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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보라 Oct 19. 2024

돌아보기를 주저하지 마라

면접이 끝나고 할 일

복기(棋)의 힘


바둑 기사들은 대국이 끝난 뒤 반드시 복기하는 과정을 거친다. 복기는 첫 수부터 마지막 수까지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순서대로 다시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패자의 악수(手)는 무엇이었는지, 승자의 신의 한 수는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고 복기하는 과정을 통해 깨치고 배운다. 또 타인이 명승부를 펼친 대국을 배우기 위해서 복기를 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전부를 돌아본다는 것이다. 첫 수부터 끝 수를 어떻게 기억하나 싶었는데 한 바둑기사는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한 수, 한 수 모두 의미를 두어 둔 돌이기 때문입니다. 첫 수만 기억하면 나머지 수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이세돌 9단 / 출처 : 연합뉴스



의미 없는 질문은 없었다


면접도 그렇다. 질문 하나, 하나가 모두 의미가 있었기에 첫 질문을 기억한다면 복기하기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시간이다. 첫 질문부터 끝 질문까지 면접관과 주고받은 대화는 시험장을 나오자마자 메모를 해야 한다. 면접관은 몇 명이었는지, 나는 몇 번째로 질문을 받았는지, 질문을 했던 면접관의 표정은 어땠는지, 나의 대답은 어땠는지, 내가 대답하기 전후의 공기는 어땠는지. 집중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화장실에 들어가서라도 메모를 해야 한다. 


그런데 쉬울 것 같은 이 과정이 사실은 쉽지 않다. 길어야 10여 남짓.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순간의 집중력을 발휘한 탓에 시험이 끝나고 나면 맥이 풀려 주저앉게 된다. 혹시라도 실수가 있었다면 더더욱 잊고 싶은 기억일 터. 면접이 끝나자마자 훌훌 털어버리겠다며 친구들과 뒤풀이를 하러 간다면 하수가 따로 없다. 


내일은 기약이 없다.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것이다. 긴장감이 풀리면서 내 기억도 같이 흘려보내기 마련이니까 기억이 흐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30분이라도 좋다. 면접이 끝나면 화장실에 들러 키워드 만이라도 재빨리 적어둔다. 면접장을 나서면 커피숍이든, 지하철 역사 안이든 의자를 찾아서 앉아야 한다. 노트를 꺼내어 차근차근히 복기한다.





<복기하는 방법>


#. 질의응답


면접관에게 가장 처음으로 받았던 질문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대답했는가? 

대답에 논리적인 오류는 없었나?

대답을 깔끔하게 끝을 맺었는가?

말문이 막혔던 적은 없었나?

면접관이 흥미로워했던 키워드가 있었나?

나는 총 몇 개의 질문을 받았나?

스스로 몇 개의 답변을 잘했다고 생각하는가?

면접 당시의 나의 심리상태는 어땠나?

신체적 반응은 어땠나? 

혹시 떨리거나 땀이 흐르지는 않았는가?


#. 분위기


대기실의 분위기는 어땠나?

면접 장소까지 가는 길은?

면접관은 몇 명이었나?

면접관들의 표정은 어땠나?

몇 명의 면접관이 고개를 들었나?

그중 몇 명의 면접관과 눈을 마주쳤나?

내 대답을 듣던 면접관이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있었다면 어느 포인트에서 고개를 들었나?


#. 다른 지원자들


다른 지원자들의 준비상태는 어땠나?

인상적이었던 지원자가 있나?

있다면 어떤 부분 때문에 기억에 남았나?

나보다 잘해서 기억에 남는 지원자와 나보다 부족해 보이는 지원자의 모습도 기록해 두자. 

나와 다른 지원자를 대할 때 면접관의 반응에 차이가 있었나?

있었다면 어떤 부분에서였나? 




복기하다 보면  '아, 이렇게 대답할걸...'  뒤늦은 깨달음이 올 때가 있다. 어떤 점이 부족했고,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답을 할 것인지도 차분히 적어본다. 뭐 이런 것까지 다 적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기록해 둔다.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기억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을 반추하며 배우고, 타인의 대답을 엿들으며 또 한 번 배울 수 있다. 타인의 노하우와 경험까지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 기억을 토대로 삼아 다음 면접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면접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주고도 사는 경험


세상에는 돈으로도 안 되는 게 있다. 세상만사의 답이 있다는 책 속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경험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공기마저 팽팽해지는 것 같은 긴장된 상황에서 튀어나왔던 나의 대답, 문득 뇌리를 스치는 나만의 생각,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만의 단점, 그 경험을 통해 느낀 점. 이것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가 없다. 이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붙는 표현이 '노하우'다. 


면접이라는 경험을 얻으려면 돈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인력과 시간도 필요하다. 서류를 통과해야 면접을 볼 게 아닌가. 어쩌면 내게 엄청난 인사이트를 안겨줄 면접관 '아무개'도, 옆에서 같이 면접을 본 지원자 '아무개'도, 노력과 인연이 쌓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이라도 면접을 경험했다면 마지막까지도 소중히 '복기'해줘야 한다. 우리가 거쳐온 면접 중에 어느 하나도 의미 없는 면접은 없다. 내가 탈락했다면 다른 합격자의 사례를 통해 배움을 얻어갈 수 있고, 나의 부족함을 고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경험을 얻은 것이다. 내가 합격했다면 합격의 이유를 분명히 알고, 더 나은 도약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으니, 이 또한 귀한 경험을 얻은 것이다. 


모든 면접의 끝은 합격 아니면 탈락이다


그래서 우리는 면접이 끝난 뒤에도 긴장을 풀지 않고 복기해야 한다. 그래야 합격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모든 면접의 끝은 합격 아니면 탈락이다. 50%의 확률이다. 물론 합격으로 가는 그 길이 꽃길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진흙으로 덮여 있을 테고, 예상치 못한 웅덩이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에 이를 때까지 면접에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모든 결과는 다 '합격'일 테니, 백전백승(百戰百勝)이 아니겠는가. 이윽고, 100%의 확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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