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려원 앵커의 꿀팁
이번 회차를 빛내줄 분은 강려원 앵커이다. 강려원 앵커와 필자는 YTN 앵커 선후배로 만나 오랜 시간 정을 쌓았다. YTN 뉴스는 24시간 생방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비슷한 시간대에 근무하지 않으면 서로 얼굴 보고 대화하는 것조차 어렵다. 회식을 해도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흑과 백', '낮과 밤'처럼 만날 수 없는 얼굴들이 많다.
그런데 강려원 앵커와는 참 오랜 시간 붙어있을 수 있었다. 방송 시간이 늘 비슷했던 덕분이다. 우리는 방송 전후로 만나 뉴스를 공부하고, 방송을 공유하며 서로의 지렛대가 되어갔다. 내가 정리한 것을 공유하고, 후배가 분석한 것을 전달받으며 뉴스를 공부했다. 주기적으로 모여 커피숍에서 공부하던 우리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필자가 선배라지만 후배인 강려원 앵커가 돋보일 때가 많았고, 배울 점도 많았다. 누구보다 강려원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의 팬이 바로 필자다.
'이쯤 되면 너는 뉴스 중독 아니냐' 잔소리했을 정도로 하루종일 뉴스를 끼고 살았던 강려원 앵커. 명석한 데다 겸손까지 갖췄으니 반하지 않고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녀의 인품에 반해 '후배를 쫓아다니는 선배'가 바로 나였다. 면접이라는 인생의 중대 고비를 목전에 둔 후배들을 위해 글을 써달라는 어려운 부탁도 흔쾌히 받아준 강려원 앵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와 애정을 전한다.
다음은 강려원 앵커가 보내 준 글을 그대로 올린 것이다. 부디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경인 KBS 아나운서
-YTN 앵커
YTN 입사 초기, 나는 보라선배에게 참 질문을 많이 했다.
“선배, 이 속보는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았을까요?”
“(전화) 여보세요 선배. 이 질문은 어떻게 풀어내야 했던 걸까요?”
“선배, 선배는 어떤 걸 준비해 가세요?”
‘귀찮으실 텐데…’ 싶을 때도 있었지만, 매일 치열하게 돌아가는, 생방송이라는 전쟁터에서 선배의 명쾌하고 때로는 따가운 답변이 절실했다. 방송을 하며 선배의 설명이 몸에 배어 내 것이 될 때까지 나는 그 답변들을 반복해서 훈련했다. 선배의 설명은 늘 ‘쉽고, 직관적’이었기에 연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 선배가 내는 첫 책이 <면접 일주일 전에 보는 책>이라니! 나는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뒷장을 ‘강려원의 면접’ 이야기로 채워달라는 선배의 요청에 면접이란 걸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돌이켜 보았다. 열 손가락을 다 접었고,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한 번 더 폈다. 15년째. 절반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나의 걸음이었고, 절반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제자들과 함께 고민한 걸음이었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같은 길을 걷겠노라 나선 친구들에게 내가 해줄 이야기는 결국 때로는 쓰고 때로는 달콤한 나의 경험이었다.
면접을 치르고 돌아오면 복기 노트를 꼭 적었다. 그리고 그 복기 노트의 내용 중 위기의 순간 내게 약이 되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이 책을 읽고 당당하게 면접에 나서게 된 누군가에게 별안간 한 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면접은 운 7, 기 3.
제이레빗의 노래 중에 <Happy things>라는 곡을 좋아한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에 대한 노래인데, 2절에 “아주 머리가 잘 돌아갈 때, 말도 안 돼. 공부 안 했는데 백~점!”이라는 가사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면접 때도 이런 순간이 있다.
“홍콩 여배우 닮았다는 이야기 안 들어봤어요? (옆 면접관에게) 닮았지? 닮았지?”
지금의 K팝, K드라마만큼 과거 우리나라에서 대단했던 홍콩영화의 인기. 당시 4,50대 면접관들에게 홍콩 여배우를 닮았다는 말은 분명 엄청난 호감의 표현이었다. 말 그대로 ‘운 7’의 순간이었다. 같은 면접장, 두 명의 지원자 중 내가 분명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때 옆 지원자가 손을 들었다.
“저는 2002년에 안정환 선수 닮아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좀 들었습니다. 여자인데도요.”
옆 지원자가 이 말을 하며 싱긋 웃자 면접관들이 같이 하하 웃었다. 그때 느꼈다. 분위‘기’가 옆 지원자에게 넘어가는 것을.
그날 집으로 돌아와 면접 복기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운이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있어도, 합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날 나의 운이 ‘7’이 아니더라도 기‘3’을 내게 끌어와 승리할 수 있다는 걸 배운 면접이었다.
쉬운 질문은 어렵게, 어려운 질문은 쉽게 답변하자
여기에서 쉬운 질문은 ‘예상 질문’이다. 말 그대로 예상할 수 있는 질문에는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묻은 답변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려웠다. 지원자들이 내놓는 답변들이 거기서 거기라면 성의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려운 질문은 ‘압박 질문’, ‘즉흥 질문’이다. 출제자의 의도가 ‘압박’이고 예상치 못한 질문이니 당황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최종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수습 기간에는 돈 많이 못 벌어요. 알죠? 그 돈 받고 서울에서 버틸 수 있어요?”
압박 질문이었다. 그 짧은 순간 면접관들의 얼굴이 보였다. 임원 면접이었기에 아버지정도 되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면접날 아침 모닝콜을 해준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네. 괜찮습니다. 아직 아버지께서 사회생활을 활발하게 하고 계십니다. 몇 년은 끄떡없으실 것 같습니다!”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 면접관 중 한 분이 “참나, 딸들은 언제까지 아빠 카드를 쓰려고 그러는 거야”하시며 허허 웃었다. 다른 분들도 “그러게 말이야.”하셨다. 면접장을 휘감고 있던 팽팽한 줄 하나가 ‘탱-’하고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 면접 분위기는 쉽게 흘러갔다.
집으로 돌아와 복기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어려운 질문은 쉽게. 최근 내게 일어난 가장 좋았던 일부터 떠올려보자’
면접날은 <트루먼쇼>의 주인공처럼
중요한 날 컨디션이 최상이면 더없이 좋으련만 사람인지라 면접날마다 컨디션이 제각각이었다. 나는 컨디션이 어떻든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입 꼬리를 끌어올린 영화 주인공이 되려고 노력했다. <트루먼쇼>의 주인공처럼 면접관 누군가가 회사 관계자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몸에 긴장을 풀지 않고 만나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온몸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돌았고, 얼굴엔 자연스레 미소 근육이 풀렸다. 만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단어들도 정제되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컨디션이 어떻든 내가 준비한 것들을 쏟아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게 나는 면접장이라는 무대를 그리며 상상한 나의 모습을 상당 부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때로는 운이 따르기도 한다. 면접에 완전히 몰입한 나는 나중에는 질문 하나 답변 하나 놓치기 싫어 면접장 건물 카페에 앉아 복기 노트를 적기도 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면접관이 그 모습을 좋게 봤다는 말을 따로 전해 듣기도 했다. 그날 본 면접 전형은 합격이었다.
-덧
합격이라는 결말을 손에 쥐었지만 저는 불합격의 반복이 빚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분들이라면 분명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손엔 복기 노트를 들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머지 한 손에 합격을 쥐게 되시길.
열렬한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