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찬스'의 마지막 회차다. 오늘의 주인공은 박상연 앵커이다. '뉴스의 정석'으로 통할 만큼 리딩이 좋은 앵커다. 타고난 음색과 발성도 크지만, 더 놀라운 건 타고난 재능 위에 넘치는 노력이었다. 후배를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상연 앵커는 작은 뉴스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었다. 뉴스 공부할 시간도 아깝다며 식사를 거르거나, 이 모습이 짠해 샌드위치라도 사다 주면 모니터 앞에서 끼니를 때웠다. 박상연 앵커의 손에는 항상 '시사노트'가 들려있었다. 속보가 들어올 가능성에 대비해 사안별로 꼼꼼히 메모를 해서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이렇게 준비를 하니 그 어떤 속보가 들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데도 이렇게 노력까지 곁들이니 선배로서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후배를 존경하면서도, 후배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해이해진 마음을 가다듬고 더욱 집중해서 뉴스와 시사를 공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재능이 뛰어나니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이라는 아나운서, 앵커 공채도 무난히 통과했으리라 싶었다. '마치 하늘이 점지해 준 것 같은 인재 같은데, 바늘구멍 통과하기라는 아나운서 시험도 수월하지 않았을까?'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녹화버튼을 눌렀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녹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재능에 노력이 더해진다는 게 이렇게 '멋진 것이구나.'
면접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박상연 앵커의 전략을 들어보자.
박상연 앵커 / YTN 뉴스 진행하는 모습
박상연 앵커
-와세다대학교 국제학
-진주 KBS 아나운서
-YTN 앵커
"저는 평소에 이렇게 웃습니다."
면접 합격의 비밀은 '심사위원의 고개'에 있다고 했다. 얼어붙은 면접장의 공기가 풀어지는 순간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면접관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보통 아나운서 공채가 열리면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린다. 그만큼 방송인을 꿈꾸고 있다는 말일 것이고, 심사위원은 그만큼 피로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1차 전형이 '동영상 평가'로 바뀐 곳도 많다고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수천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카메라 테스트'라는 걸 받았다. 인원이 많이 몰리면 하루에 평가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틀에 걸쳐 시험이 치러지는 곳도 많았다.
수천 명의 지원자를 하루이틀에 걸쳐 평가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가가 이뤄지는 순간은 길어야 10초일 가능성이 크다. 저마다 한껏 꾸미고 온 카메라테스트. 거기서 어떻게 심사위원의 눈에 띄어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어야 할지,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게는 최고의 난제였다. 1차 카메라 테스트를 통과해야 면접이라도 볼 기회가 주어지니 말이다. 그런데 '단 1초'의 시선을 끌기도 힘든 게 현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모니터'에 시선이 가 있으니 말이다. (카메라 테스트는 현장에서 테스트가 이뤄지지만, 평가는 모니터 속의 지원자 모습을 보고 진행하게 된다.)
박상연 앵커의 전략은 '어떻게든 심사위원의 고개를 들게 만들겠다'였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평소에 이렇게 웃습니다."
여기서 고개를 안 들 사람이 있을까? 저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어떻게 웃는다는 건지' 알 길이 없으므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면접관의 고개도 들게 만드는 마법의 한 마디였다.
심사위원이 고개를 들자, 박상연 앵커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 여유와 자신감.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 뿜어져 나올 수 없는 아우라다. 방송인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이후로 면접은 순탄대로를 걸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박상연 앵커가 YTN을 시험 볼 당시,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을 홀가분하게 풀었던 한 마디라고 한다. 시험이 다 끝났으니 이제 그만 나가보라는 심사위원의 말에 박상연 앵커는 손을 번쩍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심사위원은 흔쾌히 허락했고, 박상연 앵커만의 스토리를 풀어서 말했다고 한다. 1년 반 전에 차점자로 탈락했던 사연과 이후 다시 시험에 응시해 면접을 보게 된 순간을 이야기했고, 진심을 다해 '잘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이후 합격의 소식이 전해졌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면접이 끝났을 때 손을 들고 '마지막 한마디' 찬스를 얻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심사위원의 성향에 따라 이 같은 돌발상황을 선호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팩트 있는 인상을 남기려면 이 마지막 한 마디가 '정말 끝내줘야 한다.'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자신이 있는가.
길어도 안 된다. 단 몇 마디로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일 자신이 있는가.
이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마지막 한 마디'는 안 하느니만 못한 순간이 된다.
그런데 박상연 앵커는 했다. 그 자신감의 바탕에는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시험에서 큰 실수도 없었고, 나름 잘했다고 생각했단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박상연 앵커의 성격상, 이렇게 말할 정도면 시험을 정말 잘 본 것이다.) 실력이 바탕이 되니, 그 간절함이 전해진 것이리라.
"성형하라고 하면 하실 건가요?"
지원자들은 '압박 질문'을 두려워한다. 심사위원은 그저 지원자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궁금해서 던진 질문일 테다. 그런데도 지원자들은 답변하기 곤란한 상황이거나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을 때 압박 면접으로 느끼는 듯하다.
박상연 앵커에게는 '성형수술'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입사 이후 "얼굴이 살짝 부족(?) 하니 성형수술을 하는 게 어때?"라는 권고를 받으면 수술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뭐 이런 질문을 다 하나...'싶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입장에서는 '설마 이런 것까지 물어볼까?' 싶은 허를 찌르는, '당황스러움'을 유도하는 질문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요."
박상연 앵커는 확신의 눈빛으로 답했다고 한다. 보통은 "주어진 제 얼굴에 만족합니다." 라거나, "수술을 선택하기 전에 호감 있는 인상을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라든지, "외모보다는 실력으로 승부하겠습니다."라는 완곡한 대답을 생각해 냈을 것이다.
그런데 고민의 흔적이라고는 1초도 없었던 대답. "그럼요. 해야지요."라는 반응에, 심사위원은 말을 버벅거리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지원자 대신 심사위원이 당황한 순간이었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입사한 뒤로 성형수술을 권고했을 리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단지 '면접용 질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걸 누구보다 빨리 간파한 박상연 앵커의 승리였던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답변이 당락을 결정지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때로는 허를 찌르는 신선한 답변이 지원자를 평가하는 데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지 않았을까? 박상연 앵커를 인터뷰한 뒤 느낀 필자의 평가는요.
'그녀는 대단한 전략가다.'
박상연 앵커와의 인터뷰는 영상으로도 제작했다. 유튜브 링크를 첨부했으니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anc_mom)