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D-7
멍 때리기
자소서를 꺼내 들어 형광펜으로 키워드를 찾았다면, 이번에는 키워드를 다듬어 나만의 면접용 말하기를 다져나갈 차례다. 평범하지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키워드를 찾을 것이다. 말은 쉬운데 사실 제일 어려운 과정이라 생각한다. 나중에 내가 쓴 글이 책이 된다면, 취업 준비생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챕터로 가장 먼저 이곳을 펼쳐 내밀 것이다. 키워드 찾기.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노트와 연필을 꺼내든다. 노트 한 장에 키워드 하나. 나머지는 여백으로 놔둔다. 내가 찾은 키워드가 10개라면, 노트 한 쪽당 하나의 키워드를 채워놓는 것이다. 여백은 브레인스토밍으로 채워야 할 공간이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멍을 때려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멍을 때리다 불현듯 단어든, 문장이든 떠오르는 대로 적어야 하기 때문에 여백을 넉넉히 두기를 추천한다. 이 여백을 채워야만 D-7일의 일과가 끝난다고 여기면 된다.
노트를 다 채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 노트와 연필은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잠들기 전 침대 머리맡에도 함께하길 권한다. 하루종일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나를 괴롭혔던 아이디어들이 찰나에 반짝 떠올랐다가 사라지기 쉽다.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한 내게 신의 숨결이 잠시 머무는 순간이랄까. 필자의 경우에는 잠들기 바로 직전이 그런 순간이었다. 아직 현실인지, 꿈인지 모호한 그 시간에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놓치지 않도록 만발의 대비를 해야 한다. 노트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해도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두고 있을 것이다. 녹음 기능을 바탕화면에 꺼내두고 간단한 단어라도 녹음해 두고 잠들길 바란다. 완성된 문장이 아니어도 괜찮다. 문장에 집착하지 마라. 키워드만 찾으면 문장은 금세 만든다.
자소서를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Feat. 노트와 연필)
수년 전, 대학생 강의를 갔다가 '현타'온 적이 있다. 수강생들이 죄다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두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받아 적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와... 라테는 다 노트에 펜이었는데... 정말 격세지감이다.' <자소서를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제목은 가왕 조용필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노래에서 차용했는데, 막상 쓰고 보니 1020 세대는 이 노래를 모를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래도 고집 있게 연필을 강조하며 글을 이어가 본다.
요즘 10대, 20대들에게는 펜보다 키보드가 더 익숙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필을 꺼내어 쓰라고 말씀드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뇌를 자극하기 위해서다. AI가 자기소개서도 써주는 시대에 무슨 종이와 연필이냐 싶은 분들도 있을 테지만, 내 인생을 AI가 대신 산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십수 년간 겪어온 나만의 인생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이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관건은 뇌 깊숙이 저장해 두었던 중요한 순간과 경험들을 어떻게 끄집어내느냐일 것이다. 뇌를 자극해야 기억이 살아난다. 뇌를 자극하는 방법. 손을 쓰면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갑자기 어느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
"아~ 그거 뭐지? 그거~ 그거 있잖아~"
손가락을 두드리거나, 박수를 치거나, 손을 흔들거나, 손바닥을 돌리며 동작을 크게 한다. 뇌를 자극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뇌를 깨우는 방법을 안다. 그런데 손글씨를 쓰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지금이야말로 손글씨가 필요한 시점이다. "키보드를 사용할 때도 손을 쓰는데요?" 반문하실 수도 있다.
달라요. 쏟는 에너지와 뇌 자극량이 다릅니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 오드리 판데르 메이르 교수팀이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손으로 글씨를 쓸 때 지각·인지·판단 등과 관련이 있는 대뇌 꼭대기 부위인 두정엽, 그리고 뇌 중심부에 있는 신경 네트워크 허브와 접점 사이에서 광범위한 세타파-알파파 연결성 패턴이 일관되게 확인됐다고 한다. 한마디로, 키보드 치는 것보다 손글씨를 쓸 때 뇌의 움직임이 훨씬 정교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볼펜보다는 연필을 추천한다. 낯선 자극일수록 좋기 때문이다. 볼펜이 빙판 위를 가르는 스케이트날 같은 부드러움은 있지만, 밭을 일구는 호미질 같은 서정적인 맛은 없다. 우리는 잡초를 걸러내고 흙을 뒤집어 곡식이 잘 자라게 하는 아이디어를 찾는 게 목적이지, 어느 볼펜이 더 잘 써지나 성능 테스트를 하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키보드 자판에 익숙해진 환경은 잠시 접어두고, 낯선 감각을 일깨우는데 집중했으면 한다. 서걱서걱. 연필심이 둔탁하게 종이를 스치는 소리를 느껴보고, 때로는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기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추천한다.
위대한 발견은 낙서에서 나왔다
키워드 하나와 여백이 가득한 노트를 보며 멍을 때려 본다.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발견했던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기본도 놓쳐서는 안 된다. 면접 단골 질문들로 꼽히는 다음의 질문에 대해서도 어떻게 대답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아이였나?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사건사고는 무엇이었나?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이었나?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을 그대로 꾸고 있나, 혹은 목표가 바뀌었나?
부모님이 가장 많이 하던 잔소리는?
부모님의 어떤 점을 닮고 싶은가?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는가?
잊지 못할 선생님의 한마디는?
내 결정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친구는 누구인가?
나는 친구의 어떤 점을 가장 좋아하는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중요한 키워드는 하루종일 고민해도 부족하다. 지원자들을 괴롭히는 중요한 질문들, 이를테면 왜 본인을 뽑아야 하는지, 특별한 지원 동기가 있는지 등에 대해 일주일을 고민해 본 적도 있다.
멍을 때리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경험이나 생각이 있으면 바로 적는다. 좀 더 정제된 생각과 표현을 적어야 하지 않나 싶으실 수도 있다. 하지만 손은 뇌의 직수관이 되게 해야 한다. 뇌가 무언가를 떠올리면 저항 없이 바로 끄적여라. 낙서의 힘을 믿는다. 위대한 발견은 대부분 낙서에서 나왔다.
백지상태였던 노트가 낙서들로 꽉 채워졌는가?
키워드를 바탕으로 예상 질문이 만들어졌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그에 대한 답을 적어볼 차례다.
어떤 말로 시작해 어떤 말로 끝을 맺을 것인가?
D-6일로 넘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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