어? 쭈쭈쭈로 하루를 시작해볼까?"




여기서 '쭈쭈쭈'는 <아침 다리 마사지>다. 

아빠께서는 어디서 들으셨는지 어린 아이의 관절을 부드럽게 자극해주면 키가 큰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 아침마다 나와 동생의 다리를 가볍게 마사지 해주셨다. 




© jillsauve, 출처 Unsplash                                




덕분에 어릴 때는 아빠 손길 타고 키가 쭉쭉 자라라는 의미의 5분짜리 아침 다리 마사지, '쭈쭈쭈'를 매일 아침 받으며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아침에 등교할 때마다 졸려서 미간을 찌푸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상쾌하게 웃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아빠의 다정하고 유쾌한 아침 인사 덕분이었다. 




오늘 아침은 이런 대화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어요. 확실히 아침 인사를 즐겁게 하면 우울감보단 즐거움이 더 커지더라고요^_^              




내가 우리 가족만의 유구한 전통(?)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침 인사라고 하는 간단한 행동으로 '행복의 빈도'를 늘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를 더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울하고 슬플 때, <행복해지는 법>을 익숙하게 실천할 줄 안다는 의미다.









근 며칠 동안 2월의 사태를 떠올리며 많이 괴롭고, 또 힘들어했다.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 날카로운 수술칼마냥 내 몸 속 장기 전체를 헤집을 때, 섬뜩하게 덮쳐오는 고통과 스트레스로 비명을 질러댔다. 




© all_who_wander, 출처 Unsplash




스트레스가 시작된 지 이틀 째가 되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감정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울 때 내가 친구들 가운데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24년 지기 친구의 당부를 떠올렸다. 




"나 시간 많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정말 힘들면 무조건 전화해.


너 스스로 감정 갈무리

잘 할 거 알거든?

내가 24년 내내 니 절제력을

봐왔는데 그걸 모르겠니?


그런데 <괜찮다>고 생각하지 마.

넌 항상 너 자신한테 너무 엄격해서 

옆에서 <안 괜찮다>고 브레이크

걸어줘야 해."




전화를 건지 3초도 지나지 않아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마치 '아, 드디어 때가 됐군.'이라는 느낌, 출전 명령 받기 직전의 군인의 자세로 친구는 나와 대화할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마음 놓고 친구에게 내 힘든 점을 쏟아낼 수 있었다. 정신이 한결 말끔해졌다.




© wocintechchat, 출처 Unsplash




"난 솔직히 내가 그런 일을 겪으면 한동안 크게 무너질 것 같거든? 근데 너는 너 스스로 어떻게 해서든 단시간에 빨리 일어서려고 하잖아. 실제로도 그렇게 해왔고. 도대체 비결이 뭐야?"


"글쎄, 2월부터 줄곧 고민해봤는데,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운 것과 별개로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힘이 있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서인가봐."




나에게 <행복해지는 힘>은 사실 별다른 것이 아니다. 

<행복해지는 힘>은 내가 나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나만의 메뉴얼을 상황에 맞게 잘 실천한다는 의미다.  




[ '행복'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전반적인 나의 상태를 체크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만족스러운 상태를 10점이라고 했을 때, 8점이 넘으면 '행복'이라는 합격 점수를 주고, 5점 정도에 머물러 있다면 '모르겠다'거나 '행복하지 않다'라고 대답하는 식입니다.


한편 불행을 생각하면 구체적인 사례를 떠올립니다. '최근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건이 있었나?'를 먼저 생각한 후에 그 사건이 얼마나 컸는지, 혹은 얼마나 자주 닥쳐왔는지를 헤아리지요. 


100명에게 물어보아도 결과는 비슷합니다. 행복은 전반적인 만족도의 평균을 계산하고, 불행은 구체적인 사례를 찾는 것이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의 패턴입니다.

-마음의 지혜(김경일) 中 ]





인지 심리학자이자 아주대학교 교수인 김경일 교수님은 행복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경험'이라고 정의하신다. 교수님은 슬픔과 고통, 괴로움이 하나 없는, 삶의 만족도가 평균 이상이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점, 의외로 행복한 순간은 완벽한 준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행복은 '나쁜 게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 '좋은 게 있는 상태'

라는 것입니다.(김경일)"




학창 시절 500원 짜리 컵 떡볶이 하나를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즐거웠던 기억. 


길 잃은 아이를 엄마에게 데려다 줘서 뿌듯했던 기억. 


가을 아침 햇살이 유달리 따스하고, 하늘이 청명해서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기억.




정말 작고, 어찌보면 하잘 것 없는. 

소소하지만 행복하고, 배가 살짝 간질거리며 미소가 저절로 나는 순간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여기서 우리 집안의 아침 인사 문화가 연결된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어렴풋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이 곧 '행복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금전적으로 유복하진 않았으나 마음만큼은 늘 따뜻하고 충만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듯, 나는 상황별로 스트레스에서 행복함으로 감정을 전환할 수 있는 나만의 메뉴얼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참고로 이 메뉴얼은 끊임 없이 개정된다). 




많이 힘들면 혼자 아지트 카페에 가서        사장님이랑 놀다오기도 한다 :D                                




1) 내가 기분이 우울해서 한 없이 가라앉을 때는 가벼운 츄리닝을 입고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한다. 산책하다 만나는 첫 번째 카페에서 가장 달달한 메뉴(대개 망고 스무디)를 주문해서 마시며 마실을 다닌다. 


