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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 방송, 영화프로그램

영화를 알 지도 못하면서.세 번채

by 정작가

“영화채널 DCN(채널 22)이 자체 제작하는 영화 정보 프로그램인 「출동 영화특급」을 신설한다. DCN 제작 프로그램은 할리우드 정보를 전하는 「인사이드 할리우드」와 영화 음악 프로그램인「시네뮤직」이 있지만 프로그램 전체를 자체 제작하는 것은 영화 채널 중 처음인 셈.(매일경제 96.7.5)” 서울역 앞에 있던 대우 빌딩, 그 뒤편 대우재단빌딩 12층에 DCN 본사가 있었다. 외주 제작사에서만 영화 프로그램을 만들다, 드디어 본사에서 제작하는 영화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

말 그대로 영화정보 프로그램이었다. 신작도 소개하고, 촬영 현장에 직접 가서 스케치와 인터뷰도 해오고, 영화계 이슈도 짚어보고... 나름 한 시간을 꽉 채웠다. 일주일에 한 번 방송되지만, 작가 2명에 피디 4명인 단출한 팀이라 늘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 프로그램은 특별했다. ‘시네 포커스’에서 영화계 여러 사안이나 쟁점들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꽤나 많은 공부를 했다. 덕분에 부산, 전주, 부천 등등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에도 몇 년 동안 빠지지 않고 갔다. 당시 DCN은 아카데미 영화상을 생중계했는데, <출동 영화특급>을 하는 덕에 생중계 대본도 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많은 영화계 사람들을 <출동 영화특급>을 통해서 만났다.

그중 기억나는 몇몇...
‘무영 아저씨’ 내가 갔을 때 진행자는 이무영, 진희경이었다. 나는 늘 이무영 님을 무영 아저씨라 불렀다. 나이 차도 그렇게 안 났는데 그게 편했고 아저씨도 그렇게 부르는 걸 받아주었다. 무영 아저씨는 참 따뜻했다. 일할 때나 아닐 때나 늘 한결같았고, 작가를 편하게 해주는 진행자였다. 당시 아저씨는 박찬욱 감독의 <3인조> 각본 이후 절치부심 중이었다. 신인 감독들의 영화를 소개할 때마다 부러워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가끔 아저씨가 얘기해 주는 여러 가지 영화 아이디어는 기발하고 기괴하고 기이하고 흥미로웠다.

‘이동진 선배’ 조선일보의 <시네마 레터>를 꾸준히 보다가 이런 글을 쓰는 기자가 궁금해졌다. 때 마침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자가 필요했다. 나는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첫 통화에서부터 배짱 좋게 고정 출연을 부탁했다. “방송을 해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섭외 전화에 이 기자는 선뜻 응했다. 녹화장에 나타난 이 기자는 수줍은 듯 보였다. 대기실에 둘만 앉아있는데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막상 첫 방송인데도 긴장하지 않고 찬찬하니 잘해주었다. 선배가 유명한 영화 평론가가 된 후에도 우리 프로그램이 첫 방송이었다고 언급하는 걸 볼 때마다 슬며시 웃음이 난다. 어쨌든 선배는 한참을 출연했고, 호칭도 ‘이 기자님’에서 ‘이 선배’라 바뀌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출동 영화특급>을 거쳐 갔다. <시네 매거진>에서 인연을 맺은 염정아가 진희경 다음으로 진행을 맡았고, 내 친구 이지훈을 비롯해서 오동진, 김영진, 이현수 등등 선배 기자들이 나왔으며, 강한섭, 신강호, 전찬일, 조희문 등 여러 평론가들이 출연해 주셨다.

사무실 위치가 도심에 있다 보니 먹고 마실 때도 참 많았다. 점심시간, 편성팀 친구들과 밥 먹고 걷던 남산 길도 새록새록하고, 단출한 우리 팀끼리 밤늦도록 한 잔 하는 자리도 유쾌했고, ‘먹고 죽자’라는 모임을 만들어 이름대로 쓰러져 죽을 때까지 퍼 마시던 기자 선배들과의 정기 모임 자리도 아직까지 선명하다.

영화계에 돌아가는 이야기 만으로 썰고, 비비고, 버무리고...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방송을 꽉 채웠다는 건, 그만큼 우리 영화계가 활기차고 풍성했단 의미다. 이제는 영화 만으로 채운 종합구성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영화판이 무너진 것일까, 아니면 시청자의 입맛이 바뀐 것일까? 무엇보다 그랬던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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