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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보라 Aug 19. 2024

자소서는 갈비다

면접 D-7

자기소개서에 담긴 면접관의 의중을 파악했다면 이제는 형광펜을 들 차례다. 방법은 간단하다. 눈에 들어오는 키워드에 형광펜을 칠하면 된다. 


왜 형광펜인가? 


형광펜 아이디어는 필자의 면접 경험에서 따왔다. 아나운서 시험 면접장에서 우연히 면접관들이 들고 있는 서류를 보았다. 자소서를 들고 있었는데, 형광펜으로 표시한 흔적이 곳곳에 있는 게 아닌가? 나중에 알아보니, 인사팀에서 미리 참고할 만한 특이사항들을 형광펜으로 칠해 면접관들에게 넘겨둔 것이었다고 한다. 


무릎을 탁 쳤다. 하루에 수십 명을 대상으로 면접을 봐야 하는 면접관들이 모든 지원자들의 자소서를 꼼꼼히 읽어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인사팀이든, 면접관이든, 눈에 띄는 특이사항은 미리 체크해 두어 질문해야 할 부분들을 잊지 않게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이 경험을 역으로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면접관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경험과 키워드를 알면 내가 예상 질문을 뽑아볼 수 있고, 답변도 준비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여기서 잠깐! '면접관들이 자소서를 꼼꼼히 보지 않는다면 대충 써도 되겠네?'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자소서는 최선을 다해 정성껏 써야 한다. 모든 시험의 목적은 최종 합격이다. 어찌어찌하여 실무면접을 합격했더라도, 성의 없는 자소서가 최종 면접에서까지 통할 리는 없다. 아나운서 시험이 워낙 바늘구멍이다 보니('라테는'.... 한 해에 한, 두 명 뽑는 시험에서 3천 명 내외에 몰리기 부지기수였다.) "이번 시험에는 면접까지가 제 목표예요~"라고 말하는 철없는 친구도 있었다. 올해든 이듬해든, 모든 면접은 항상 끝까지 합격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올해에는 면접까지만 기회를 주고 내년에 꼭 합격시켜 주는 너그러운 회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 눈에 불을 켜고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데, 나만 경험 삼아 도전하겠다는 철없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인생은 늘 실전이다


자소서는 갈비다


다시 자소서로 돌아오자. 자소서는 갈비처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 한다. 열 번, 스무 번 읽어 보고 키워드에 형광펜을 친다. 보통은 내가 하고 어필하고 싶은 단어에 형광펜을 치게 된다. 다들 아시겠지만 면접은 내가 상상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분명 이러이러한 것을 궁금해할 거야, 짐작하며 한껏 준비를 해가지만, 실제로 면접을 보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아 당황할 때가 있다. 이는 내가 면접에서 하고 싶은 말과, 면접관이 궁금해하고 듣고 싶은 말의 포인트가 다르다는 뜻이다. 



●체크 포인트


-면접관이 궁금해해 주길 바라며 야심 차게 적은 경험이나 키워드

-면접관이 궁금해할 것 같은 키워드

-남들과는 다른 이력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키워드


●형광펜으로 칠한 키워드가 10개 이상이라면?

아주 순조롭다. 키워드에 따른 예상 질문을 뽑아본다. 


●키워드가 10개 이하라면?

 4살이든 5살이든 뇌가 기억을 허락하는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성지순례를 시작한다.

일단 키워드에 형광펜을 긋긴 했지만, 뭔가 시원찮다, 싶은 분들도 과거 성지순례에 나서길 바란다. 



좌절 금지


자소서에서 키워드를 찾는 작업을 하다 보면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끝내 미약한 케이스가 많다. 많은 지원자들이 좌절하는 포인트다. "제 인생이 이렇게 평범한 줄 몰랐어요. 제가 면접관이라도 제게 물어볼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요."

 

결론부터 말하면 말도 안 되는 투정이다. 성급하게 좌절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딱 두 가지다. 


먼저 타인의 도움을 받을 것.

그리고 평범하지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키워드를 만들 것. 


피드백


중도 제 머리는 못 깎는 법이다. 자소서는 친구나 가족, 혹은 스터디 멤버 등 나를 잘 아는 사람, 잘 모르는 낯선 사람 등 두루두루 자소서를 보여주고 형광펜으로 검수를 받기 바란다.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 받을 피드백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이러이러한 게 장점인데, 이걸 왜 안 썼어?"라든지, "너 그때 무슨무슨 경험이었잖아. 난 그거 정말 재밌고 인상 깊게 들었었는데?" 등의 조언들이다. 당사자는 잘 모르는 장점들을 친구들은 알고 있다. 주로 성실함, 끈기, 속 깊음, 다정함, 의리, 책임감 등이다.

 

나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어찌 보면 그들이 면접관의 시선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지인이나 가족은 나의 히스토리를 너무나 잘 안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돼 있더라도 행간을 읽고 이해하고 넘어가기 쉽다. 하지만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자소서를 접하는 낯선 사람들은 글에 맥락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지나친 생략 때문이다. 글자수 제한도 있겠다, 이 정도는 생략해도 무방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쓰지 않았던 과정들이 사실은 앞뒤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문장일 수 있다. 이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의문이 생기면 질문하는 게 이치이므로, 이들이 궁금증을 표시했다면 면접관의 질문 하나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피드백까지 받아 키워드를 찾았다면 이제 노트와 연필을 꺼내든다. 같은 재료로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말의 맛이 달라진다. 우리는 키워드를 보고 연상되는 표현들, 경험들을 찾아 노트에 끄적이며 최적의 '면접용 말하기'를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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