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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 방송, 영화프로그램

영화를 알지도 못하면서,네 번째

by 정작가 Sep 07. 2023

올림픽대로 공항 방향으로 달려 가양대교를 지나면 조그만 표지가 보인다. ‘발산역 방향’. 그 방향으로 나가면 바로 오른쪽에 건물이 하나 나온다. 지금은 채널 IHQ 사옥으로 불리지만, 십수 년 전 내가 일했을 때는 A&C 코오롱 사옥이었다. 케이블 티브이가 개국했을 때는 문화 예술 TV이었다가 99년 1월 예술. 영화 TV로 바뀌면서 영화 관련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때 생긴 프로그램인 <영화노트>는 내 친구 작가가 맡고 있었다. ‘영화 평론가가 나와서 한 감독의 대표작 4~5편을 장면 장면 살펴보며 영화에 사용된 기법과 스타일, 영화 용어 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진지한 접근을 해서 학교 연극영화과에서 교재로 쓰일 정도였다고 한다. 강한섭, 정재형, 주진숙, 신강호, 편장완 선생이 번갈아 나왔고, 아시아 영화감독을 할 때는 김지석 선생이, 한국 영화감독 편에는 김소영 선생이 출연했다.


그러다가 IMF의 영향으로 42회를 끝으로 잠시 쉬었다가 99년 2월 <영화노트>는 이전보다 가벼운 느낌으로 부활했다. 나는 바로 그때 합류했다. 부활한 <영화노트>의 새 진행자는 박찬욱 감독이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삼인조> 후에 새 영화 제작을 모색하는 중이었다. 감독님은 틈틈이 새 영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내비치곤 했다.

<영화노트>는 보통 진행자가 감독을 정하고, 간단한 포인트를 준다. 그다음 작가인 내가 골라 놓은 영화를 다 보고, 포인트에 맞는 장면을 찾고 원고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B급 정서를 좋아하는 박 감독님이 고른 감독은 웨스 크레이븐, 아벨 페라라, 쿠엔틴 타란티노, 팀 버튼, 브라이언 드 팔마, 그리고 페드로 알모도바르였다. 왜 여섯 명이냐고? 어느 날 감독님이 밥을 사주며 말씀하셨다. “새 영화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렵게 얻은 기회이니 최선을 다하련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며 <영화노트>를 그만두셨다. 새 영화는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이었다. 몇 년 후 <복수는 나의 것> 시사회를 마치고 그 팀 배우들과 회식하는 자리에 나를 부르셨다. 그때 감독님이 사람들에게 내 소개를 이렇게 했다. “내가 돈 없을 때, 나 돈 벌게 해 준 작가야.”    


박찬욱 감독 후임으로 <미지왕>의 김용태 감독이 한 달 정도 진행했고, 나중에 종방 될 때까지는 이지훈 필름 2 편집장이 진행을 맡았다. 당시는 희귀한 영화들을 구하기 엄청 힘들었다. LD를 구하면 다행이었지만, 아니면 조악한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해야 했다. LD는 화질이 좋았지만, 대신 플레이어가 사무실에 있어서 혼자 남아 밤새 영화를 보면 장면을 뽑아야 했다. 밤새 영화를 볼 때 잔인한 영화를 보면 섬찟했고, 므흣한 장면이 나오면 민망해서 괜히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둘러보기도 했고, 잔잔한 영화를 보면 졸음이 쏟아졌지만 참아야 했다. 무엇보다 영화를 엄청 많이 보았다.


<영화노트>를 할 즈음, 옆 프로그램 피디가 같이 일하자고 했다. 바로 좋다고 대답했다. 그 프로그램은 송병준이 진행하는 <영화가 음악을 만났을 때>다. 말 그대로 영화 음악 전문 방송였다. 원고도 라디오 영화 프로그램을 하는 느낌으로 썼다.


두 프로그램이 종방 되면서 새 영화 프로그램이 생겼다. <현장 토크쇼 시네피플>로 오동진, 김영진 선배가 진행했다. 현장이란 이름답게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에서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영화 제작자, 감독, 배우 등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를 했다.  종종 난감한 때도 있었다. 기자 시사회 끝나고 바로 감독과 배우 녹화를 잡았는데, 시사회를 보니 영화가 엉망이다.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진행자들과 머리를 쥐어짜본다. 다행히 진행하는 선배들이 베테랑이라 겨우겨우 녹화를 마쳤다. 어쨌든 지금 우리 영화에서 이름을 날리는 중견 감독이나 배우들은 <시네피플>에 거의 다 출연했던 것 같다. 녹화도 흥미진진했지만, 가끔 녹화 후 갖는 출연자들과의 술자리가 더 재밌기도 했다.     


지금은 회사 이름도 바뀌고 같이 일한 피디들도 많이 떠났다. 여유 있는 제작 환경은 아니었지만, 인간적으로 좋은 피디들이 많았다. 덕분에 많이 즐겁게 일했다. 그래서일까, 그 인연이 여태껏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자리를 옮긴 한 선배의 권유로 개국 준비를 하고 있는 제이본부에서 일을 하게 됐고, 제이본부에 와서 그때 같이 일했던 몇몇과 재회했다. 그곳에서 같이 일했던 작가 후배들과도 지금까지 만나고 있다. 영화도 많이 보고, 좋은 인연도 만들었던, 꽤 괜찮은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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