2) 누군가에게 질투심을 느낄 때는 그 사람에게 배울 점 한 가지, 카카오톡 선물 한 가지를 함께 보낸다. 배울 점을 적으면서 내가 뭘 고쳐나가야 하는지 가늠하고, 이런 가르침을 주는 상대에게 감사함을 느끼도록 노력한다. 


3) 누군가가 원망스럽거나  서운한 감정이 들면 혼자서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아 장문의 편지를 쓴다. 이때 커피 머신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어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마신다. 다 쓴 편지는 안전하게 불살라버린다. 


4) 무언가 외롭고 허전한 감정이 들 때는 절대로 주변 사람을 찾지 않는다. 대신 근처 카페에서 달달한 간식(주로 마카롱)을 하나 사 먹으며 책을 읽고, 카페에서 나갈 때 반드시 주인에게 한 가지 이상의 칭찬을 건낸다. 




© lidyanada, 출처 Unsplash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들 중 하나인 연예인들도 저마다의 행복을 찾는 메뉴얼을 가지고 있다. 트로트 가수 홍진영은 사용했던 인조 속눈썹의 개수를 헤아려보는 방법을 사용하고, 배우 배정남은 저렴하게 사온 구제 옷을 바느질해 리폼을 한다. 축구 선수 이강인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축구를 하며 풀어낸다.




이 모든 사례들의 공통점은 행복해지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행복은 '행동'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부모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 행동의 빈도가 많을수록 행복 지수가 높아질 수 있다는 믿음. 덕분에 지금처럼 힘든 시기를 내 나름대로 슬기롭게 돌파해 나가고 있다. 










연세대학교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의 기원』에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도구다."



이 말을 자세히 풀어보면 아래와 같다.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가 행복해져야 한다는 메시지다. 찰스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종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라고 한다. 이는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목적은 생존 그 자체와 유전자의 번식이다.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생각을 공유해보려 한다. 




포도 나무는 왜 살까?

당분을 모으기 위해서일까? 




© howardbouchevereau, 출처 Unsplash




아니다. 

포도 나무는 살기 위해 산다. 



한갓 나무 한 그루에 지나지 않는 포도 나무라도 '생존'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물이 없으면 있는 힘껏 뿌리를 땅속 끝까지 뻗쳐내고, 햇빛이 너무 강해 타들어갈 것 같다면 자신의 남은 모든 양분을 포도 열매에 집중시킨다. 



그렇다고 포도 나무가 포도의 당분을 축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포도 나무는 자신과 같은 유전자가 세대를 거쳐 전승되도록 살아낸다. 생존을 위해 지구온난화를 위시한 온갖 자연재해를 꿋꿋하게 버텨낸다.




© madebymarius, 출처 Unsplash




이러한 포도 나무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포도 송이에는 당분이 한가득 담긴 과육과 씨앗이 있다. 바람에 굴러떨어진 포도알은 과육을 썩혀 과육 속 씨앗이 다시 포도 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포도의 당분은 그저 포도 나무의 유전자가 담긴 씨앗이 포도 나무의 세대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도구다. 다시 말해, 포도의 당분은 포도 나무의 삶의 목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여기서 포도 나무를 인간으로, 포도의 당분을 행복으로 바꾸면 재미있는 공식이 만들어진다. 




© stanislas1, 출처 Unsplash




"인간은 살기 위해 행복해져야 한다."




나는 이것이 내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라고 정리했다. 









내가 행복해져야 하는 이유가 설정되었다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마냥 배제하진 않는다. 내 삶이 항상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 dre0316, 출처 Unsplash




전날 과로해서 피곤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났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분명 내 잘못이 아닌데 상사가 나를 나무란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기 일도 나한테 떠넘기려고 한다.


쓸데 없이 날씨가 흐리다. 

비가 오지 않을 거라는 일기 예보를 믿었더니 결국 비에 젖은 새앙쥐가 되어버렸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부정적인 감정이 머리 끝까지 치솟는 순간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인생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디폴트값(=고정적인 기본 설정값)으로 설정한다. 이건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니 말이다.




출처 : 24살의 통계학




다만, 김경일 교수님의 지혜 한 자락을 빌려오려 한다. 

디폴트값인 부정적인 감정을 빈도수(=횟수)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평균값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스펙트럼을 1~10점까지 설정한 후, 평균값을 통해 내 상태를 스스로 진단하는 거다. 




이렇게 했을 때 장점은 <특정 한 가지 사건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이번에 쇼크를 먹으면서도 이틀 안으로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일주일 동안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평균값이 10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8점 정도였다. 이때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의 응급 메뉴얼을 신속하게 적용해서 평균값을 최대한 빨리 줄이는 거다. 




"행복은 횟수로,

불행은 평균으로."




슬프고 부정적인 일, 일어나지도 않은 불안감에 매몰되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이 정말 소중하지 않은가?










누군가 여왕에게 '오늘 여왕님의 일상 중 감사한 것을 3가지만 이야기해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여왕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푸르른 여름 하늘과 

잔잔한 미풍


골프 드라이버로 

115m 기록 달성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준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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